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끄저기/4.3의 사람들

문상길 중위를 찾아서 2. 뒤엉킨 기록과 기억

다락방별지기 2025. 3. 28. 16:30

사진 1
오늘 문상길 중위 관련 인터뷰를 할 어르신을 만나뵈었다.
어르신은 한창 과수원에 묘목을 심고 계셨다. 

문상길 중위와는 같은 항렬에 16촌이라 하시니 8대조가 같은 분이다. 
나 같은 사람에게 16촌이라면 남과 다름 없다. 
하지만 씨족 사회 전통이 강한 이곳 안동에서 16촌은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어르신은 젊으셨을 때 문중 유사를 맡으신 적이 있었다고 하신다.
그래서인지 문중의 일을 비교적 폭넓게 아시는 것 같았다. 

어르신은 1950년 생이시다. 
문상길 중위께서 돌아가신 후 태어나셨으니 문상길 중위를 경험으로 기억하실 수는 없는 분이다. 
하지만 집안 어르신을 통해서 전해 들은 이야기를 비롯해서 그 동안 밝혀지지 않았던 몇 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사실 안동에 와서 안상학 시인을 만나려 한데는 확실한 목표가 있었다. 
바로 문상길 중위가 운명의 땅, 제주로 언제 부임했는지 가늠해 보기 위해서였다. 

문상길 중위가 역사에 등장한 것은 박진경 연대장 암살범으로 체포된 이후이다. 

모든 위인전이 업적을 기점으로 가공된 과거의 기록을 담아 내듯 문상길 중위 역시 박진경 연대장 암살을 기점으로 목적에 따라 가공된 과거 기록을 갖게 되었다. 
극좌에서는 영웅으로, 극우에서는 역적으로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가공된 기록마저 조각조각 뒤죽박죽이다. 

 

그 조각을 모아 하나하나 붙여나가는 중에 큰 구멍이 하나 있었다. 
문상길 중위의 제주 부임 시기가 확실하지 않은 것이었다. 

하지만 기간 가늠은 가능했다. 

문상길 중위가 장교로 임관한 날은 1947년 4월 19일이다. 
그리고 4.3이 터지던 1948년 4월 3일에는 확실히 제주에 있었다. 
즉, 문상길 중위가 제주에 부임한 것은 이 사이, 1년이 채 안 되는 기간 어디쯤인 것이다.

그러던 중 부임 시기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정보를 하나 발견했다. 


이치업 소령이 연대장으로 재임시 중대장에 문상길 중위가 있었다. 


이 문구는 <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 한국전쟁사 제1권>에 등장한다. 
이치업 소령은 제주9연대 2대 연대장이었다.

그가 9연대로 부임한 것은 1947년 6월 1일이었다. 

그렇다면 문상길 중위가 임관한 날은 4월 19일이니, 제주 부임 가능 기간이 1947년 4월 20일에서 6월 1일 사이, 40일 남짓한 기간으로 확 줄어드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위 문구에 '재임시'라는 단어가 쓰였다는 것이다. 

'재임시'는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부임시'라고도 해석할 수 있고, '재임중'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부임시'라고 해석한다면 앞서 말한대로 문상길 중위의 제주 부임 시기는 4월 20일에서 6월 1일 사이가 된다. 
이 정도라면 문상길 중위가 소위 임관후 초임지로 제주로 발령받았다고 추정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재임중'이라고 해석한다면 기간은 1947년 11월 30일까지 7개월이나 벌어진다. 
이치업 연대장이 1947년 12월 1일부로 연대장에서 '해임'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상길 중위의 부임시기를 좀더 좁혀볼 수 있는 단서가 있긴 했다. 
개인 증언이라는 문제점이 있지만 말이다. 
문상길 중위의 자료를 모으면서 '개인 증언'은 대체로 신뢰하지 않게 됐다. 
하지만 개인 증언이나마 우연히라도 정확하기를 바라며 인용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표선국민학교에서 난생 처음으로 9연대 1기 생들의 제식훈련을 보고 

멋지다고 생각, 경비대에 지원하게 됐다.
당시 모병활동의 지휘관은 중대장 신재식 중위와 소대장 문상길 소위였다.

