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별자리 이야기/BABYLONIAN STAR LORE

바빌로니아 별자리와 천문전승 - 별자리 상세 28. 뱀자리

다락방별지기 2025. 6. 27. 11:48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뱀자리(the Serpent)는 오늘날 바다뱀자리의 원형이 되는 별자리입니다. 

 

전세계 신화를 통틀어 뱀은 죽음과 저승을 나타내는 상징입니다.

바빌로니아 전통에서 뱀자리'닌기쉬지다(Ningišizida)'라고 불리는, 이른바 죽어가는 신으로 그 신격을 갖추고 있습니다.

닌기쉬지다는 저승을 다스리는 최고 신 중 하나죠.

 

닌기쉬지다와 뱀자리와의 연관성은 탄생에 관한 독특한 주문에 명백하게 드러납니다.

 

여자가 뱀머리를 가진 아이를 낳는다면

이는 역병을 ... 하는 닌기쉬지다의 징조이다.

 

뱀머리는 죽음을 시각화하는 매개체로 언급됩니다.

 

물아핀(Mul-Apin)에 기록된 떠오르는 날과 저무는 날에 대한 정보로 판단해 보건대, 뱀자리의 위치와 방향은 바다뱀자리와 매우 밀접한 연관을 갖습니다. 

그런데 그림을 보면 두 개 별자리 형상은 확연히 다르게 그려지죠. 

비록 용머리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고대 그리스의 바다뱀자리는 전형적인 으로 그려집니다. (그림 1 참고)

그림 1 바다뱀자리의 아라비아 버전

 

반면 바빌로니아의 뱀자리''이라는 명칭에 걸맞게 머리에는 뿔이 있고, 두 개의 앞다리와 날개를 가진 모습으로 그려집니다.(그림 2 참고)

그림 2 후기 점성술 점토판에 그려진 뱀자리

 

물아핀에 따르면 뱀자리가 태양과 함께 떠오르는 때는 여름의 한복판입니다. 

메소포타미아에서 한 여름은 죽음의 계절을 의미합니다. 

기근과 역병, 가뭄이 덮치는 시절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특징은 예지전승에 그대로 반영되었습니다. 

뱀자리의 출현은 대개 역병의 유행을 예언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수확의 실패도 예견합니다. 

 

별달력에서 여름은 두무지(Dumuzi)의 죽음과 애도, 망자를 기리는 위대한 축제와 연관관계를 갖기 때문에 뱀자리에 서려 있는 저승이라는 주제와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이와 비슷한 상징이 고대 그리스의 바다뱀자리에까지 이어져 그대로 남아 있다는 증거가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바다뱀자리는 헤르쿨레스에 의해 살해당한 괴물입니다.

그런데 이 바다뱀의 굴이 저승으로 향하는 입구 중 하나에 가깝게 위치한다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점성술에서 뱀자리는 주로 토성의 별칭으로 사용됩니다. 

또한 뱀자리는 시장과 상업 영역을 지배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토성을 언급하는 전형적인 예언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만약 별무리가 뱀자리에 닿는다면 

사업이 쪼그라들 것이다. 

 

위 예언에서 별무리는 화성을, 뱀자리는 토성 또는 수성을 이르는 별칭으로 쓰였습니다. 

 

한편 토성의 긍정적 성향은 뱀자리 꼬리에 위치한 까마귀자리 전승에 반영되었습니다. 

 

꾸준히 유지되는 시장을 위한 까마귀자리

 

고대 메소포타미아 학자의 기록에 따르면 이 표현은 '토성이 찬란하게 빛난다'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고대 바빌로니아 별목록에서는 뱀을 표방한 별자리로 두 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바쉬무(bašmu)라 하고 다른 하나는 무쉬후쉬슈(mušhuššu)라 합니다. 

 

이 두 단어의 차이를 구분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창조서사시Epic of Creation>에서 두 괴물은 모두 신과 맞서 싸우기 위해 티야마트(Tiamat)가 원시 바다에서 창조한 생명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림 3 마르둑(Marduk)의 창을 받치고 선 두 마리의 무쉬후쉬슈 (mušhuššu)

 

다행스러운 점은 그림을 통해 바쉬무(bašmu)와 무쉬후쉬슈(mušhuššu)를 구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나운 용'이라 불리는 무쉬후쉬슈는 용과 사자, 새가 합성된 생명체로 그려집니다. 

그래서 서양 신화 전통의 용어를 사용하자면 '그리핀(griffin)'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그림 3, 4 참고)

그림 4 오른쪽에 있는 형상이 '사나운 용'이라 불리는 무쉬후쉬슈(mušhuššu)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반면 '자궁을 품은 뱀'이라 불리는 바쉬무(bašmu)는 외뿔이 달린 뱀으로 그려집니다. 

역시 바쉬무의 그림에도 다양한 변형이 있어 종종 두 다리와 날개를 가진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합니다. 

 

이상의 구분을 기반으로 판단하건대 메소포타미아의 뱀자리는 바쉬무를 상징한 것이 확실합니다. 

 

앞서 언급하기도 했지만, 뱀자리에 좌정한 신은 저승의 신 닌기쉬지다(Ningišizida)입니다.

일반적으로 닌기쉬지다는 외뿔을 가진 한 쌍의 뱀이 양 어깨에서 솟아오르는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그런데 뱀자리는 단순히 닌기쉬지다만을 상징하는 것은 아닙니다. 

뱀자리는 닌기쉬지다의 진정한 본성이 담겨있죠. 

 

닌기쉬지다에게 바치는 송가에는 닌기쉬지다를 '순결한 마술사', '독을 품은 뱀'으로 칭하며 닌기쉬지다의 신비로운 말이 현자에게 전해질 때는 위대한 용의 모습이 나타난다고 찬양하는 문구가 등장합니다. 

