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메시에마라톤 - 하늘의 허락, 그리고...

2018. 3. 21. 20:421. 별과 하늘의 이야기/하늘앓이 - 별지기의 이야기들

1. 별지기가 된다는 건 참으로 멋진 일입니다.

 

   메시에마라톤의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별지기가 된다는 건 참으로 멋진 일입니다!'라고 입버릇처럼 되뇌이곤 하는데요.

   그 멋진 일 중에 하나는 바로 '마법의 용어(?)'를 익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냥 하는 말인데 별지기가 아닌 사람들은 잘 알아듣지 못하는 그런 용어죠. 

   대한민국에서는 별지기가 그닥 대중적인 취미도 아니다보니 그 용어의 배타성은 더더욱 높아집니다. 

   

   마치 어떤 결사조직이 은밀한 동굴 횃불아래 모여 자신만의 주문을 외우듯이 

   어두운 시골산골 어딘가의 찬란한 별빛 아래 모여 

   밤하늘에 취한 채로 자신들만의 용어로 얘기하는 그런 멋진 장면이 연출되죠.

   

   그런 용어 중 하나가 '메시에마라톤'입니다. 

   

   회사의 몇몇 동료들에게 주말에 '메시에마라톤' 갔다 온다고 얘기했습니다.

   물론 그 말을 하는 제 머릿속의 개념과 그 말을 듣는 동료분들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완전히 달랐을 것입니다.

   

   아름다운 계곡과 푸른 강물이 어우러진 경춘가도를 달리는 마라톤일지언정

   찬란한 별빛 사이를 누비는 별지기들의 마라톤의 아름다움에 비하면 우주를 구성하는 모든 원자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별지기가 된다는 건 참으로 멋진 일입니다!" ^^

 

 

2. 별친구들.

 

   저는 한국아마추어천문학회라는 단체에 가입하고 별을 보러 다닙니다.

 

   무식하기 그지 없는 저에게 그야말로 딱 맞는 교육이었던 천문지도사과정에 참여하였고 용케 2급 천문지도사까지 오게 되었는데요.

   

   그 과정을 통해 배운것도 많았지만 정말 고마운 것은 하늘을 바라보는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는 것입니다.

   특히 전국단위의 연수생들이 모인 2급 연수를 통해 대한민국 곳곳의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번 메시에마라톤 참여를 기념하기 위해 2급 동기들과는 단체복도 맞춰입었죠. 

 

 

 

   사진 1> 메시에마라톤에 모인 동기들과 한 컷.

            저는 작년에 이어서 경남 산청에서 열린 메시에마라톤에 참석했습니다. 

            제일 왼쪽이 접니다.^^

            그 다음으로 반인연 선생님, 박은성 선생님, 문순보 연수부장님, 이광혜 선생님, 윤부연 선생님, 오금숙 선생님, 정동원 선생님이십니다. 

           (사진 : 윤부연 선생님의 옆지기)

 

 

 

   사진 2> 강원도 횡성의 메시에마라톤에 참여하신 동기분들이 보내온 사진.

            왼쪽부터 이장근 선생님, 강오균 연수부장님, 정성훈 선생님, 허기행 사무부장님.

   

   물론 연수 동기분들 외에도 여러 별지기 단체에서 실력 출중하신 여러 선배 별지기분들도 만났습니다.

 

   찬란한 별을 만날 수 있는 것도 감사한 일이지만 

   그 별처럼 찬란하신 별친구들을 만나는 것 역시 정말 감사한 일이죠. 

   

   그러고보니 "별지기가 된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인것 같습니다. ^^

 

 

 

3. 2018 메시에마라톤.- 하늘이 허락해 주지 않으면.

 

 

 

   사진 3> 첫눈이 세팅.

           제 완소망원경 '첫눈이'입니다. 

           비록 셀레스트론 C11이라는 기성품으로 태어났지만 

           4년째 메시에마라톤을 함께 하고 있는, 저에게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친구입니다. 

           (사진 : 한국아마추어천문학회 경남지부 임슬아 선생님)

   

 

   어리버리 메시에마라톤이 뭔지 구경이 필요했던 2015년, 첫번째 메시에마라톤에 참가했었습니다. 

   그 때는 강원도 횡성 천문인 마을에서 있었던 메시에마라톤에 참석하였고  39개를 찾았더랬죠.

   ( 처음 참가했던 메시에마라톤 후기 : https://big-crunch.tistory.com/12347822 )

   

 

   2016년 두번째 메시에마라톤 역시 강원도 횡성 천문인마을로 갔었습니다. 

   

   이 때는 정말 자신 만만했습니다. 

