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죄인인가? : 하얀 리본

2023. 9. 20. 15:034. 끄저기/끄저기

 

영화 하얀리본

영화 하얀리본.

 

영화는 20세기 초 독일의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시대와 배경, 그리고 흑백으로 처리된 영화의 장면 하나하나가 모두 적절하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저지르고 산다.

몰라서 그럴 수도 있고
실수로 그럴 수도 있지만
일부러 그럴 수도 있고
아예 목적으로 그럴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잘못에 대해서는 처벌이 따른다.

처벌은
법적 처벌일 수도 있고
관습적 처벌일 수도 있다.
공동체의 괴롭힘이나 따돌림일 수도 있고
어른의 훈육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게 있다.


모든 잘못이 처벌되는 것도 아니고
처벌이 잘못의 경중에 따라 적절하게 매겨지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영화는 
처벌받지 않는 어른들의 잘못과
가혹하게 처벌되는 아이들의 잘못을 
교묘하게 대비하고 있다. 

내가 이 영화에서 인상깊게 들은 대사는 이 부분이다.

 

남작의 아내가 

남편의 영지를 떠나 고향으로 가겠다고 말하며 

두 가지 이유를 든다. 

 

마음에 둔 다른 남자가 생겼다는 것.
음울한 증오의 기운이 넘쳐나는 이곳에서 살고 싶지 않다는 것.

 

가뜩이나 자신의 영지에서

안 좋은 사건이 연달이 일어나는 상황에서

남작은 어떤 대답을 해야 했을까?

 

남작의 다음 대사는 이거였다. 

"그 남자와 잤소?"

 

이 대사는
잘못의 경중이 분별되지 않고
잘못된 처벌이 횡행하는 이유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것은 진정 중요한 것이 뭔지 모르는

잘못된 인식 때문이다. 

 


영화는 그 어떤 사건도 마무리되지 않은 채 
전쟁이 시작된다는 소식으로 끝난다. 

그렇다.

그렇게 똑똑하고 깔끔하고 위엄있고
사리분별이 똑바른 어른들은
전쟁이나 저지르고 마는 것이다. 


그러고보면 세상은 그렇지 않은가?

언제나 문제가 되는 건 

누가 무슨 피해를 받았는지도 모를
약자의 소란 뿐이다.

언제나 문제가 되지 않는 건
세상이 무너지고 무더기의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강자와 권력자들의 범죄일 뿐이다. 

 

 

이렇게 훌륭한 영화를

집에서 편하게 앉아

그것도 공짜로 볼 수 있다니.

 

내가 좋아하는 영화 돈룩업의 인상적인 대사를 여기 쓸 수 있겠다. 

 

우린 참 좋은 시절을 살았다고 말이다.

 

 

세상은 다시

언제나 문제가 되지 않는

강자와 권력자들의 범죄로 얼룩질 것이고

사람들은 으레 그러려니 하고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