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빌로니아 별자리와 천문전승 - 별자리 상세 1. 게자리
서기 1천년 대 점성술 서적에 게자리는 '옆구리에 수많은 별을 끼고 있다. 중심에는 서로 뭉쳐진 한 무리의 별이 자리잡고 있다.'라고 묘사되어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 별자리 전승에 따르면 이 별무리는 구유(the Manger) 또는 별집(the Beehive)이라 불렸습니다.
고대 그리스 별자리 그림에 묘사된 것과 같이 바빌로니아의 게자리 역시 사자자리를 향해 집게발을 겨눈 채로 황도에 걸터앉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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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 10세기 경, 아라비아에서 그려진 게자리 (출처 : 마쉬 144) |
그러나 몇몇 학자들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토지 경계석, 쿠두루에 '게' 형상이 일체 남겨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근거로 게자리의 원형은 '거북이'가 아닐까 하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는 충분히 개연성이 있는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게'를 의미하는 단어 '쿠슈(Kušu₂)'는 게 뿐 아니라 '바다에 사는 생물'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고대 수메르 단어 사전에 따르면 '쿠슈'는 '거북이' 또는 '자라'를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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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 쿠슈(Kušu₂) 표기의 초기 버전 | 그림 3 : 고대 메소포타미아 경계석에 새겨진 거북이 그림 |
그런데 거북이는 거의 모든 토지 경계석에 나타나는 중요한 상징입니다.
이 상징은 대개 단독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이따금 물염소자리 그림과 함께 나타나기도 하죠.
거북이와 물염소, 그리고 여기에 더해 양머리 지팡이 그림은 현명한 신 엔키(Enki)의 상징으로 쓰입니다.
물염소와 양머리 지팡이는 의심할 바 없이 각각 염소자리와 양자리를 상징하기 때문에 거북이 역시 게자리를 상징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세 개 별자리가 모두 분점(양자리 - 춘분)과 지점(염소자리 - 동지, 게자리 - 하지)을 차지한 별자리라는 측면에서 그 가능성은 더더욱 높아지죠.
물아핀(Mul-Apin)이 작성되던 당시 게자리는 황도 상에서 가장 북쪽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곳이 태양과 달, 행성이 가장 높은 곳에 도달하는 지점이었습니다.
이상의 사실로 추정해 볼 때, 게자리는 물아핀에서 이른바 '아누의 길(seat of Anu)'로 불리는 별자리에 포함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아누는 그 표기 자체에서부터 '하늘'을 의미하는 신이었습니다.
바빌로니아 우주관에서 상상하는 세 겹의 하늘에서 가장 높은 하늘에 자리잡고 있는 신이었죠.
즉 아누의 상징성은 게자리가 황도대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별자리라는 사실과 잘 들어맞습니다.
아마도 동일한 이유로, 행성 중의 왕이라 할 수 있는 목성이 머무는 특별한 장소는 전통적으로 사자자리와 게자리 사이에 위치하였으며, 이러한 연관체계가 오늘날까지 살아남아 점성술에서 말하는 최고 성위(Exaltation)는 게자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번역가 주석 - 점성술 용어 Exaltation의 개념)
바다생물로서 게는 점성술에서 홍수의 징조로 사용되었습니다.
그 기본 공식은 다음의 두 가지 형식으로 표현되었습니다.
"게자리의 별이 밝게 빛나면 큰 홍수가 엄습할 것이다."
"게자리의 별이 흐려지면 큰 홍수는 오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기본 형식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앞쪽에 서는 별은 티그리스 강의 수위를 예측하는 별로, 뒤쪽으로 따라가는 별은 유프라테스강의 수위를 예측하는 별로 분화되었습니다.
강과 게가 긴밀한 연관관계를 가지게 되다보니, 다음의 주문은 게자리에서 일어낼 수 있는 전조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달이 강물에 휩싸이면 폭우와 대홍수가 엄습하게 될 것이다.
이는 게자리가 달무리 속에 드는 것을 말한다.
동일한 상징체계를 갖는 후대의 점성술 기록은 게자리를 단순명료하게 '물(A-meš)'로 간주합니다.
