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0. 28. 12:45ㆍ1. 별과 하늘의 이야기/하늘앓이 - 별지기의 이야기들
전라남도 고흥에서 별쟁이로 활동하시는 이정양 선생님께서 기회를 주셔서 두 개 관측 행사 참석을 위해 고흥에 다녀왔습니다.
뭔가 움직일 꺼리가 생겨서 참 좋네요.
19일에는 분청문화박물관 옆, 고흥운대청소년 야영장에서 관측회 지원이 예정되어 있었고
23일에는 장흥 장평중학교에서 관측회를 지원하는 일정이었습니다.
전라남도 고흥길은 참 먼 길입니다.
몇 번을 드나들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아마 전라남도 고흥, 완도, 진도 쪽이 서울에서 가기 가장 먼 길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먼 곳이 또 제가 좋아하는 곳이죠.
처음에는 에어비앤비로 여수 쯤에 숙소를 잡을까 하다가 이왕 가는 거 이번에는 여기저기 돌아다녀볼 생각에
그리고 무엇보다 돌아오는 길에는 밤하늘도 한 번 만나볼 생각에 텐트와 캠핑장비를 챙겨 길을 나섰습니다.
오전 7시 반에 출발한 길을 느긋하게 달렸습니다.
순천 이마트에 들러 필요한 부식거리를 구입하고 다도해해상국립공원 팔영산 캠핑장에 도착한 시간은 15시 즈음이었습니다.
팔영산 오토캠핑장은 국가에서 관리하는 국립공원내 캠핑장입니다.
가격이 저렴하더군요.(사이트 이용로 19,000 + 전기사용료 5,000)
다만 캠핑장 예약이 너무 늦어, 딱 하나 남은 자리를 하룻밤만 예약할 수 있었는데 제 자리는 바로 앞에 캠핑사이트가 또 있는, 그다지 좋지 않은 자리였습니다.
다행히 내 앞 갬핑사이트 쥔장이 아직 도착하지 않아 수월하게 피칭할 수 있었습니다.
피칭을 마치고 충분한 휴식을 가졌습니다.
17시 이후 안타깝게도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녁 6시, 과역면의 맛집인 동방기사식당으로 향했습니다.
오랜만에 만나뵙는 이정양 이사님 내외분, 김영주 전남지부장님, 임수역 부지부장님과 함께 맛난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오늘의 관측행사가 있는 분청문화박물관 청소년 야영장으로 향했습니다.
이동 중에 비가 무작스럽게 내렸습니다만, 도착할 때 즈음에는 다소 잦아드는 것 같았습니다.
비록 하늘이 열리지 않았지만 닫힌 하늘이라고 해서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지요.
구름 너머에 휘영청 밝게 떠 있을 달과 토성을 못 보여드리는 건 아쉽지만, 그래도 천체망원경에 대해서, 그리고 밤하늘을 이해할 수 있는 소소한 상식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모두 집중하여 들어주셔서 참 고마왔습니다.
행사를 마치고 저녁 9시쯤 돌아왔습니다.
사방이 깜깜하고 고요한게 참 좋았습니다.
이마트에서 사온 안주 거리에 소주 한 잔 하고 잠이 들었습니다.
20일 아침.
느긋하게 일어나 아침을 챙겨 먹었습니다.
팔영산 오토캠핑장에는 전자렌지가 없어 햇반을 데워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 전자렌지는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러고보니 전자렌지 없는 캠핑장은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결국 라면을 끓여 아침을 떼웠습니다.
텐트를 걷고 입구에 있는 능가사에서 보이는 멋진 팔영산 풍경과 시원한 처마를 구경한 후 다음 캠핑장으로 향했습니다.
오늘부터 2박을 할 고흥만수변노을공원 해변캠핑장으로 향했습니다.
고흥은 서쪽 풍경이 참 아름다운 곳입니다.
거금도 용두산 자락에서 바라본 서쪽 풍경도 참 아름다왔고
고흥만에서 바라본 득량만 풍경도 참 아름다왔죠.
