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끄저기(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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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죄인인가? : 하얀 리본
영화 하얀리본. 영화는 20세기 초 독일의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시대와 배경, 그리고 흑백으로 처리된 영화의 장면 하나하나가 모두 적절하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저지르고 산다. 몰라서 그럴 수도 있고 실수로 그럴 수도 있지만 일부러 그럴 수도 있고 아예 목적으로 그럴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잘못에 대해서는 처벌이 따른다. 처벌은 법적 처벌일 수도 있고 관습적 처벌일 수도 있다. 공동체의 괴롭힘이나 따돌림일 수도 있고 어른의 훈육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게 있다. 모든 잘못이 처벌되는 것도 아니고 처벌이 잘못의 경중에 따라 적절하게 매겨지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영화는 처벌받지 않는 어른들의 잘못과 가혹하게 처벌되는 아이들의 잘못을 교묘하게 대비하고 있다. 내가 이 영..
2023.09.20 -
세상의 주인
촛불 집회에 나가면 기분이 좋다. 분노할 줄 아는 사람들. 그 분노를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도 나처럼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구태여 옷을 챙겨입고, 구태여 차나 지하철을 타고 구태여 시간을 내어 나왔을 것이다. 세상은 구태여 움직이는 사람들의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세상을 차지하고 있다. 광화문에서 마무리 집회를 하며 촛불집회가 광화문이 아닌 세종대로에서 열리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경찰들이 광화문 광장 진입을 바리케이드를 쳐 막고 있었다. 아하! 이 넘덜이 트라우마가 있구나! 집회를 마치자 허기가 졌다. 가까운 나주곰탕 집에 들어가 밥을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왔다. 윤석열 탄핵을 외치는 목소리가 가득했던 광장 사거리는 일상으로 돌아가 있었다. 빠르..
2023.09.17 -
내면적 이주(inner emigration)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일전에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읽고 간단한 감상문을 적었었다. (예전 감상문) 그런데 꼭 기억해야 할 내용이 있어 글을 추가한다. 그건 바로 '내면적 이주(inner emigration)'에 대한 내용이다. 내면적 이주란 나치 독일 치하에서 고위 여하를 막론하고 직위를 가졌던 사람들이 나치 독일의 부당한 정책을 어쩔 수 없이 따르긴 했을 지언정 마음으로는 이를 따르지 않은 경우를 말하는 용어이다. 나는 이 책에서 단 3페이지에 등장하는 '내면적 이주'가 대한민국에서 여전히 이슈가 되고 있는 친일파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기준을 제공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 책에서 '내면적 이주'는 그냥 지나가며 다뤄지는 단편적인 내용이다. 예를들어 적어도 5만 명 이상의 학살을 주관한 나치 전범 오토 브라트피..
2023.08.29 -
눈앞에 닥친 일 하기
전형적인 소시민인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은 '눈앞에 닥친 일 하기'이다. 한때는 원대한 꿈을 꾸고 그래서 이상을 부르짖는 것만으로 세상이 바뀔 거라 생각했는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어리석은 생각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어느 순간 계획도 세우지 않게 됐다. 계획이라는 건 내가 변수를 통제할 수 있을 때 세우는 거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변수가 없는데 무슨 계획을 세우겠는가? 그래서 친구의 조언을 받아 정립한 기준이 눈앞에 닥친 일은 하자였다. 일단 너무나 낮기만 한 내 눈에 띠었다는 건 어쨌든 내가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니까 말이다. 예를 들자면 이런거다. 난 지구의 환경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렇다고 마냥 손을 놓을 수 없어, 차를 살 때 하이브리드를 샀다. 트렁크가..
2023.08.27 -
관점을 바로 잡는 굉장한 경험 - 최초의 역사 수메르
1. '수메르 신화'는 나의 지식탐구 여정에 한 축을 차지한다. 신화를 워낙 좋아하기도 하거니와 조철수 교수님의 책 를 통해 처음 수메르 신화를 접했을 때의 감동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수메르 신화를 접하고 성경을 비롯한 다른 신화는 다 애들 장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나를 사로잡는 것은 수메르 신화에서 별자리의 원형이 읽힌다는 것이다. 우르 3왕조 때 만들어진 인장에서 염소자리 그림을 발견했을 때 느꼈던 전율은 지금도 나를 압도하고 있다. 그 이후 수메르, 바빌로니아, 메소포타미아와 관련된 책들은 닥치는대로 사 읽었다. 별자리 기원에 대한 단서를 뽑아내기 위해서였다. 그 와중에 길가메시 서사시에 깊게 빠져들기도 했다. 그 옛날 삶의 본질을 꿰뚫은 위대한 사상과 그 사상을 써 내려간..
2023.08.22 -
불행의 원인은 자신일 뿐 - 폴란드의 풍차
1. 마치 유튜브 타임라인에 내가 선호하는 영상이 주로 뜨듯이 책을 선택하는 기준에도 내 무의식이 작용한다. 그러고보면 '나'라는 울타리를 뛰어넘는 것도 그닥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 중 하나가 도서관에서 무작위로 책을 빌려 보는 것이다. 이번에 도서관에서 뽑아온 책은 '폴란드의 풍차'였다. 무작위 책보기가 아니라면 만날 수 없는 책이었는데 아주 재미있었고 생각할 거리를 한 아름 안겨주었다. 2. 2대, 3대에 걸쳐 내려오는 이야기라면 으레 서가 한 켠을 꽉 채우는 토지나 아리랑과 같은 대하소설을 생각하게 마련인데 이 책은 무려 5대에 걸친 이야기를 담고 있음에도 아주 얇은 책이다. 5대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가 명확하기 때문인데 그 주제란 바로 '저주받은 코스트 가문'이라는 것이다...
2023.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