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9. 15. 12:56ㆍ2. 별자리 이야기/STAR TA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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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수피 : 프톨레마이오스의 전통을 이어준 10세기 아라비아의 천문학자
대부분의 천문학자들이 2세기에서 17세기 사이 별목록의 정확성을 발전시켜 나간 주요 인물인 프톨레마이오스(Ptolemy)와 티코 브라헤(Tycho Brahe), 요하네스 헤벨리우스(Johannes Hevelius)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영향이 결코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10세기 페르시아의 천문학자였던 압드 알라흐만 알수피(Ἁbd al-Raḥmān al-Ṣūfī, 903~986)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합니다.
압드 알라흐만 알수피는 줄여서 알수피라고 부르며 라틴어식 이름은 아조피(Azophi)입니다.
아조피라는 이름은 알수피의 업적을 연구한 12세기 스페인계 유대인 학자 아브라함 이븐 에즈라(Abraham ibn Ezra)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참고 : 이븐 에즈라는 아베네즈라(Abenezra)라고도 알려져 있는데 우연히도 달에는 아베네즈라 크레이터와 아조피 크레이터가 서로 인접해 있습니다. )
알수피는 서구사회에서 그리스 전통 천문학이 쇠퇴했을 때 프톨레마이오스의 업적을 이어받아 중동에서 그 꽃을 피운 아라비아의 후계자였습니다.
알수피는 페르시아의 도시 쉬라즈(Shīrāz, 지금의 이란)에서 천문대를 운영하였으며 알마게스트의 별목록을 이용하였고,
알마게스트의 아라비아 판이라 할 수 있는 '붙박이별의 서(Kitāb al-Kawākib al-Thābita, 키타브 알 카와키브 알 타비타)'를 저술하기도 했습니다.
이 책은 알마게스트가 처음 씌어진 후 800년이나 지난 964년 경 발표되었습니다.
알마게스트의 첫번째 개정판이라 할 수 있는 알수피의 책은 이후 수 세기 동안 별자리 표준 서적이 되었으며, 아라비아 천문학이 발전하는데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고, 궁극적으로 그리스 천문학이 서구 사회에서 다시 살아나는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로서 알수피는 1515년 알브레히트 뒤러( Albrecht Dürer)가 유럽에서 처음으로 제작한 별지도에 공헌한 네 명의 고대 권위자 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
아라비아 전통과 그리스 전통의 만남
출판되기 전 모든 책이 그러하듯, 알수피의 책도 손으로 쓰여지고 그림도 손으로 그려졌습니다.
이후 사본 역시 모두 필사된 것입니다.
각 필사본은 모두 하나하나가 독보적인 책이며 분실이나 훼손되기 쉬운 책들이었습니다.
알수피의 원 저작물은 사라졌지만 전하는 바에 따르면 알수피의 아들 이븐 알수피(Ibn al-Ṣūfī)가 만든 초기 사본이 남겨져 있다고 합니다. 이 책은 알수피 사후 24년이 지난뒤 필사된 것으로 추측되지만 몇몇 학자는 이 책이 훨씬 후대의 다른 사람에 의해 쓰여졌다고 추정합니다.
천문학 역사에 남을 보물인 이 책은 현재 옥스포드 보들리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이 책은 마쉬 144(Marsh 144)로 등재되어 있으며 다음의 링크에서 조회할 수 있습니다.
이븐 알수피는 우르주자 필-카와키브(Urjūza fī’l-kawākib)라는 책을 기반으로 각 별에 시를 추가하여 부친의 작업을 대중화하는데 기여하였습니다.
알수피의 책에는 알마게스트와 마찬가지로 48개 별자리가 있으며 각 별자리를 구성하는 별 역시 그대로 등장합니다.
그러나 부록으로 아라비아의 전통인 베두인 별자리와 아라비아식 별 이름을 추가했죠.
그 결과 별자리 및 각 별에 대한 내용을 담은 대부분의 책에 그리스와 아라비아의 전통이 그대로 스며들게 됩니다.
대부분의 책이 그리스와 아라비아 전통을 담은 별자리와 별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죠.
이 책이 처음으로 영어로 번역된 것은 2013년, 호주 제임스 쿡 대학의 이산 하페즈(Ihsan Hafez)에 의해서입니다.
프톨레마이오스 별자리의 아라비아식 이름은 대개 그리스식 형상을 그대로 묘사한 것입니다.
예를들어 안드로메다는 '사슬에 묶인 여인'이라는 뜻의 '알 마라 알 무살살라(al-mar’a al-musalsala) '로 기록되었고 마차부자리는 '고삐를 손에 쥔 사나이'라는 뜻의 '뭄시크 알아 힌나(mumsik al-a’ ‘inna)'로, 페르세우스는 '괴물의 머리를 들고 있는 자'라는 뜻의 '하밀 라스 알굴(hāmil ra’s al-ghūl)'로 표기되었습니다.
