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끄저기 232

문상길 중위를 찾아서 4.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요?

문상길이 아직 대구에 있었을 때, 그는 어떤 사건에 연루되었었다.  이 일로 인해 그는 영창 혹은 감옥에 구금되었던 것 같다. 구금된 그를 꺼내 준 분이 있다.  집성촌 어르신의 증언에 따르면 그 사고가 제주에 부임하게 된 이유가 되었다고 한다.  그 사건이라는 게 무엇이었을까?난 이런 일에 마음이 끌린다. 역사의 거대한 사건이 아닌, 어쩌면 인간 문상길을 알 수 있는 단서가 될지 모를 그 사건 말이다.  하지만 이 사건을 기억하는 이는 이제 이 세상에 없는 것 같다. 그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구금된 문상길을 꺼내 주셨다는 그 분을 뵙고 왔다.이렇게 대전 현충원 장군묘역에 잠들어 계신다.  문상길의 흔적을 쫓으면서 대한민국 창군 주역이라는 여러 군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게중에는..

문상길 중위를 찾아서 3. 증언과 족보 비교

중평리에 나가 문중 어르신과 함께 할 저녁식사 거리로 안동찜닭을 포장해왔다.찜닭이 참 맛있었다. 포장을 기다리는 동안 아주머니는 계속 걸려 오는 주문 전화에 대응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이셨다.  포장을 하고 나올 때 아주머니께서 서울에서 온 거냐고 물어보셨다.그렇다고 하니 당신도 서울에서 오셨다며 반가와 하셨다. 내가 서울에서 온 건 말투를 듣고 아셨다고 한다. 그러고보니 안동은 그동안 말로만 듣던 경북 사투리가 살아 있었다.  찜닭 덕분에 푸짐해진 저녁식사를 문중 어르신과 함께 하고 족보를 보며 대화를 이어갔다.  사진 1 문상길 중위를 재발견하게 해준 남평문씨대동보 제6권.족보만큼 이 세상에 쓸모없는게 있으랴 하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사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여서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건 가문이 아..

문상길 중위를 찾아서 2. 뒤엉킨 기록과 기억

사진 1오늘 문상길 중위 관련 인터뷰를 할 어르신을 만나뵈었다.어르신은 한창 과수원에 묘목을 심고 계셨다. 문상길 중위와는 같은 항렬에 16촌이라 하시니 8대조가 같은 분이다. 나 같은 사람에게 16촌이라면 남과 다름 없다. 하지만 씨족 사회 전통이 강한 이곳 안동에서 16촌은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어르신은 젊으셨을 때 문중 유사를 맡으신 적이 있었다고 하신다. 그래서인지 문중의 일을 비교적 폭넓게 아시는 것 같았다. 어르신은 1950년 생이시다. 문상길 중위께서 돌아가신 후 태어나셨으니 문상길 중위를 경험으로 기억하실 수는 없는 분이다. 하지만 집안 어르신을 통해서 전해 들은 이야기를 비롯해서 그 동안 밝혀지지 않았던 몇 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사실 안동에 와서 안상학 시인을 만나려 한..

문상길 중위를 찾아서 1. 어린 시절 뛰놀았을 마을길

사진 1 문상길 중위 생가 터.안동시 임동면 마령리 대곡천 건너 수몰지구에 위치한다. 다행히 갈수기여서 한때 남평문씨 집성촌이었던 생가 터에 갈 수 있었다. 비석은 민속자료 제69호 기와까치구멍집 터임을 알리는 비석이다.  그가 떠나고 77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를 경험으로 기억했을 사람들도 거의 다 세상을 뜨셨다.그나마 건너들은 이야기조차도 희미하게 기억하는 극소수의 어르신이 남았다.  그 중의 한 분을 뵈러 안동을 향했다.  궁금한 게 있었다. 청년 문상길이 나고 자라 운명의 땅 제주도를 향하기 전, 그가 겪었던 어떤 사건이 궁금했다.  1926년(병인년) 9월 8일.문상길이 태어난 날이다. 족보에 새겨진 날이니 아마 음력일 것이다. 양력으로 변환하면 1926년 10월 14일 목요일이다.  문상길이 ..

'사람'을 찾아가는 거친 여정

이산하 작가의 장편서사시  시를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제주 4.3 사건동안 억울하게 죽어야만 했던 수많은 제주 사람들이 정말 공산주의 혁명을 찬동하여 항쟁을 한 것처럼 오해할만한 표현이 곳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런 시각이 순진무구한 제주 인민을 빨갱이로 몰아 죽인 잔악한 군경세력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하지만 이산하 작가의 후기를 읽으니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측면이 있었다.  이 시가 쓰인 1986년 대한민국에는 4.3사건에 대해 알 수 있는 자료라곤 정부 입맛에 맞는 자료 외에는 전무하다시피 했던 것이다. 이산하 작가가 밝히고 있듯 당시 4.3 사건에 대해 그나마 접할 수 있었던 자료로서 정부와는 다른 시각을 가진 자료는 가 전부였다.하지만 이 책은 일본에서 조총련으로 활동하는 인..

