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별자리 이야기/BABYLONIAN STAR LORE

바빌로니아 별자리와 천문전승 - 별자리 상세 14. 독수리자리

다락방별지기 2025. 6. 9. 13:26

독수리자리(the Eagle)는 오늘날의 독수리자리(Aquila)와 바로 연결되는 자리입니다.

이 별자리는 표범자리(the Panther), 파빌사그자리(the Pabilsag)와 함께 동지에 태양과 함께 떠오르는 별자리입니다.

이 시기의 별자리는 죽은이의 영혼이 하늘에 올라 미리내에 합류함으로써 별달력의 마지막 장을 장식하는 별자리입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독수리자리는 '죽음'이 특히 강조됩니다.

바로 죽은 이를 상징하는 시체자리(the Dead Man)를 나르는 모습으로 그려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독수리자리의 형상은 두 가지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우선 독수리자리의 모티프는 사람이 죽은 후, 또는 탄생하기 전 상태에 있는 인간의 영혼을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유령 또는 인간의 영혼을 날개 달린 사람으로 묘사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같습니다.  

 

또다른 측면은 독수리자리가 처벌 받아야 할 죄인을 나른다는 것입니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하르피이아(Harpies)처럼 말입니다. 

이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독수리자리는 물론 고대 그리스의 독수리자리가 왜 위아래가 뒤집힌 모습으로 그려지는지에 대한 단서가 될 수 있습니다. 

즉, 이 독수리는 하늘에서 떨어져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저주받은 이의 영혼을 움켜쥐고 하늘이 아닌 지하세계 어둠의 왕국으로 데려가는 것이죠. 

 

독수리자리가 안주자리(the Anzu-bird)의 형태와 기능을 그대로 물려받은 별자리라는 점이 그 증거입니다. 

고대 예술에서 안주는 탄생을 목전에 둔 아이와 짐승의 영혼을 나르는 역할을 하였으며 죽은 이나 저주받은 이의 영혼을 나르기도 했습니다. (그림 1)

그림 1 기원전 4천년 대 후반 인장에 새겨진 문양으로 안주(Anzu-bird)가 포로를 낚아채는 모습

 

두 별자리 모두 동지가 든 달에 태양과 함께 하늘에 떠 있는 별자리로서 삶과 죽음이라는 이중 상징이 적절하게 녹아있는 별자리입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경계석에는 이따금 갈고리모양의 부리를 한 새가 높은 축대에 앉아 있는 문양이 등장합니다. 

이는 독수리자리를 새긴 것일 수도 있고 까마귀자리(the Raven)를 새긴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림 2 고대 메소포타미아 경계석 쿠두루에 새겨진 새 형상

 

독수리자리 '물 티-무셴(Mul Ti-mušen)'으로 표기합니다.
아카드어로는 '에루(eru)'로 읽습니다.
이는 '독수리'를 의미하는데 '콘도르'를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티(Ti)'는 팔뚝을 의미합니다.
이 표기는 대개 '팔과 옆구리'를 의미하는 '아(A₂)'로 읽힙니다.
여기에서 의미가 확장되어 ',' '완력' 또는 '권력'이라는 뜻을 담기도 합니다.


'무셴(Mušen)' ''를 의미합니다.
이 단어는 보통 '새'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이름 끝에 기록합니다.


이상의 뜻을 조합하면 '티무셴'은 '강력한 새'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나는 새가 가진 죽음이라는 상징은 시체자리에서 좀더 포괄적으로 다루고 여기서는 생명을 배달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새에 초점을 맞추도록 하겠습니다. 

 

아카드 왕조(기원전 22세기)에 이르러 독수리가 어떤 사람을 태우고 나는 새로운 형태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 사람이 누구인지 밝혀져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대홍수 이후 수메르 왕권이 처음 수립된 키쉬(Kiš)의 왕 에타나(Etana)입니다.(그림 3) 

그림 3 에타나가 독수리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

 

에타나 서사시는 고바빌로니아 시대 기록에 처음 등장합니다.

이 시기에 기록된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 역시 수메르어가 아닌 아카드어로 기록되었습니다. 

 

반신화적 인물이기도 한 에타나는 수메르 왕조 초기 인물입니다.

에타나를 태운 독수리는 에타나의 아들이자 합법적 후계자를 찾기 위해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이 신화는 에타나가 매일 샤마쉬(Šamaš,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태양신으로 수메르어로는 우투Utu)에게 자식을 점지해 줄 것을 기원한 것과 관련있습니다. 

 

샤마쉬는 에타나에게 산에 오르라고 말했습니다. 