아라토스의 파이노메나( Phaenomena )는 이미 9세기 초 아라비아어로 번역된 바 있습니다.
따라서 알수피 시절에 그리스 별자리신화와 천문학은 이미 아라비아에 익숙한 상태였죠.
그림으로 표현한 별자리
이 책의 매력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별자리 그림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알마게스트에는 확실히 결여된 요소였죠.
각 별자리는 첫 번째는 천구 상에서 내려다보는 방향으로, 두 번째는 하늘에 실제 보이는 방향으로 해서 두 번씩 묘사되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별지도와는 달리 좌표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비례도 맞지 않고 방향을 알려주는 표시도 존재하지 않죠.
별자리에 그려진 사람은 모두 이슬람식으로 묘사되었습니다.
흥미로운 변형의 예 하나는 고대 그리스의 별자리 페르세우스자리에서 나타납니다.
여기서 메두사의 머리는 수염을 기른 아라비아 남자의 머리로 바뀌어 있죠.
아랍인들이 메두사의 머리를 묘사한 그림을 이미 봤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습니다.
물론 고르곤의 머리카락으로 돋아난 뱀을 수염으로 잘못 인식했을 가능성도 있죠.
알수피의 작은곰자리 작은곰자리 그림과 작은곰자리를 구성하는 별목록은 알수피의 필사본으로 그 시기가 1009년에서 101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가장 오래된 책에도 남아 있습니다. 서구전통에서 시작된 이 곰은 큰곰을 향해 서 있으며 꼬리는 아래로 내려가 있습니다. 별목록에는 알마게스트에 기록된 것과 같은 일곱 개 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일곱 개 별은 오늘날과 같이 작은곰자리 알파(α, 북극성), 델타(δ), 엡실론(ε), 제타(ζ), 에타(η), 베타(β), 감마(γ)별로 구성되어 있죠. 이들은 모두 검은색 이름이 달린 빨간색 점으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그 아래줄에는 프톨레마이오스가 아모르포토이(αμορφωτοἰ), 즉 별자리의 형태 이외의 별로 기록한 별 하나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별은 오늘날 작은곰자리 5별로 알려져 있죠. 이 별은 붉은 색 숫자가 붙은 검은색 점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작은곰의 몸통 아래로 네 개의 검은 별이 더 등장합니다. 이들은 알수피가 스스로 관측하여 기록한 별이죠. 물론 이 별에는 이름도 없고, 별목록에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는 각 행에는 각 별의 숫자가 프톨레마이오스의 기록과 동일하게 기록되어 있으며 위치 역시 좌표 및 밝기등급과 함께 기록되어 있습니다. 알수피는 프톨레마이오스가 기록한 밝기 중 두 개를 수정하였습니다. 작은 곰자리 에타별을 4등급에서 5등급보다 약간 밝은 별로 수정하였고, 작은곰자리 감마별을 2등급에서 3등급으로 수정하였습니다. 그러나 북극성의 경우는 프톨레마이오스의 분류인 3등급을 그대로 수용했습니다. 사실 이 별의 밝기는 2등급입니다. |
마쉬 144(Marsh 144)에서 프톨레마이오스의 별 중 별자리의 형상을 구성하는 별은 검은색 글씨가 달린 붉은 색 점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별 이름도 기록되어 있죠.
반면 아모르포토이 (αμορφωτοἰ)는 붉은 색 숫자가 달린 검은색 점으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후대에 알수피의 책을 필사한 책들은 각 별과 그 이름을 표시하는데 또 다른 색깔을 사용하였습니다.
알수피는 프톨레마이오스의 별과 3개 성운에 더해 자신이 관측한 40개 별을 추가로 기록하였습니다.
마쉬 144에 이 별들은 검은 색으로 표시되어 있지만 숫자는 달고 있지 않습니다.
숫자를 달지 않은 것이 이 별들이 별목록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음에 등장하는 케페우스 그림을 살펴보죠.
프톨레마이오스의 목록에 따르면 왕의 두건 양옆으로 검은 색 점과 그 설명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이 별은 케페우스자리 델타(δ)별과 뮤(μ)별로 알려져 있습니다.)
알수피는 여기에 직접 관측한 별을 추가했죠.
케페우스의 다리 안과 그 주변에 있는 검은 점 다섯 개와 왼쪽 팔꿈치 주위에 원을 그리고 있는 검은 점 네 개가 그것입니다.
각 도판에는 별목록도 함께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목록은 알마게스트 목록을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알수피는 각 별자리를 구성하는 별의 위치에 대한 프톨레마이오스의 기록을 그대로 수용했으며 여기에 그가 알고 있는 아라비아식 별이름을 추가하였습니다.