점성술 기록에서 게자리는 '물 알 룰 (Mul Al-lul)'로 표기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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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드어로 '게'를 의미하는 '알루투(alluttu)'는 수메르어를 기원으로 합니다. 이 아카드어 이름을 복수형으로 쓰면 '집게' 또는 '집게발'을 의미합니다. |
어떤 기록에서는 이 명사가 '사기꾼'을 의미한다고 하지만 이를 확인할 방법은 없습니다. 다행히도 게자리 이름 표기는 두 가지가 있는데 이를 통해 의미를 이해하는 단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우선 단순히 '물'을 의미하는 단어는 아메쉬(A-meš)입니다. 이에 반해 '아루(A-lu)'는 '풍부한 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각 표기를 분석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AL' 표기는 '괭이', '곡괭이'를 의미합니다. 이는 땅을 파내는 게의 집게발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고, 스페이드 꼴을 갖춘 거북이의 지느러미 발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LUL'은 여우를 의미합니다. 이 표기는 '거짓', '사기', '범죄', '반항' 등,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표기는 '여우별', '가짜별'을 표기하는 주요 의미요소이기도 합니다. '여우별'과 '가짜별'은 모두 '화성'을 부를 때 일반적으로 사용되던 단어입니다. 점성술 격언에 따르면 게자리는 실제 '가짜별'로 정의되었습니다. '가짜별은 게자리이다.'라는 문구가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이 격언은 점성술사들이 하나의 천체로 임의의 천체를 지칭하는 자기들만의 은밀한 공식 중 하나입니다. '가짜별'과 '게자리'를 관통하는 특징은 가짜별을 쐐기문자로 '룰라(Lul-la)'로 표기한다는 점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표기를 반대로 읽으면 바로 게자리를 의미하는 '알룰(Al-lul)'이 되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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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인도의 알파벳인 나가르(Nagar)식 알파벳에서 '게'는 왼쪽과 같이 표기됩니다. 이 표기는 '목수'나 '장인(craftman)'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게의 집게발과 목수의 도구인 '톱'과의 유사성을 표현하는 의미로 사용된 표기임을 알 수 있습니다. |
고대 그리스에서는 게자리의 기원을 헤르쿨레스의 모험 중에 등장하는 일화로 보고 있습니다.
헤르쿨레스의 두 번째 과업은 히드라(Hydra)를 물리치는 것이었습니다.
히드라는 레르나라는 이름의 도시 주변 습지에 살고 있던 여러 개의 뱀머리를 한 괴물이었죠.
헤르쿨레스가 히드라와 한참 맞서 싸울 때 늪에서 거대한 게가 나타나 헤르쿨레스의 발을 물어뜯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아무런 소용도 없는 공격이었습니다.
헤르쿨레스는 게를 밟아 간단하게 처치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사건으로 헤라 여신은 이 게를 하늘에 올려 별자리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헤르쿨레스의 12과업을 황도대의 12개 상징에 맞추려 했던 점성술사들의 인위적인 노력에 의해 생겨난 이야기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헤르쿨레스 12과업 신화에 등장하는 다양한 요소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닌우르타(Ninurta)신화에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됩니다.
즉, 닌우르타 역시 다양한 괴물들을 처치함으로써 영웅적인 위업을 달성하는데, 여기 등장하는 괴물들이 헤르쿨레스 12과업 신화에 영감을 준 것으로 추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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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 머리 일곱개 달린 용과 싸움을 벌이는 두 신의 모습을 그린 인장 |
닌우르타가 물리친 괴물 중에는 머리 일곱 개 달린 용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 괴물이 히드라의 원형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림 4는 고왕국시대(기원전 2900년~2350년 경)의 인장 그림으로서 괴물을 공격하는, 이름은 알 수 없는 두 신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헤르쿨레스가 게를 만나게 된 일화는 닌우르타 신화에서 닌우르타가 거북이를 맞닥뜨리는 이야기와 직접 비교될 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닌우르타가 문명화의 상징과 권능을 의미하는 '메(Me)'를 획득하기를 얼마나 열망했는지 말해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메의 주인인 현명한 신 엔키(Enki)는 닌우르타의 의도를 간파하고 닌우르타와 맞서 싸울 거북이를 만들어냅니다.
목숨을 건 싸움이 벌어지는 와중에 거북이는 구덩이로 떨어져버린 닌우르타의 발을 물어뜯습니다.
또다른 토판에는 물웅덩이에서 닌우르타가 거북이를 밟아죽이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바로 헤르쿨레스가 게를 밟아죽이는 장면의 원형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이야기 비교는 이 책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긴 하지만, 고대 그리스 신화와 고대 메소포타미아 신화 간의 관계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또한 이로부터 읽어낼 수 있는 중요한 테마 하나는 충분히 언급할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 주인공이 거북이든 게든 간에 이 생물체가 별자리로 새로이 창조되고 새로운 위치를 점유하게 된 이유를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즉, 닌우르타 신화의 세세한 내용은 게자리라는 별자리가 만들어진 근거가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부분에서 언급하겠지만 많은 별자리가 오랜 기간, 세차 운동에 대한 대규모 측정을 통해 만들어졌습니다.
세차 현상은 별달력에서 별자리 출현이 점점 늦어지는 이유이고, 따라서 주기적으로 새로운 별자리를 만들어낼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게자리가 사실은 훨씬 더 오래된 별자리인 뱀자리(the Serpent)로부터 주요 상징적 특성을 물려받았음을 살펴 보겠습니다.
게자리는 '죽음', '조상', '저승으로 가는 길'과 확실한 연관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연관성은 특별히 게자리를 둘러싸고 있는 마법 전승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 마법 전승은 접신을 하거나, 어떤 이가 죽은 이유를 밝혀 내거나, 귀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행위 등에서 다양하게 활용되는 전승입니다.
이와 비교될만한 상징은 다음과 같은 점성술적 전승에 등장합니다.
