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1. 18. 14:26ㆍ4. 끄저기/끄저기
이산하 작가의 장편서사시 <한라산>
시를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제주 4.3 사건동안 억울하게 죽어야만 했던 수많은 제주 사람들이 정말 공산주의 혁명을 찬동하여 항쟁을 한 것처럼 오해할만한 표현이 곳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런 시각이 순진무구한 제주 인민을 빨갱이로 몰아 죽인 잔악한 군경세력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하지만 이산하 작가의 후기를 읽으니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측면이 있었다.
이 시가 쓰인 1986년 대한민국에는 4.3사건에 대해 알 수 있는 자료라곤 정부 입맛에 맞는 자료 외에는 전무하다시피 했던 것이다.
이산하 작가가 밝히고 있듯 당시 4.3 사건에 대해 그나마 접할 수 있었던 자료로서 정부와는 다른 시각을 가진 자료는 <제주도 인민들의 4.3투쟁사>가 전부였다.
하지만 이 책은 일본에서 조총련으로 활동하는 인물들에 의해 쓰여진 것이다.
예상할 수 있다시피 4.3을 철저히 공산주의 사상가들의 입장에서 쓴 것이다.
그러니 이런 글이 나올 수밖에...
너무나 다행스럽게도 지금은 4.3진상조사보고서를 통해 사건 전반을 균형있게 바라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고, 많은 분들이 이 사건에 관심을 갖고 밝혀지지 않은 부분을 알아내기 위한 노력을 진행 중에 있다.
따라서 2024년 현재 대한민국에서 이 책 <한라산>은 4.3을 알고자 할 때 충분한 중요성을 가진 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이 책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산하 작가가 좀더 고민하고 생각하고 썼으면 하는 바램이 있긴 하지만, 그도 자기가 살았던 세상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평범한 인간이었던 건 마찬가지일 뿐이다.
그 이상을 원하는 건 그저 독자의 욕심일 뿐이다.
어쨌든 이 글은 이 장편서사시가 쓰여지고, 출판되던 당시의 아픔과 고난이 고스란히 베어있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대부분의 글들은 이 정도도 하지 못하지 않는가?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딱 이거다.
제주에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리고 한때, 그 사람들을 빨갱이라고 몰아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죽여대던 시절이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 그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궁금해 하는 사람들은 우선 그렇게 사람을 죽여대던 사상의 프리즘을 한 번쯤은 지나쳐야 한다.
이 책의 위치는 딱 이 지점이다.
그.리.고.
그 프리즘을 빠져나오면 그때야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었고, 그 사람들이 죽어야 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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