고흥만수변노을공원 해변캠핑장은 그 중에서 득량만 풍경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이곳에서 되도록 오래 있고 싶었지만 매주 수요일은 정기휴일이라 2박 만 할 수 있었습니다.
바람이 몹시 불어 텐트를 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텐트를 모두 설치하고 세간 살이까지 정리하니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대개 캠핑을 할 때는 캠핑장비만, 관측을 나갈 때는 관측 장비만 챙겼습니다.
캠핑장비와 관측장비를 함께 챙겨 움직인건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그러니 나도 힘들고 그 많은 짐을 나르는 흰둥이(K5)도 피곤해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좀 움직이더라도 한 곳에만 있자는 생각이 들어 남은 일정은 황매산 오토캠핑장을 예약했습니다.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고 잠이 들었습니다.
이튿날 아침엔 거금도에 지인분들을 찾아뵈었습니다.
지난 6월, 거금도 한 달 살이를 할 때 만나뵌 분들이죠.
숙소 주인 내외분과, 그곳에 터를 잡고 사시는 할리 선배님.
1년 전부터 거금도에서 터를 잡고 살아가시는 사무장님 내외분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뜻밖에 할리 선배님과 함께 계시는 티처 선배님도 만나뵈었습니다.
모두 저마다 위치에서 삶을 살아가시는 모습이 좋았습니다.
거금도는 양파 파종으로 한참 바쁜 시기였습니다.
동촌 마을 이장님을 뵙지 못한 게 아쉬웠습니다만,
그래도 안부 전화를 주셔서 반가왔습니다.
오늘 밤은 많은 비가 예보되어 있었습니다.
텐트를 미리 걷을까 하다가 우중 텐트 철수도 한 번 해볼만하다 생각되어 그냥 있기로 했습니다.
다만 관리소에 부탁하여 비에 푹 젖을 텐트를 담을 커다란 비닐 봉지를 받았습니다.
그날 밤에 비가 아주 많이 내렸습니다.
그래도 텐트가 비를 잘 막아주니 걱정 없이 잠들었습니다.
나의 망원경 하늘이는 혹시라도 비를 맞지 않도록 탁자 아래 잘 모셔두고 있었죠.
새벽 5시.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걸...
바닥에 물이 들어차 있었습니다.
아니...파쇄석 바닥인데 물이 안 빠지다니...
황급히 하늘이부터 챙겼습니다.
다행히 비닐 장판이 차오르는 물을 막아주고 있었습니다.
하늘이를 황급히 차 안으로 대피시킨 후 날이 밝기를 기다렸습니다.
비가 와서 젖은 텐트를 접을 거라는 생각을 했지, 바닥에 물이 차올라 세간이 온통 젖을 건 예상을 못했습니다.
캠핑장 관리하시는 분도 안절부절 하시더군요.
배수가 안 되다니, 날림 공사를 한 것 같다고 투덜투덜 하시더군요.
바닥에 카메라를 두지 않은 게 천만 다행입니다만, 다른 세간은 물에 젖는 걸 피하지 못했습니다.
젖은 물건의 물기를 일일이 닦아내고 수건을 짜내느라 텐트를 걷어내는데 예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어찌어찌 짐을 모두 정리하여 황매산으로 향했습니다.
남부지방에 모두 비가 예보된 상태라 황매산 캠핑장은 구름 속에 잠겨 있었습니다.
젖은 텐트를 다시 펴, 피칭을 완료하고 불을 피워 젖은 몸을 말리며 하루를 마무리 했습니다.
새로운 날이 밝았습니다.(23일)
은혜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아침이었습니다.
다만 날은 부쩍 추워졌습니다.
고흥에서부터 습기를 머금어 온 이불과 수건을 널어 말렸습니다.
밀렸던 포스팅을 하며 하루를 보냈습니다.
오늘은 장흥에 있는 장평중학교에서 관측회를 지원하는 날이었습니다.