만약 이상한 별(여기서 이상한 별은 화성을 말함)이 게자리에 접근하면
통치자가 죽을 것이다.
게자리가 어두워지면
죽은 이들의 영혼이 지상을 장악하고,
지상은 죽음의 땅이 될 것이다.
게자리가 죽음의 상징을 갖는다는 것은 당시 달력 체계로도 일정 부분 설명할 수 있습니다.
태양이 게자리에 드는 때는 대개 네 번째 달(오늘날의 6~7월)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때, 두무지의 죽음을 기념하는 의식이 거행되었습니다.
두무지 축제는 바로 다음 달에 치뤄지는 위대한 화로축제(the Brazier Festival)의 전조에 해당합니다.
화로축제는 조상을 기념하는 축제로서 이때 죽은 조상의 영혼이 이승을 방문하여 살아 있는 후손과 교감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앞에서 언급한 마법 전승과의 연관성이 훨씬 더 강력하다는 것을 알게 해 줍니다.
조상의 영혼이 이승을 방문할 때, 이들이 올라오는 경로가 바로 게자리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저승으로 가는 입구가 히드라의 굴 가까이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연상시키죠.
디오니소스(Dionysus)는 이 입구로 들어가 죽은 어머니를 살려내려는 시도를 했었습니다.
또한 이 입구는 로마의 점성술에서 말하는 '인류가 드나드는 문'을 연상시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인류가 드나드는 문'이란 바로 새로 태어나는 아이의 영혼이 드나드는 경로입니다.
이 천상의 문은 또다른 측면에 있어서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와 관련된 로마의 전승을 떠올리게도 합니다.
서기 2세기 경 제작된 파르네세 아틀라스(the Farnese Atlas) 지구의를 보면 게자리 위로 독특한 모양의 사각형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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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 파르네세 아틀라스 지구의에는 게자리 위에 특이한 사각형이 그려져 있습니다.(붉은 색 원) |
플리니우스(Pliny)에 따르면 이것은 '카이사르의 왕좌(Caesar's Throne)'라고 불린다고 합니다.
이것은 기원전 44년 목격된 혜성의 위치를 천상에 표시하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이는 암살된 후 하늘에 올라 신이 된 카이사르의 영혼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이처럼 여러 인상적인 전승이 강조하는 것은 천상의 통로가 두 방향으로 모두 열려 있다는 것입니다.
새로 탄생하는 아이의 영혼이 한여름의 문을 이용하여 내려오기도 하고, 신이나 영웅의 영혼이 하늘로 올라가기도 한다는 것이죠.
한여름에 지구로 아기들의 영혼이 내려온다는 생각은 게자리에 자리잡고 있는 작은 별무리(프레세페)가 구유라는 이름을 갖게 된 합리적 근거가 됩니다.
이 별무리는 메소포타미아에서 '외양간'이라 불리던 대상을 고대 그리스 버전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외양간은 송아지는 물론, 인간의 탄생과도 밀접한 연관관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게자리가 저승과 연관관계를 갖는 또다른 이유는 이 별자리의 아카드식 이름인 '알루투(alluttu)'를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비록 어원적 연관성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알루투(alluttu)라는 이름은 셈족의 지하의 여신 '알라툼(Allatum)'을 의미합니다.
이 여신은 후에 수메르에서 죽음의 여신인 '에리쉬키갈(Ereškigal)'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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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6 : 기원전 2세기 인장에 새겨진 게자리 문양 |
그런데 이러한 죽음의 상징성은 뱀자리에서 게자리로 전이된 것입니다.
뱀자리는 수생 생물의 특성 뿐 아니라 저승의 주인인 닌기쉬지다(Ningišzida)의 속성을 통해 '죽은 조상의 왕국'이라는 상징도 가지고 있습니다.
게자리가 가진 재탄생의 상징 역시 뱀자리에서 그 전승을 찾을 수 있습니다.
바쉬무(bašmu)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뱀은 문자 그대로 '자궁을 품고 있는 뱀'으로 해석됩니다.
헤르쿨레스의 모험을 자세히 보면 이러한 연관성의 본질적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헤르쿨레스 이야기에서 히드라를 퇴치하는 것과 게가 출현하는 것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는 지속적인 세차 운동으로 별자리가 새로 만들어지는 현상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원래 떠올라야 할 뱀자리의 출현이 점점 늦어져 결국 적정한 시점에 더 이상 떠오르지 않게 되었습니다.
즉, 이는 이 별자리가 사라진 것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래서 적절한 시점, 적절한 위치에 게자리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 결과 게자리는 예전에 뱀자리가 가지고 있던 상징을 그대로 이어받게 된 것입니다.
관련성 높은 별자리 : 뱀자리(the Serpent)
번역자 주석
1. 이 글은 천문작가 Gavin White의 책으로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별자리와 천문전승을 담은 에세이집 Babylonian Star Lore (ISBN-13 : 978-0955903748)를 번역한 것입니다.
2. 본 글은 저자의 허락을 받아 포스팅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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