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길이 아직 대구에 있었을 때, 그는 어떤 사건에 연루되었었다.
이 일로 인해 그는 영창 혹은 감옥에 구금되었던 것 같다.
구금된 그를 꺼내 준 분이 있다.
집성촌 어르신의 증언에 따르면 그 사고가 제주에 부임하게 된 이유가 되었다고 한다.
그 사건이라는 게 무엇이었을까?
난 이런 일에 마음이 끌린다.
역사의 거대한 사건이 아닌, 어쩌면 인간 문상길을 알 수 있는 단서가 될지 모를 그 사건 말이다.
하지만 이 사건을 기억하는 이는 이제 이 세상에 없는 것 같다.
그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구금된 문상길을 꺼내 주셨다는 이상철 장군(군번 10081)을 참배하고 왔다.
이상철 장군은 1919년생으로 안동이 고향이다.
일본 리쓰메이칸대학 재학 중 학도병으로 징집되어 군인 생활을 시작하였고 군사영어학교를 수료한 창군주역이다.
1946년 4월 2일, 대구 6연대 책임자로 김종석 중위가 부임할 때, 소대장으로 근무하셨으며 이후 당분간 6연대 장교로 재임하셨다.
이때 문상길 중위의 어떤 사고에 개입하여 제주 부임의 단초가 된 것이다.
비석의 내용을 훑으며 다행이라고 느낀 부분이 있었다.
문상길 중위의 흔적을 쫓으면서 대한민국 창군 주역이라는 여러 군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게중에는 5.16 군사 쿠테타에 가담하고 영화로운 삶을 살다간 군인들이 많다.
그들은 한결같이 영화로운 삶에 만족하지 않고 명예까지 차지하겠다는 욕심으로 수기나 자서전 등을 남겼다.
참으로 가소로운 일이다.
제 주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물어댄 미친개와 같은 것들 아닌가?
얼마나 생각이 없으면 그 부끄러운 일생이 자랑스럽다고 떠들어댔겠는가?
이상철 장군은 그런 미친개 군인은 아니었던 것 같다.
문제의 1961년 이후에도 이 분의 보직은 한결같이 군인이셨고 얼마 안가 예편하셨다.
정말 다행이었다.
끼리끼리 모인다고 하지 않는가?
아직도 이 나라는 미친개들이 남긴 무거운 업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묘소에 절을 올리며 청년 문상길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게 해 달라는 기원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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