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별과 하늘의 이야기/하늘앓이 - 별지기의 이야기들 172

C/2023 A3 쯔진산 아틀라스 혜성을 만나러 가는 길

전라남도 고흥에서 별쟁이로 활동하시는 이정양 선생님께서 기회를 주셔서 두 개 관측 행사 참석을 위해 고흥에 다녀왔습니다.  뭔가 움직일 꺼리가 생겨서 참 좋네요.  19일에는 분청문화박물관 옆, 고흥운대청소년 야영장에서 관측회 지원이 예정되어 있었고23일에는 장흥 장평중학교에서 관측회를 지원하는 일정이었습니다.  전라남도 고흥길은 참 먼 길입니다. 몇 번을 드나들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아마 전라남도 고흥, 완도, 진도 쪽이 서울에서 가기 가장 먼 길인 것 같습니다.그런데 그렇게 먼 곳이 또 제가 좋아하는 곳이죠. 처음에는 에어비앤비로 여수 쯤에 숙소를 잡을까 하다가 이왕 가는 거 이번에는 여기저기 돌아다녀볼 생각에 그리고 무엇보다 돌아오는 길에는 밤하늘도 한 번 만나볼 생각에 텐트와 캠핑장비를 챙겨..

겁쟁이 별지기

난 겁쟁이다.어렸을 때부터 겁이 많았다. 처음 별을 보러 나갔을 때,나는 아직 어둠이 채 깔리지 않은 강화도 강서 중학교 운동장에 혼자 서 있는 것도 힘들어 했다.  그럼에도 별이 보고 싶어서 관측을 나갈 때마다 온라인 카페 번개 게시판에 관측을 나간다고 올리곤 했다.누군가가 와 주길 바랬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별지기 소모임에 가입하게 되었다. 운이 좋아 함께 관측을 나갈때는 즐거운 시간을 만끽할 수 있었지만날이 좋음에도 아무도 관측을 나가지 않을 때는 누군가가 관측을 나가기를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곤 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는 밤하늘을 만나는 데 한계가 있었다. 밤하늘이 아니라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을과연 별지기의 행동이라 할 수 있겠는가? 나는 결국 혼자 밤하늘 아래 서기로 했고,2017년 8월, ..

눈 앞의 전갈자리

2월에는 이런저런 사정으로 관측을 제대로 하지 못했어. 설날 다음날 부랴부랴 행장을 꾸려 밤늦게 조경철 천문대에 관측을 나갔는데 그 날도 관측에 집중하지 못했어. 차 안에서 설핏 잠이 들었다가 새벽 4시 반에 차 밖으로 나왔는데 그때 내 눈에 전갈자리가 들어왔어. 전갈자리가 바로 내 눈높이에 떠 있는 거야! 전갈자리는 정말 아름다운 별자리야. 그런데 내 눈높이에 떠 있는 전갈자리는 별지기 생활 10년이 된 나도 처음 보는 거였어. 조경철 천문대가 워낙 높은 곳에 있었던 덕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설연휴에 사람이라곤 없는 새벽 취약 시간대다 보니 평소 같으면 이런저런 빛더럼에 가려졌을 낮은 고도까지 충분히 어두워 지평선에서 솟아오르는 전갈자리를 선명하게 볼 수 있었던 것 같아.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고 ..

2024 사분의자리 별비 알현기

저는 별똥별을 좋아합니다. 별지기가 될 생각을 하기 전부터 이미 본능적으로 별똥별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별지기가 된 후에도 유성우는 꼭 챙기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2014년에 별비를 제대로 보려면 강화도 정도의 하늘로는 어림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2015년부터 최대한 어두운 곳을 찾아들어갔습니다. 그러면서 정말 멋진 별비를 만났습니다. 특히 소원보다 별똥별이 남아돌았던 2017년과 2018년 쌍둥이자리 별비는 지금도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참고 링크 : 2017년 쌍둥이자리 별비 알현기 2018년 쌍둥이자리 별비 알현기 ) 페르세우스 별비는 기대만큼 많은 별똥별을 만나진 못했지만 그래도 계절이 계절인지라 추위 걱정 없이 하늘을 가로지르는 미리내를 보며 낭만적인 여름밤을 만끽할 수..

두 번째 망원경 하늘이를 만나다.

1. 저배율을 갖고 싶다. 첫눈이라 이름붙인 나의 첫 번째 망원경 C11을 들인지도 어언 9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당시 저는 광학장비에 대해 아는 것은 개뿔도 없었고 더더군다나 공학 머리는 잼병인터라 첫눈이를 지탱할 안정적인 가대를 마련하는데도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래도 열정 하나는 누구도 뒤지지 않았던 때였던 것 같습니다. 첫눈이와 함께 2015년부터 메시에 마라톤에 뻔질나게 참여했고, 이슬과 서리는 물론 새벽 겨울비까지 맞으며 별지기 생활을 함께 해 왔습니다.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1년 12월이었습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배율이 갖고 싶다." 그렇습니다. 이른바 복합굴절식 망원경인 첫눈이의 강점은 극강의 초점거리였습니다. 그 덕에 구현되는 시원시원한 배율은 언제나 시야를 가득..

관측 준비 - 가장 행복한 시간

찬바람이 분다. 찬바람이 분다는 건 그날 하늘이 아주 맑을 거라는 걸 알려주는 사인이다. 부랴부랴 천문대로 향한다. 삼각대를 펴 수평을 맞추고 엘리베이터 하프피어와 경위대를 올리고 내 망원경 첫눈이를 달았다. 차가운 날씨를 좋아하는 첫눈이가 날카로운 눈을 떴다. 나는 그제서야 옷을 갖춰 입는다. 내복 두 벌 양말 두 켤레 바지 두 벌 잠바 두 벌을 껴 입고 양말과 양말 사이는 물론 모든 주머니에 핫팩을 넣어 몸을 데운다. 이제 커피 한 잔을 따른다. 커피에 씀씀이 녹아든 세상 모든 행복이 모락모락 김이 되어 피어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