그곳에서 구덩이에 갇힌 독수리를 보게 될 것이며 그 독수리에게 탄생의 나무를 찾아 달라고 부탁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샤마쉬의 말대로 에타나는 구덩이에 갇힌 독수리를 만났고 독수리가 충분한 원기를 회복할 때까지 7개월동안 독수리를 보살폈습니다. 

독수리는 이에 대한 보답으로 탄생의 나무를 찾기 위해 산악지대를 누비고 다녔습니다. 

하지만 이 거룩한 나무를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죠. 

독수리는 에타나에게 함께 하늘에 올라갈 것을 제안했습니다. 

탄생의 주관자인 이슈타르(Ištar, 수메르어 이름 인안나Inanna)에게 조언을 청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에타나는 독수리를 칼깃을 움켜잡았고 독수리는 날아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점점 멀어지는 땅을 본 에타나는 두려움에 빠졌고 결국 다시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신들은 에타나와 그의 부인에게 예지몽을 꾸게 했습니다.

꿈에서 에타나는 하늘의 문에 들어가는데 성공했고, 사자 등에 걸터앉은 이슈타르의 어전에 이르렀습니다.

꿈에서 용기를 얻은 에타나는 두 번째 여행을 시도했습니다. 

 

아쉽게도 이 부분이 기록된 점토판은 부서져 있어 이야기의 끝을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에타나가 결국 성공을 거두었음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수메르 왕명록에 따르면 에타나의 뒤를 이은 아들 발리(Balih)가 키쉬의 왕좌를 이어받아 400년을 다스렸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또다른 마법 전승에는 임신과 관련된 독수리자리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수메르에는 '임신의 돌'이라 알려진 것이 있었습니다. 

이 돌에는 임신을 원하는 여인이 아이를 갖게 만드는 힘이 있었습니다. 

아카드 인들은 이 돌을 '독수리돌'이라 불렀습니다. 

이러한 이름이 가능했던 이유는 아카드어에서 '임신'을 의미하는 단어 '아루(aru)'와 독수리를 의미하는 단어 '에루(eru)'의 발음이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이 돌은 고대 그리스에서 아이티테스aitites라 불렸습니다.)

 

결국 아카드 시대에 이르러 '괴물 새에 의해 지하세계로 내쳐지는 영혼'이라는 이미지는 사라지고 '생명의 나무를 찾기 위해 에타나를 태우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독수리'라는 이미지만 남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임신의 돌'은 죽음을 의미하는 '망자의 '이 변형된 것입니다.

 

일견, 이러한 현상은 상징하는 바가 완전히 뒤바뀐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독수리자리의 서로 다른 면에 방점을 둔 것입니다. 

상징으로서의 독수리는 영혼을 선조의 세계로, 또는 선조의 세계로부터 다른 곳으로 나르는 역할을 합니다.

 

이는 독수리자리의 위치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 별자리는 죽음과 재생이라는 이중의 주제를 가지고 있는 동지 즈음에 태양과 함께 떠오르는 별자리인 것입니다. 

 

에타나 이야기는 고대 예술가들이 가진 생각을 엿볼 수 있게 해 줍니다. 

아래 그림에서 두 마리의 독수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오른쪽 측면으로 독수리 등에 올라타 하늘로 오르는 에타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반대쪽에 하늘로 날아오르는 또 한 마리의 독수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독수리는 아이 또는 송아지를 나르고 있습니다.

그림 4 아카드 인장에 새겨진 에타나 이야기

 

저는 이 두 번째 독수리가 아이를 나르는 독수리라 생각합니다.

즉 에타나에게 아들을 점지해 주는 여신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징은 인류를 소떼와 동일시하는 관습과 영혼이 하늘에서 내려와 지상에서 인간으로 태어난다는 신념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으로 보면 송아지를 나르는 독수리는 어린 아이를 미래의 부모에게 배달해 줌으로써 탄생을 관장하는 여신의 사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독수리자리가 이러한 기능을 안주자리에서 물려받았다는 것은 하나 또는 여러 마리의 송아지를 나르는 사자 머리의 새를 묘사한 여러 예를 통해 명백히 알 수 있습니다.

그림 5 송아지를 나르는 안주의 모습

 

참고 별자리 : 안주자리(the Anzu-bird), 자바바의 별자리(the Star of Zababa), 시체자리(the Dead 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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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자 주석
1. 이 글은 천문작가 Gavin White의 책으로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별자리와 천문전승을 담은 에세이집 Babylonian Star Lore (ISBN-13 : 978-0955903748)를 번역한 것입니다. 
2. 별자리 이름이 현대 별자리 이름과 혼동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별자리는 '이탤릭체'로 표시하였습니다.
3. 본 글은 저자의 허락을 받아 포스팅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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