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가 아닌 '사람' - 영화 '믿을 수 있는 사람'

2024. 1. 31. 19:484. 끄저기/끄저기

3년 전 쯤, 자료 조사차 탈북자 유튜브를 찾아보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주로 보던 프로그램은 배나 TV의 '탈탈탈'이라는 프로였다.

 

탈북자들이 나와 어렸을 때부터의 성장기와 탈북을 감행하게 된 사연,

사선을 넘어 대한민국에 도착하고 대한민국에서 겪은 좌충우돌 적응기를

한 사람당 2~3시간에 걸쳐 심층적으로 이야기하는 프로였다. 

 

내용이 진솔하기도 했거니와 

무엇보다 이렇게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음으로서 심리적 치유를 받는 모습이 인상적이기도 했다. 

 

어느 회차에선가 대한민국에서 소개팅으로 만난 남자에게 이별을 통보했을 때,

"감히 탈북자 따위가 나를 차?"

라는 얘기를 들어야 했다는 젊은 여성 탈북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충격을 받은 기억도 있다. 

 

아....그렇구나...

어디나 널려 있는게 또라이라지만 

외국인 노동자는 커녕 같은 한반도 안에 있는 사람들도 품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영화를 봤다.

 

 

탈북자 이야기를 너무나 잘 풀어낸 영화였다. 

이 영화를 보고 당시 탈북자를 바라봤던 나의 시각도 반성할 수 있었다. 

 

탈북자 관련 방송을 반 년 정도 봤던 것 같다.

그러다가 결국 탈북자 방송을 더 이상 보지 않게 되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빨간당 쪽으로 기우는 그들의 정치성향 때문이었다. 

 

이해는 갔다. 

대한민국 근대사의 복잡성은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인생 커리어를 쌓아간 사람들 중에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하물며 탈북자들은 어떠랴!

그들은 자신의 철천치 원수인 북한의 지도층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려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어떤 채널에서는 북한은 곪은대로 곪은 사회라며 

지금 바로 국군이 치고 올라가면 북한은 곧 붕괴될 것이기 때문에 

내일이라도 전쟁을 일으켜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대체로 빨간당의 입장을 고스란히 옹호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빨간당과 북한 정권이 서로를 간절히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이해하려면 

지금까지 살아온만큼의 세월이 더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시각이 내가 탈북자를 바라보는 주된 시각이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내가 탈북자를 '인간'이 아닌 특정 효용가치로 바라봤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심지어 최근에는 대한민국 정부가 북한송금 브로커를 외환관리법 위반혐의로 기소했다는 BBC뉴스를 보고

용산 돼지정권 탄생에 일조한 탈북자들이 뒤통수를 맞아 쌤통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이 얼마나 치졸한 생각이었던가?

 

그들이 빨간당을 지지하든 파란당을 지지하든

그 지지의 이유가 박학의 결과이든 무식의 결과이든

그게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는가?

 

나는 내 주변 사람들을 임의적인 기준으로 묶어 정치를 기준으로 평가해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어떤 사람들은 탈북자라는 특정 기준으로 묶어 정치색이라는 특정한 방향으로 재단하고 있었던 것이다. 

 

도대체 내가 '감히 탈북자 따위가 나를 차?'라고 일갈했다는 그 인간과 무엇이 다른가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이 영화가 훌륭했던 건

탈북자가 대한민국 사회에서 겪어야 하는 여러 사건들을 잘 녹여낸 점도 있지만

탈북자를 탈북자가 아니라

가족을 잃고 낯선 사회에서 방황하는 '인간'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나도 그래야겠다.

선입관의 틀을 깨고 그들을 인간으로 바라봐야겠다. 

 

때때로 이렇게 나의 잘못된 생각을 깨우쳐 주는 영화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깊이 있고 담백한 영화를 만들어주신 곽은미 감독님께 감사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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