문상길 중위, 손선호 하사 진혼제

2024년 9월 23일. 문상길 중위와 손선호 하사 진혼제가 열린 고양시 용두동에 다녀왔다.  문상길 중위는 1948년 9월 23일 3시 25분, 손선호 하사는 잠시 뒤인 3시 45분 총살되었다.  이들이 총살당한 이유는 바로 직속상관 박진경을 살해했기 때문이다.박진경은 제주 4.3사건 당시 협상을 통해 사건을 해결하려 했던 김익렬 연대장이 해임된 후 후임으로 연대장에 임명된 사람이다. 그는 임명된 후 강경 진압에 나섰으며 고작 40여일 동안 무려 5천명에 달하는 제주도민을 체포했다.  박진경은 강경진압으로 공을 인정받아 대령에 진급했다.그리고 진급 축하연을 벌인 그날(48년 6월 18일) 숙소에 돌아와 잠든 후 손선호 하사가 쏜 두 발의 총에 살해됐다.  혹자는 박진경 살해를 주동한 문상길 중위와 손선..

Korean Orientalism? 영화 페스트 라이브스가 불편한 이유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Past Lives) 참 실망스러웠다.  '인연'이라는 한국적 감성을 소재로 하긴 했지만 한국적 감성은 느껴지지 않았다.오히려 등장인물이 서양인이었을 때 대사나 감정, 상황설정이 더 잘 들어맞을 것 같았다. 그저 외국 영화에 '인연'이니 '전생'이니 하는 동양적 감정이 어설픈 데코레이션으로 얹어져 있는 기분.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하기까지 했다.  이와 같은 불편함을 예전에 소설 '빠칭코'에서도 느꼈었다.  도대체 이 불편함은 무엇 때문일까? 생각해보니 그 불편함은 이 영화의 감독이나 빠칭코의 저자가 그리고 있는 대한민국이 '전형화'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서양 주류 사회가 아시아를 바라보며 흔히 저지르는 그 전형화의 오류 말이다. 바로 그 전형화가 한국인 2세 작가들에 의해 저..

왜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해? - 영화 거인

넷플릭스 알고리즘이 타임라인에 올려준 영화야 아마도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나 '혼자 사는 사람들' 같은 영화에 더블 엄지를 날려준 영향인 것 같아. 영화 소개문부터 끌렸어. '고아', '보호시설' 이라는 단어가 단숨에 내 눈길을 사로잡았어. 바로 플레이를 눌렀지. 그리고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주의깊게 봤어. 이제는 영화 '기생충'으로 세계적 배우가 된 최우식 배우가 2014년에 찍은 영화야. 봉준호 감독이 최우식 배우의 이미지가 요즘 젊은 청년들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취지의 얘기를 했던 것 같아. 유약하기 때문에 손에 들어온 것은 어떻게든 놓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그런 이미지랄까? 그런 최우식 배우의 2014년 버전인데, 여기서도 이미지가 아주 잘 맞았던 것 같아. 나는 사실 이런 류의 바닥 리얼..

Shalom lach Mirjam

shalom lakh Mirjam שָלוֹם לָךְ, מִרְיָם 마리아께 경배드리나이다 meleat ha-khesed מְלֵאַת הַחֶסֶד, 은혜가 가득하시며 Adonai imakh ה׳ עִמָּךְ 주님께서 함께 하시는 분 berukha at banashim .בְּרוּכָה אַתְּ בַּנָשִׁים, 모든 여인 중에 축복을 받으신 분 u-varukh pri bitnekh Yeshua וּבָרוּךְ פְּרִי בֵּטְנֵךְ יֵשׁוּעַ 잉태하신 예수님 또한 축복받으시나이다. Mirjam hakedosha מִרְיָם הַקְּדוֹשָׁה, 거룩하신 마리아시여. em haElohim אֵם הָאֱלהִים, 신의 어머니이신 분이시여 hitpaleli baadenu..

시인이란?

두 권 있는 네루다 시집은 그냥 정신 나간 낙서인것 같다. 별 감흥도 없고 감동도 없다. 물론 인상적인 표현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길 잃은 기차’ 처럼 말이다. 하지만 뭐든 헛소리를 두 권 분량 써 놓으면 아무리 미친넘이라도 한 문장 정도는 인상깊게 들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도 들었다. 사유를 하거나 사색을 하거나 잡념에 빠지는 건 사람을 크게 괴롭히고 상하게 하는 일이다. 그게 힘든 일이라는 걸 난 최근 1,2년 사이에야 알았다. 글도 안 써지고 걷지도 못하겠고 무기력에 빠지면 하루종일 생각에 빠지는데 그런 상태는 이러다 죽겠다 싶은 상태까지 나를 몰고 간다. 그러고보니 시인이란 위대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강력한 잡념의 소용돌이에서 용케 살아남은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