<4.3은 말한다> 1권에 등장하는 이 문구는 제주9연대 3기 사병으로 입대했던 강덕윤 씨의 증언으로서, 증언자는 이때를 1947년 6월로 기억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문상길 중위가 제주에 부임한 기한은 아무리 길게 잡아도 1947년 6월 30일까지이다. 
연대에 보임한 후 이런저런 행정적 절차를 거쳐 보직을 받았을 테니 제주에 도착한 것은 6월 30일보다 이전이 될 것이므로 애초에 가능성 중 하나인 4월 20일에서 6월 1일 사이 기간으로 봐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런 고민 중에 <안동형무소 터 순례 및 문상길 중위를 찾아서> 책에서 눈에 띠는 기록을 볼 수 있었다. 


어떤 사건으로 문상길 중위가 궁지에 몰렸대요. 
이웃 동네 당시 소령급이면 고위직인데 그 고위직이 문상길 중위를 면회를 갔대요. 
그래 가지고 문중위를 빼낸 것 같애요. 
그래서 한직으로 보낸 것이 제주도로 간 것 같애요. 
그러니까 우리 집안(문씨) 누가 빼돌려 가지고 제주에 갔다더라고 

여기 집안 사람들은 그렇게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안동형무소... 86p)

이 기록은 나에겐 두 가지로 의미가 있었다. 

첫째, 당시 제주9연대 부임은 마치 '유배'와 같아 사람들이 기피하는 자리였고 그랬기 때문에 뭔가 사건이나 잘못이 있어야 9연대에 배속되었다는 여러 증언과 맥락이 일치한다. 

즉, 문상길 중위도 어떤 사건에 연루되어 '유배'처럼 제주에 부임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둘째, 그렇다면 그 사건이란 무엇일까? 그 사건을 알게 되면 청년 장교 문상길이 어떤 사람이었을지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이 두 가지 궁금증을 알아보기로 마음 먹었다.

그것이 안상학 시인께 연락을 드리고 안동을 찾아갔던 가장 직접적인 이유였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그 어떤 궁금증도 해소할 수 없었다. 

 

현장에서 만나뵌 문중의 어르신은 우선 문상길을 빼내 주었다는 그 장교의 이름은 정확히 기억하셨다. 

다만 그 사건이 무엇인지는 기억하지 못하셨다.

 

대화와 기록 간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는 법이다. 

일단 당시 대화 분위기를 최대한 살린 녹취록은 다음과 같다. 

 

어르신 대구 사건하고 관련이 없고, 여수사건하고 관련이 있...
안 선생님 여수 사건은 이훈대
여순 사건은 돌아가시고 나서 사건입니다.
어르신 그랬었나? 그 전이 대구 10월, 그럼 대구 사건인가?
안 선생님 대구 사건 같애.
어르신 그래가지고 인제 참... 그 당시 6.25전이니까 계급이 중령인가
안 선생님 그 때 당시는 중령급 되었겠네요.
어르신 그렇지 싶어. 그래가지고 글로 해가지고 하여튼 적당히 뭐 마무리 되었었는가 그래 이야기 들었어.
안 선생님 그 이후에 그러면 제주도 보내진거죠?
어르신 내가 보기에는 그래가 제주도 간 걸로 나와

 

나로서는 이야기가 혼란에 혼란을 거듭하는 방향으로 흘렀다.

 

이건 프레이밍이다. 

문상길 중위가 제주에 부임하기 전,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그 시기가 프레이밍 되어 있는 것이다. 

바로 1950년 1월, 북한에서 발행된 잡지 <청년생활>에 의해서 말이다. 

 

문상길 중위의 흔적을 찾아다니면서 이런 말들을 들었다. 

 

말1. 문상길이 민청에 가입했다.

말2. 문상길이 대구 10.1항쟁에 가담했다.

말3. 문상길은 대구 10.1 항쟁에서 김달삼과 손선호를 알게 됐다. 

 

이런 말의 원천은 결국 <청년생활>이었다. 

 

말1과 말2는 <청년생활>에 직접적으로 기록되어 있고, 말3은 이를 기반으로 누군가가 지어낸 것이다. 

