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망원경 하늘이를 만나다.

2024. 1. 10. 00:021. 별과 하늘의 이야기/하늘앓이 - 별지기의 이야기들

1. 저배율을 갖고 싶다.

 

첫눈이라 이름붙인 나의 첫 번째 망원경 C11을 들인지도 어언 9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당시 저는 광학장비에 대해 아는 것은 개뿔도 없었고 더더군다나 공학 머리는 잼병인터라 
첫눈이를 지탱할 안정적인 가대를 마련하는데도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나의 첫 번째 망원경 셀레스트론 C11, 이름은 첫눈이입니다.


그래도 열정 하나는 누구도 뒤지지 않았던 때였던 것 같습니다. 
첫눈이와 함께 2015년부터 메시에 마라톤에 뻔질나게 참여했고, 
이슬과 서리는 물론 새벽 겨울비까지 맞으며 별지기 생활을 함께 해 왔습니다.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1년 12월이었습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배율이 갖고 싶다."

그렇습니다. 
이른바 복합굴절식 망원경인 첫눈이의 강점은 극강의 초점거리였습니다. 
그 덕에 구현되는 시원시원한 배율은 언제나 시야를 가득 채우는 대상을 선명한 콘트라스트와 함께 선사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저배율 그물 한 번에 여러 은하를 담아 올리고 싶다는 생각,
넓게 퍼져 있는 희미한 은하나 성운을 전체로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
별이 끓어오르는 하늘을 냄비 속을 바라보듯이 보고 싶다는 생각,
이제 막 분해되기 시작하는 배율에서 이중별을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 등
저배율에서만 가능한 우주의 모습이 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결정했습니다. 
저의 두 번째 망원경을 들이기로 말입니다. 

그.러.나.

언제나 제게 중요했던 건 망원경보다는 밤하늘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의지였습니다. 
그래서 어떤 망원경을 고를까 하는 고민은 거의 없었습니다.

 

들이고자 하는 망원경이 딱 정해져 있었죠.
미드 라이트브리지 300밀리로 말이죠.

그런데 희한했습니다. 

두 번째 망원경을 들이기로 마음먹은 2021년 12월에 

우리 나라에 라이트브리지 돕소니언은 씨가 마른 상황이었습니다. 
그저 클릭 한 번에 척! 내 앞에 나타날 줄만 알았던 망원경이 없어 황당했죠. 

물론 다른 브랜드의 돕소니언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전부터 미드 라이트브리지를 찍어두었던 터여서 그런지 맘이 가지 않더군요.

이런저런 고민을 하는데 
예전에 들었던 어떤 얘기가 떠올랐습니다.
한국아마추어천문학회 이소월 경남지부장님께서 해 주신 얘기였죠.
지부 회원 중에 문창호 선생님이 돕소니언을 만드신다는 얘기였습니다. 

문창호 선생님은 저도 잘 아는 분이었습니다. 
한국아마추어천문학회에서 천문지도사 2급 연수를 통해 알게 된 분입니다. 

이 바닥에 들어와서 많은 분들을 만나뵈었었죠.
별지기들은 가만 보면 한 분 한 분이 저마다의 독특한 빛을 뿜어내죠.

그 중 한 분인, 문창호 선생님은 조용하고 은은하지만, 확실한 자신만의 빛을 뿜어내는 분입니다. 
마음이 가고 믿음이 가는 분이었죠. 

그래서 결정했습니다.
문창호 선생님께 돕소니언 제작을 맡겨보기로요. 

부산에 내려가 문창호 선생님을 뵈었습니다.

이소월 지부장님과 이두현 선생님도 함께 뵐 수 있었죠. 

문창호 선생님의 임시 작업실 구경도 하고 융숭한 대접도 받았습니다. 
오랜만에 옛 인연이었던 분들을 만나니 참 좋았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습니다. 

 

직접 얼굴을 뵙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만 구경을 400밀리로 올리고 말았죠. 

사실 저는 노안이 온 것에 큰 충격을 받은 상태였습니다. 
나도 늙어간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마음을 비워야 한다는 것을 막 익히던 때였죠. 

 

구경을 300밀리로 한정한 것은 그 때문이었습니다. 
300밀리가 겸손의 최대치 구경이라고 생각했죠. 
물론 점점 무거운 걸 들기 힘들어질거라는 예측도 한몫했습니다. 

