바빌로니아 별자리와 천문전승 - 별자리 개관 5. 추분 이전 별자리
이 시기는 우기의 도래를 환영하는 시기입니다.
이는 농번기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기도 하죠.
모든 식물은 열매를 맺고 그 열매는 땅에 떨어져 죽음을 맞습니다.
이렇게 자기 씨앗을 대지에 심게 되죠.
자연의 주기에 맞춰 움직이는 농부들은 보리 파종을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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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 별달력의 네 번째 부분은 추분 이전에 태양이 위치하는 별자리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
가을의 풍요는 잎의 여신자리(the Frond of Erua)와 밭고랑여신자리(the Furrow)로 상징됩니다.
두 별자리는 오늘날의 별자리 기준으로 처녀자리를 분점하고 있었는데 잎의 여신자리의 경우 빈데미아트릭스 쪽에, 밭고랑여신자리의 경우 스피카 쪽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두 여신은 각각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두 개 주요 경작물인 대추야자와 보리를 상징합니다.
특히 대추야자는 보관이 쉽고 영양이 풍부한 작물로 중요하게 다뤄졌습니다.
잎의 여신자리는 대추야자나무 가지를 들고 선 에루아(Erua) 여신으로 묘사됩니다.
태양이 이 별자리에 들면 대추야자열매가 익어가기 시작합니다.
밭고랑여신자리는 오늘날 처녀자리의 원형입니다.
밭고랑 여신은 보리이삭을 손에 들고 선 샬라(Šala) 여신으로 묘사됩니다.
샬라 여신은 가을의 파종기라는 계절적 상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때 농부는 쟁기질을 하여 밭을 갈아 엎고 씨를 뿌립니다.
휴경지는 뜨거운 여름을 지나며 새로운 성장을 준비합니다.
휴경지는 평탄화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우선 잡초를 제거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그 후 쟁기질과 써래질을 통해 흙덩이를 잘게 부수어 농사가 가능한 상태로 준비시키죠.
초가을의 별자리 중에는 이러한 농사력에 걸맞는 별자리가 있습니다.
바로 써래자리(the Harrow)입니다.
오늘날 별자리 기준으로 켄타우루스자리와 용골자리 사이를 차지했던 별자리이자 농사 준비를 상징하는 이 별자리는 여섯 번째 달의 시작과 함께 떠올랐습니다.
이어 여섯 번째 달의 끝자락에는 파종을 알리는 밭고랑여신자리가 떠오르죠.
이 시기에 하늘 높은 곳에서 농사 준비 상황을 내려다보는 별자리가 있습니다.
바로 슈파자리(Šupa)입니다.
오늘날 목동자리의 원형인 이 별자리는 엔릴(Enlil)을 상징합니다.
별자리로 그려지는 형상은 이 신의 중요한 두 가지 특성에 방점을 두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이 신이 농업의 신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슈파자리는 한 손에 쟁기자리(the Plough)를 쥐고 있습니다.
(참고로 쟁기자리는 오늘날 기준으로 용자리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이 신이 고대 메소포타미아 만신전을 이끄는 최고신이라는 것입니다.
그의 고귀한 지위를 나타내기 위해 앞으로 뻗은 그의 손은 '막대기'와 '고리'를 쥐고 있습니다.
켄타우루스자리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던 야생돼지자리(the Wild Boar)는 이 시기의 마지막 상징입니다.
먹을 거리를 찾기 위해 땅을 휘저어 놓는 수퇘지의 습성은 '자연이 만들어낸 농사 전문가'라는 호칭을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래서 이 별자리는 닌기르수(Ningirsu)라는 점성술적 상징에도 딱 맞아떨어집니다.
닌기르수는 엔릴의 아들입니다.
그는 아버지 엔릴과 마찬가지로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농사를 주관하는 신 중 하나였습니다.
가을 하늘을 차지하고 있는 농사라는 주제는 모두 파종이라는 상징을 중심에 두고 전개됩니다.
비록 땅에 뿌려진 씨는 모두 '희생'됨으로써 죽음을 떠올리게 만들지만, 이 희생은 변형을 통해 새싹으로 되살아납니다.
죽은 씨앗이 새로운 식물로 움터 올라온다는 것은 죽음과 부활의 신화적 은유이기도 합니다.
신은 죽었지만 이는 저승으로부터의 부활을 만들어내는 서곡으로 이어지며 신의 부활과 함께 자연의 모든 혜택이 베풀어집니다.
초가을 하늘에서 마지막으로 다뤄볼 별자리는 우기의 도래를 상징하는 별자리들입니다.
우선 까마귀자리(the Raven)의 까마귀는 아다드(Adad)신에게 바쳐진 거룩한 새입니다.
까마귀를 담고 있는 주문은 적절한 우기의 도래를 예견하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그림 1에서 까마귀자리는 뱀자리 꼬리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위치 배치는 이 별자리가 여름의 가뭄이 막바지에 이르기를 기다리는 별자리임을 말해줍니다.
에리두자리(the Star of Eridu) 역시 우기의 도래와 관련이 있습니다.
다만 이 별자리는 까마귀자리와 달리 하늘이 보낸 비를 상징합니다.
에리두자리에서 물이 흘러넘치는 꽃병은 여름 내내 메말랐다가 물이 다시 차오르는 샘과 강을 상징합니다.
번역자 주석
1. 이 글은 천문작가 Gavin White의 책으로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별자리와 천문전승을 담은 에세이집 Babylonian Star Lore (ISBN-13 : 978-0955903748)를 번역한 것입니다.
2. 본 글은 저자의 허락을 받아 포스팅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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