극우는 극우들대로 반복 재생산하고, 극좌는 극좌들대로 반복 재생산하는 여러 말들 중 하나 말이다. 

 

당시 나름 영향력이 있었던 월북작가가 쓴 <청년생활>기사에 '대구10.1사건 참가'가 기록되어 있으니, 정확히 기억할 수 없는 그 사건이 그냥 '대구 10.1시건'으로 귀결되고 마는 것이다. 

전형적인 프레이밍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내 의문은 너무나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대구 10.1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문상길은 대구6연대 군인이었다. 

 

군인이 부대 밖으로 나와 대구 10.1사건에 가담했다.

 

그냥 말로는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군대 생활을 한 나로서는 이 문구가 자연스럽게 들리지 않는다. 

물론 당시 군대의 기강은 달랐을 수도 있다. 

게다가 국방경비대의 모든 연대가 장병들 간의 사상충돌로 이런저런 문제를 겪었기 때문에 복무중인 군인이 부대 밖으로 나와 시위에 참여한다든가 하는 걸 상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랬다면, 즉, 문상길이 대구 10.1사건에 가담했고, 그 사건 때문에 고위직 누군가가 와서 문상길을 빼내 주었다면, 이 일련의 사건은 다음과 같은 타임라인을 갖게 된다. 

타임라인 1
1946년 10월 1일 대구 10.1 사건 발생
군복무 중이던 문상길, 부대 밖으로 나와 시위에 합류, 이 일로 부대 영창 또는 경찰에 체포 감옥에 갇히게 됨.
일정 미상 문중에 고위직에 있던 누군가가 와서 사건을 무마, 제주 부임을 조건으로 문상길을 빼내 줌
일정 미상 대구6연대장 문상길을 우수 하사관으로 추천
1947년 1월 13일 문상길, 조선경비대사관학교(육군사관학교 전신) 3기로 입교
1947년 4월 19일 문상길 소위 임관 후 제주도 부임

 

사건을 바라보는 건 이런 특징이 있다.

따로 떼어 놓고 보면 하나하나가 다 그럴듯 해 보여도 시간 순서대로 나열해보면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기가 쉬워진다는 것이다. 

 

과연 위의 타임라인이 사실적으로 보이는가?

이 타임라인은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 문제점은 앞서 언급했듯 군인 신분인 문상길이 부대 밖으로 나와(무단 탈영) 시위에 참여했을 거라는 점이고

둘째 문제점은 그런 문상길을 연대장이 우수 하사관으로 사관학교에 추천을 했다는 점이 납득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런 문제점을 제거하기 위해 내가 생각하는 보다 사실적인 타임라인은 다음과 같다. 

타임라인 2
1946년 10월 1일 대구 10.1 사건 발생, 응원경찰과 서북청년단, 미군에 의해 진압됨.
당시 국방경비대는 이 사건 진압에 일체 관여하지 않았음. 
따라서 군인 신분인 문상길은 시위대로든 진압군으로든 참여하였을 가능성은 낮음
1946년 12월 14일 조선경비대사관학교 2기 임관
일정 미상 통위부는 조선경비대사관학교 3기는 우수 하사관으로 구성하기로 결정하고 각 연대장에게 우수 하사관을 추천하도록 요청
일정 미상 대구6연대장, 문상길을 우수 하사관으로 추천
1947년 1월 13일 문상길,  조선경비대사관학교 3기로 입교
1947년 4월 19일 문상길, 소위임관 후 대구6연대로 복귀
1947년 4월 말~5월 초 초임 소위 문상길이 어떤 사고를 저질러 영창 입감.
문중의 고위직이 개입, 남들은 꺼려하는 제주에 부임하는 조건으로 빼내 줌.
1947년 5월 중 문상길, 제주9연대 부임

 

나는 아무리 봐도 타임라인2가 타임라인1보다 사실적으로 보인다. 

 

물론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은 현재로서는 없다. 

일단 그 문중의 고위직이었다는 분의 정보를 추적하고 있지만, 확실한 정보가 나올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이 뒤엉킨 기록과 기억의 한 가운데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전글 : 문상길 중위를 찾아서 1. 어린 시절 뛰놀았을 마을길

다음글 : 문상길 중위를 찾아서 3. 증언과 족보비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