그런데 오래전부터 돕소니언을 써 오시던 선배님들의 말씀을 들으니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결국 구경을 400밀리로 올렸습니다. 
늘어날 무게에 대한 걱정은 그냥 막무가내 자신감으로 눌러버리기로 했습니다.

"별지기가 아무리 비실비실해도 400밀리 미러 박스는 들 줄 알아야지...암...암...그렇고 말고!"

 

 

2. 만남

 

2년 전, 그렇게 주문한 망원경을 드디어 만나게 된 것입니다. 

거울 수급이 너무나 늦어졌던 걸 비롯해서 우여곡절이 없진 않았지만
주문자인 저는 사실 신경쓸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루하루 치솟는 환율을 보며 일찍 주문하길 잘했다는 생각도 했죠.

마음 고생은 아마 제작자인 문창호 선생님이 많이 하셨을 겁니다. 

 

명판을 새기는 것부터 해서 까다로운 요구 사항에도 
묵묵히 멋진 망원경을 만들어주신 문창호 선생님께 이 자리를 빌어 다시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2023년 12월 12일은  제 두 번째 망원경을 만나기로 한 날이었습니다. 

계획은 일단 멋지게 세웠습니다. 

퍼스트라잇은 내게 각별한 의미가 있는 황매산에서 하자. 
황매산에서 내가 가진 모든 망원경을 펼쳐놓아 서로 인사도 시켜주자. 

그런 생각이었죠. 

하지만 출발하는 날이 다가올수록 일기예보가 안 좋아졌습니다. 

 

어쩔 수 없죠. 
내어주는 만큼 받아야 하는게 하늘이니 말입니다. 

일정 변경 없이 애초 계획대로 제 모든 기존 장비를 제 차 흰둥이에 싣고 출발했습니다. 

12월 12일 저녁 7시 

 

문창호 선생님의 양산 공방에서 
'하늘이'라는 이름을 붙인 제 두 번째 망원경을 드디어 만났습니다. 

 

문창호 선생님의 양산 공방 앞 길.

 

공방 내부 풍경, 카메라를 요리조리 피해 다니시는 문창호 선생님을 요리조리 쫓아가며 한 장 찍었습니다. ^^

 

제 두 번째 망원경 하늘이와의 첫 대면. 감격적인 순간이었습니다.

 

 

특별히 요청드렸던 미러 박스 명문.


영겁의 빛을 담는 별지기의 빛그릇 
여섯 번째 
문창호 빚음
 

 

미러박스에 새겨진 이 명문은 제가 특별히 요청드린 것입니다.
정말 마음에 들게 잘 새겨진 것 같습니다.

별다른 굴곡이 없는 한 이 망원경은 계속 저와 함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언젠간 제 것이 아닌 날이 오겠죠. 
그 때에도 이 망원경을 만든 분은 계속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공방에서 망원경을 조립하는 법과 사용하는 법을 익히고

저의 관측 습관에 맞게 파인더 브라켓 베이스를 고정하는 것으로 모든 인수인계 과정이 끝났습니다. 

거울 사양, 초점거리 1,680, F4.2, Strehl 값 0.994의 주문제작 거울입니다.



이제 하늘이를 제 차에 싣는 일이 남았습니다.

제 차 흰둥이는 K5 하이브리드입니다.
뒤 트렁크가 일반 내연기관차에 비해 훨씬 작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수석이 남을 정도로 적재가 잘 되었습니다. 

 

흰둥이 뒷 좌석이 모든 장비를 실은 모습, 400밀리 돕소니언과, 280밀리 슈미트 카세그레인, 그리고 각종 부속 장비가 모두 실렸습니다.


차를 바꿔야 하는 일을 피해갈 수 있게 해 준 제 차 흰둥이가 얼마나 고마왔는지 모릅니다.

문창호 선생님과 간단한 술자리를 가지는 것으로 
제 두 번째 망원경 하늘이를 만난 감격적인 하루를 마무리하였습니다. 


3. 뜻밖의 퍼스트 라잇

일기예보가 좋지 않아 황매산을 가려는 계획은 취소했습니다.
그 대신 간디마을 별아띠 천문대를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팬데믹 전에 별아띠 천문대 김도현 대장님께서는 
돕소니언 자작 프로그램을 종종 운영하곤 하셨었습니다. 

 

그런 김도현 대장님께 제 잘생긴 돕소니언도 보여드리고 싶었죠. 
물론 2021년, 간디마을을 떠나온 후 찾아뵙지 못한 김도현 대장님께 인사를 드리는게 가장 큰 목표였습니다. 