 

물아핀은 닌기쉬지다를 '저승의 왕'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호칭과는 모순되게도 신화에서 닌기쉬지다는 저승에서 왕을 받드는 낮은 직급의 신으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대개 고대 메소포타미아신화에 등장하는 저승의 최고 신은 에레쉬키갈(Ereškigal)과 그녀의 남편 네르갈(Nergal)입니다. 

그래서 VR46과 같은 점성술 기록에서는 뱀자리의 주재신으로 에레쉬키갈이 등장합니다. 

 

한편 닌기쉬지다 신전은 '원초적 공간', '아무도 탈출한 적 없는 위대한 저승의 속박' 등으로 묘사됩니다. 

그래서 닌기쉬지다 신전은 저승을 상징하는 지하공간을 가지고 있었다는 전승이 있습니다. 

그림 5 뱀과 망자의 영혼이 묻힌 무덤을 그린 고대 그리스의 그림

 

닌기쉬지다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신화 <아다파Adapa 이야기>에 '기쉬지다(Gišzida)'라는 이름으로 등장합니다. 

아다파는 대홍수 이전에 메소포타미아에 문명을 전해 준 7인의 현자 중 한 명입니다. 

 

<아다파Adapa 이야기>는 삶과 죽음, 불멸성이라는 주제를 하나로 묶은 이야기입니다. 

아다파와 같은 현명한 이들을 포함하여 인간은 왜 죽음의 숙명을 안고 사는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에리두(Eridu) 가까운 호수에서 아다파가 낚시를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갑자기 남풍이 불어 아다파의 배가 떠멀려버리고 맙니다. 

아다파는 바람에 저주를 퍼부었고 이 때문에 바람은 날개가 깨져 멈춰버리고 맙니다. 

 

이 사건으로 아다파는 아누(Anu)의 소환을 받아 자기 행위를 설명해야 할 상황에 내몰립니다. 

하늘로 오르기 전 아다파는 엔키(Enki)의 조언을 듣습니다. 

엔키는 아다파에게 겸손을 표시하기 위해 누더기를 걸치고 하늘에 오르라고 조언합니다.  

 

아누의 궁전에 도착한 아다파는 문지기를 선 두 신을 만납니다. 

두 신 중 하나가 바로 기쉬지다입니다. 

나머지 한 신은 두무지였죠.

이들은 아다파를 시험합니다. 

 

아다파는 지구에서 추방된 두 신, 즉 두무지와 기쉬지다를 애도하기 위해 누더기를 걸쳤다고 대답합니다.

두 신은 아다파의 수줍은 대답을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다파의 처지를 대신 탄원하고, 아다파에게 영원한 삶을 선사하는 빵과 물을 내려달라고 아누에게 청합니다. 

 

하지만 아다파는 이미 엔키로부터 아다파가 죽음의 빵과 물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경고를 받은 상태였습니다. 

아다파는 엔키가 시킨대로 아누의 선물을 거절하였고, 결국 불멸의 삶을 선사받을 기회를 놓쳐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아다파를 비롯한 인간은 결국 죽음의 운명을 짊어지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뱀자리 '물 딩기 무쉬(Mul Dingir Muš)'로 표기합니다.
아카드어로는 '셰루(şerru)'라고 읽습니다. 
역시 뱀자리라는 뜻입니다.
'딩기(Dingir)' 표기는 대상이 신성한 존재임을 표시합니다.


'무쉬(muš)' 표기는 뿔을 가진 뱀을 묘사한 것입니다.
이 표기는 뱀이나 도마뱀, 신화적 존재인 용의 이름에 주로 등장합니다.

따라서 전체 표기는 '뿔이 달린 신성한 뱀'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이름은 '무쉬--투르(Muš-ša₃-tur₂)'의 약어 표기인 것 같습니다.

'바쉬무(bašmu)''자궁을 품은 뱀'이라는 뜻입니다.

 

'닌기쉬지다'는 '좋은 나무의 주님'이라는 뜻입니다. 

죽어가는 신으로 특징되는 다른 신들이 그런 것처럼 닌기쉬지다 역시 죽음 및 재생과 밀접한 연관관계를 갖습니다. 

 

죽어가는 신을 다룬 신화 체계의 주요 부분은 한여름에 이들이 죽은 후 지하세계로 내려가는 이야기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들은 죽음을 맞은 후 뱀자리게자리, 위대한 쌍둥이자리가 지키는 망자의 길에 접어듭니다. 

 

이 길은 양방향 통행이 가능한 길입니다. 

탄생을 눈앞에 둔 어린 영혼이 조상의 왕국을 떠나 이승에 태어나기 위해 지구로 향할 때 이용하는 길이기도 한 것입니다. 

이는 왜 바쉬무가 '자궁을 품은 뱀' 또는 심지어 '출산하는 여신 뱀'으로 알려져 있는지 이유를 추측할 수 있는 근거이기도 합니다. 

 

이후 오랜 시간에 걸친 세차운동의 결과로 저승으로의 하강과 재탄생하는 아이의 영혼이라는 테마는 뱀자리에서 게자리로 이동하였습니다. 

 

참고 별자리 : 게자리(the Crab), 까마귀자리(the Raven), 하늘과 땅의 도살자자리(the Slayer of Heaven and Earth), 티야마트의 피조물자리(the Creature of Tiam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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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자 주석
1. 이 글은 천문작가 Gavin White의 책으로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별자리와 천문전승을 담은 에세이집 Babylonian Star Lore (ISBN-13 : 978-0955903748)를 번역한 것입니다. 
2. 별자리 이름이 현대 별자리 이름과 혼동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별자리는 '이탤릭체'로 표시하였습니다.
3. 본 글은 저자의 허락을 받아 포스팅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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