각 별목록에는 책이 쓰여진 964년 기준의 별 좌표가 위도와 경도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이 좌표는 새로운 관측을 통해 도출한 것이 아니라 세차 운동에 따라 변경된 값을 보정하는 방식으로 기입되었습니다.
알수피는 또한 자신의 관측을 통해 전체 별 목록에서 약 반 정도의 별에 대한 밝기 등급을 교정하였습니다.
하지만 알수피가 직접 추가한 별은 목록상에 넣지 않았습니다.
알수피는 자기가 관측한 별들을 프톨레마이오스의 원 목록과 엄격히 구분하였습니다.
가능한한 프톨레마이오스의 전통을 그대로 보존하고 유지시키려 한 것이 이 책의 명확한 방향이었기 때문입니다.
알수피가 추가한 성운
알수피의 목록에는 프톨레마이오스가 언급하지 않은 3개 성운이 추가되어 있습니다.
안드로메다 은하와 옷걸이 성단, 그리고 오늘날 IC 2391로 알려져 있는 돛자리 오미크론 성단(the Omicron Velorum Cluster)이 그것입니다. 안드로메다 은하의 경우 삽화에는 표시가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별목록에는 존재하지 않으며 알수피의 저작에만 유일하게 나타납니다. 안드로메다 은하가 맨눈으로도 보이는 천체임에도 불구하고 그리스에서 기록되지 않은 것은 의외의 일입니다.
R.H.앨런(R. H. Allen)은 그의 저작인 '별의 이름, 그 전승과 의미(Star Names, Their Lore and Meaning)'에서
알수피가 대마젤란 은하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알수피가 아르고자리의 남쪽에 있는 별에 대해 언급한 것을 앨런이 잘못 이해한데서 생긴 오해입니다.
마젤란의 두 개 은하는 알수피의 천문대가 있던 북위 29.6도의 쉬라즈에서는 볼 수 없었던 천체입니다.
마젤란의 두 개 은하는 15세기 말, 아마드 이븐 마지드(Ahmad ibn Mājid, 1430 ~ 1500)의 항해가 있기 전까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이는 마젤란 은하가 서양 세계에 알려지기 바로 전에 있었던 일이죠.
오늘날까지 전해오는 필사본들
알수피의 책이 얼마나 많이 필사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현재 전 세계의 박물관과 도서관에 약 90권 정도가 보관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각 책들은 모두 저마다의 특징이 있습니다.
필사가들이 해당 지역의 복식과 전통에 따라 각 별자리의 형태를 그렸기 때문입니다.
또하나 가장 유명한 사본은 1430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원래는 이슬람의 위대한 천문학자인 울루그 베그(Ulugh Beg, 1394~1449)의 책입니다.
현재 이 책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으며 MS Arabe 5036 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늘날 우즈베키스탄에 해당하는 사마르칸트에서 개인 천문대를 운영했던 울루그 베그는 알마게스트의 별을 재관측하여
그 결과를 담은 '지즈이 자디디 술타니(Zīj-i jadīd-i Sultānī)'라는 책을 1437년에 출간하였습니다.
이 책에는 비록 대중에게 인기를 끌었던 알수피의 도판은 많이 제거되었지만 티코 브라헤(Tycho Brahe) 이전까지 가장 정확한 별목록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알수피의 별자리 그림을 담은 우표 |
1985년 동아프리카 국가인 소말리아가 알수피의 별자리 그림을 담은 4종의 우표를 발행한 바 있습니다. 각 그림은 영국 보들리 도서관에 보관 중인 마쉬 144(Marsh 144) 필사본 그림을 그대로 그린 것입니다. 각 우표의 액면가는 독수리자리가 4.3실링, 황소자리가 11실링, 양자리가 12.5실링, 오리온자리가 13.8실링이었습니다. 황소자리의 경우 천구상에서 바라본 방향으로 앞뒤가 바뀌어 있습니다. 독수리 자리와 오리온 자리는 우리가 보는 방향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물론 독수리 자리에서 남쪽은 위쪽이죠. 양자리의 경우 하늘을 올려다본 방향과 천구에서 내려다본 방향이 모두 표시되어 있습니다. 우표 수집가들을 위해 말씀드리자면 각 우표의 참고 번호는 스탠리 기본스 우표목록(the Stanley Gibbons stamp catalogue) 기준으로 소말리아 730번부터 733번까지입니다. |
다음글 : STAR TALES 1장 - 별을 기록하다 3. 티코 브라헤의 별목록
번역자 주석 :
1. STAR TALES는 영국의 천문작가 이안 리드패스(Ian Ridpath)의 별자리 개론서입니다.
2. 원문은 이안 리드패스가 운영하는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3. 본 글은 저자의 허락을 받아 포스팅한 글입니다.
원문과 번역문 모두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 복제 및 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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