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적 이주(inner emigration)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2023. 8. 29. 18:254. 끄저기/끄저기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후 두고두고 꺼내봐야할 필요가 있겠다 싶어 구입했다.

 

일전에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읽고 간단한 감상문을 적었었다. (예전 감상문)

 

그런데 꼭 기억해야 할 내용이 있어 글을 추가한다. 

그건 바로 '내면적 이주(inner emigration)'에 대한 내용이다. 

 

내면적 이주란 나치 독일 치하에서 고위 여하를 막론하고 직위를 가졌던 사람들이

나치 독일의 부당한 정책을 어쩔 수 없이 따르긴 했을 지언정

마음으로는 이를 따르지 않은 경우를 말하는 용어이다. 

 

나는 이 책에서 단 3페이지에 등장하는 '내면적 이주'가 

대한민국에서 여전히 이슈가 되고 있는 친일파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기준을 제공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 책에서 '내면적 이주'는 그냥 지나가며 다뤄지는 단편적인 내용이다. 

 

예를들어

적어도 5만 명 이상의 학살을 주관한 나치 전범 오토 브라트피슈가 

전범 재판에서 나치의 명령을 항상 '내면적으로 반대 했다'고 주장했다는 점을 들어 

그저 조크에 지나지 않는 수준의 이야기라고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내면적 이주'라는 개념은 대한민국에서는 중요하게 다뤄질 여지가 있다.

 

왜냐하면 독일에서는 범죄자들의 자기변명에 불과하다고 치부된 논리가

대한민국에서는 친일파와 그 후손들의 정당화 논리 중 하나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독일에서는 '내면적 이주'라는 이 구질구질한 자기변명을 어떻게 혁파할 수 있었을까?

 

이 책에서 '내면적 이주'는 두 가지 방법만으로 입증될 수 있다고 말한다.

 

첫 번째는 '내면적 이주'가 '외적으로 드러나야 한다'는 점.

두 번째는 공적 생활에 유의미한 참여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각각의 의미는 다음과 풀어 이야기할 수 있다. 

 

일제치하에서 친일 활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종종 들려오는 것처럼

비록 친일은 했을지언정 그건 마지못한 참여였을 뿐 마음으로는 항상 조국해방을 바라고 있었다면 

그건 그 사람이 다음과 같은 행동을 했을 때 인정되는 것이다. 

 

첫째. 일제에 대항하는 행동이 외적으로 드러나게 수행되었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저런 핑계일지언정 그게 정말 어려웠다면 

둘째. 일제 치하 사회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익명의 대중으로 살았어야 한다. 

 

이러한 두 가지 행동 중 하나라도 하지 않았으면서

일제 치하에서 주요한 역할을 수행했다면 

그 사람은 '친일 매국노'이다. 

 

이 얼마나 깔끔한 정리인가?

 

그러니까 빨간당이나 조선일보 같은 찌라시가 주장하는 친일을 위한 변명은 죄다 헛소리가 되는 것이다. 

 

이 나라의 대통령이라는 작자가 일본에 부역하여 

국민의 안전욕구를 핵폐기물 시궁창에 처박아 버렸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30%의 지지를 받고 있는 현실을 살고 있다. 

 

청산되지 않은 친일 역사가 여전히 우리 사회에 망령을 드리우고 있는 것이다.

 

이번 사건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비록 지금은 친일 당사자들은 거진 없지만

그들을 단죄하는 일은 반드시 꼭,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내면적 이주에서 도출된 두 가지 조건을 적용한다면 

깔끔하게 친일파를 한정하고 진행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