망원경을 챙기고, 오후 3시 일찌감치 길을 나서 6시에 장평중학교에 도착했습니다.
하늘이 무척 깨끗했고
금성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이 정도면 아이들에게 혜성도 보여줄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고도 20도로 그다지 높지는 않지만, 서쪽 하늘이 넓게 열려 있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예상 밖의 변수가 있었습니다.
학교 본관에 걸려있는 LED 전광판이 꺼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걸 끄려면 담당자가 있어야 하는데, 교장 선생님께서 담당자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하시더군요.
결국 그 어마어마한 LED 전광판 아래에서 관측 지원을 해야 했습니다.
LED는 LED답게 너무나 밝아 혜성은 커녕 안드로메다 은하도 제대로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어찌어찌 관측행사는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행사를 마치고 황매산 캠핑장으로 돌아오니 자정이 되었습니다.
황매산의 하늘은 여전히 깨끗하고 찬란했습니다.
이제 내일은 맘 편하게 맘껏 이 하늘을 즐겨야지 하는 생각을 하며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24일)은 햇살도 너무나 좋고 하늘도 청명하기 이를데 없었습니다.
이너 텐트와 침대를 비롯하여 모든 세간살이를 꺼내 말리며 여유있게 하루를 보냈습니다.
오후 6시.
관측 준비를 마쳤습니다.
오늘은 C/2023 A3 쯔진산 아틀라스 혜성을 만나는 날입니다.
별지기 생활을 하면서 나름 혜성을 만나는 법도 알게 되었습니다.
대개는 뉴스에서 떠드는 것처럼 혜성이 태양을 향해 갈 때 관측을 나가곤 하는데 그건 혜성 관측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해가 저물 무렵의 하늘은 충분히 어둡지 않기 때문입니다.
혜성이 밝기가 마이너스 등급까지 떨어지더라도 하늘이 충분히 어둡지 않다면 맨눈으로 보기는 불가능하죠.
이론과 실제는 이렇게 다른 법입니다.
물론 장대한 꼬리를 함께 담아야 하는 사진쟁이들에게는 이 때가 적기입니다만
저처럼 눈으로 보는 걸 즐기는 사람들은 더 기다릴 필요가 있죠.
혜성이 태양을 돌아나와 고도를 높여가는 그 때를 말입니다.
요즘이 바로 딱 그 적기입니다.
오늘 혜성은 땅꾼자리의 심장부를 지나는 것으로 예보되어 있었습니다.
조심조심 망원경을 겨냥하자 그곳에 정말 딱! 혜성이 있더군요.
접안렌즈를 가득 채우며 유유히 날아가는 혜성의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왔습니다.
오르트구름에서 날아온 이 혜성의 공전주기가 4억 5천만 년이라고 하니
지금 우리를 떠나가면 4억 5천만 년 후에나 다시 돌아올 겁니다.
4억 5천 만년 전, 지구에 인간은 없었습니다.
이 아이가 다시 지구를 찾아오는 4억 5천만 년 후, 지구에는 어떤 생명체가 살아가고 있을까요?
우주를 바라본다는 건 이렇게 사람의 척도를 넘어서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멋진 경험입니다.
(나중에 정보를 찾아보니 이 혜성의 공전주기는 8만 6천년 정도라고 한다
4억 5천만 년은 어디서 봤던 걸까? ㅋ
어쨌든 8만 6천 년도 사람의 척도를 넘어서는 주기이기는 하지...)
아름다운 혜성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고,
오랜만의 관측 여행 마무리로도 참 적절하고, 멋진 밤이었습니다.
날 오르트 구름으로 데려다 줘.
땅에 닿은 내 발은
아수라 난장판인 이곳에
날 묶어두고 있어.
갇혀사는 게 행복한 이들이
나에게도 고개를 숙이라고 강요하고 있어.
그러니 날
오르트 구름으로 데려다 줘.
그곳에서 난
경계없는 생각을 펼치며 살아가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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