나에게는 정신적인 고향과도 같은 별아띠 천문대


여러 사람들의 꿈과 추억이 두껍게 쌓여 있는 별아띠 천문대에 
이곳의 주망원경이자 김도현 대장님께서 직접 만드신 460밀리 돕소니언 옆에 
제 망원경을 함께 세웠습니다.

 

이 멋진 천문대에 제 망원경을 세울 수 있었다는 게 정말 영광스러웠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일기예보와 달리 이때 군데군데 하늘이 열렸습니다.

그 덕에 천문대 천정을 열어 감격스러운 퍼스트 라잇을 할 수 있었죠.

 

별아띠 천문대 천정을 열어 기대하지 않았던 퍼스트 라잇을 할 수 있었습니다.


평소에 찾아보던 대상을 
마치 메시에 마라톤을 하듯 빠르게 하나하나 훑어가며,
다양한 아이피스를 사용해가며 바라보았습니다. 

트라페지움 E는 단번에 분해해 볼 수 있었고
이중별과 다중별로 분해되는 리겔과 카스토르도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초점거리에 대한 부담이 사라져 8밀리 아이피스도 쉽게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본 목성의 질감은 슈미트 카세그레인보다 훨씬 더 뛰어났죠. 


참으로 감격스럽고, 행복한 순간이었습니다. 

 

 

4. 나에게 보내는 위로

 

이튿날 이른 아침. 
간디마을 산책을 했습니다. 

제가 머물렀던 채울집도 오랜만에 둘러봤습니다. 

 

나의 제 2의 인생을 구상하고 준비했던 채울집.


별아띠 천문대 데크에 앉아 커피 한 잔을 하며 이곳에 머물던 때를 회상했습니다.

 

추억이 새록새록 올라오던 순간.

 


그때 저는 회사를 그만두고 간디마을에 내려와 
하루하루의 시간을 무겁게 버텨내고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괜찮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의 저는 괜찮지 않았습니다. 

회사는 내 손으로 그만두었고

열심히 생활했던 한국아마추어천문학회에서 쫓겨났으며

곧이어 팬데믹이 들이닥쳤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그때, 심각한 스트레스와 우울, 불안감에 시달렸습니다. 

그게 스트레스고
그게 우울이고
그게 불안감이라는 것을 그때는 물랐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알겠습니다.

그런 감정의 기복 때문에 

주위를 제대로 살필 수도,  
사람을 쉽게 만날 수도 없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 순간을 잘 버텨낸 저 자신을 위로해 주었습니다. 

 

됐어.

잘했어.

잘 해 나갈거야. 

한편으로는 그 삭막했던 생활을 함께 버텨냈던, 
이제는 모두 무지개 다리를 건너 내 곁을 떠나간 제 강아지들, 하늘이, 하나도 생각났습니다.

 

그 아이들 덕택에 눈만 뜨면 앉아서 글을 써내려가던 
불안하고 외로웠던 산청 생활을 버텨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산청 생활의 한 장면, 지금은 이 강아지들도, 산책을 함께 하던 이 길도 모두 사라져버렸습니다.

 

제 두 번째 망원경에 '하늘이'라는 이름을 붙인 건,
그 시절을 기억하기 위해서입니다.

 

 

5. 다짐.

 

이후 하늘이를 데리고 제가 주로 가는 관측지도 구경 시켜줬습니다.
원래 퍼스트 라잇은 새 망원경으로 하는 첫 번째 관측이라는데
저는 제가 주로 다니는 관측지를 모두 보여주는 것으로 컨셉을 잡았죠.

그렇게 강원도 홍천의 하늘, 광덕산의 하늘, 
나중에는 원래 목표로 했던 황매산의 하늘까지 모두 보여주었습니다. 

홍천 관측지 구경.

 

조경철 천문대 구경.

 

황매산 구경


이렇게 제 두 번째 망원경 하늘이를 맞이하는 퍼스트 라잇을 모두 마쳤습니다.

이 멋진 망원경을 제작해 주신 문창호 선생님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 멋진 망원경을 만날 수 있도록 다리를 놔주신 한국아마추어천문학회 이소월 지부장님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 망원경과 함께 하늘을 만나는 것이 게을러지거나 부끄러워지지 않도록
그 하늘 아래 변함없이 있는 별지기가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