   80개 이상 찾겠다는 구체적 목표를 세웠고, 

   천문인마을에 뜨고 질 메시에 대상을 시간별, 고도별, 방위각별로 기록한 메트릭스도 만들었죠. 

   

   그리고 접안부가 아래에 달린 복합굴절망원경의 특성 상 관측이 가장 수월한 고도각의 범위를 정하고 

   대상이 그 고도각을 통과하는 시간을 정렬한 후 각 대상의 관측 리드타임까지 정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촘촘한 준비를 했던 덕인지 정말 큰 배움을 얻을 수 있었는데요. 

   그 배움은 바로 '하늘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겸손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한 인간의 욕심은 가없는 하늘을 대할 때는 아무런 변수도 되지 못했습니다. 

   당일 컨디션 조절에 실패해서 머리가 심하게 아프기도 했지만 결정적으로 일찍 닫혀버린 하늘은 이튿날 아침까지 열리지도 않았습니다. 

   제가 할 수 있었던 건 아픈 머리를 쥐고 차 안에서 쪽잠을 잔 것 뿐이었습니다. 

   

   시간별?, 대상별?, 방위각?, 고도각? 그래서 80개 이상을 보겠다?

   웃기는 얘기였죠.

   

   그건 내가 보겠다고 해서 봐지는게 아니었습니다. 

   하늘이 허락할 때만 가능한 것이었죠. 

   

   너무나도 당연한 이 사실을 알기 위해 그 많은 준비를 하고, 그 많은 시간을 썼으니 

   나란 놈은 참 머리가 나빠도 보통 나쁜게 아닙니다.

   어쨌든 그 나쁜 머리로 몸은 많은 고생을 했지만 소중한 경험칙을 얻을 수는 있었죠. 

   

   작년 세번째 참여한 메시에마라톤은 그러한 배움에 마음을 비우고, 목표를 정하지도 않고 참여한 메시에마라톤이었습니다.

   

   장소를 바꿔 경남 산청 별아띠천문대에서 열린 메시에마라톤에 참석했고, 

   사람들과 어울려가며, 간식 먹어가며, 사진도 찍어가며 느긋한 마음으로 메시에마라톤에 참석했습니다. 

   그 날 77개의 대상을 찾았죠.

  ( 세번째 메시에마라톤 후기 : https://big-crunch.tistory.com/12349058 )

   

 

   올해 역시 마음 가짐은 작년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조금은 더 관측에 집중하고 싶었죠. 

   

   그래서 작년과는 달리 카메라도 설치하지 않고, 느긋하게 여기저기 돌아다니지도 않았습니다.

   

   찾아낸 대상이 작년의 기록인 77개를 넘어가던 새벽 4시 무렵, 슬며시 욕심이 생기기도 했지만, 그 때마다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하늘이 허락하지 않으면, 바로 이순간 하늘이 닫혀 버리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늘이 허락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하늘이 허락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계속 속으로 그 말을 되뇌이며 마라톤을 이어갔습니다. 

 

 

 

   사진 4> 그렇게 진행되던 저의 마라톤은 101개에서 멈췄습니다. 

   

   되돌아보건대 아쉬움이 하나 남습니다. 

   

   하늘이 허락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은 맞았지만

   하늘이 허락해주었는데 과연 나는 최선을 다했는가? 라는 새로운 질문이 생겼죠.

   

   사실 저 시간에 기록표 사진을 찍을 게 아니라 하늘이 허락해준 대상을 하나라도 더 찾아봐야 했습니다.

 

   개인의 나태를 겸손으로 포장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

   그건 또 내가 풀어가야 할 숙제가 되었습니다.

 

 

4. 하늘이 허락해 주었다면.

 

   '별지기가 된다는 건 참으로 멋진 일입니다!'

   그건 제가 별지기이기 때문에 멋진 것이 아니라 

   하늘이 허락해 준 그 하늘아래 별지기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늘이 허락해 주었다면 더더욱 멋진 별지기가 되기 위한 노력은 저의 몫입니다. 

   그 노력이 없는 채로 '별지기가 된다는 것은 참으로 멋진 일'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당분간 '별지기가 된다는 건 참으로 멋진 일입니다.'라는 말을 쉽게 쓰지 못할 것 같습니다.

   

   제가 만난 별들, 

   제가 서 있었던 찬란했던 시공간들, 

   제가 만난 별처럼 빛나는 친구들, 

   

   그 모두는 하늘이 허락해 주었지만

   제가 그 허락에 충분히 합당할 만큼 노력을 하지는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게는 소중한 화두를 던져준 멋진 시공간을 마련해 주신 

   한국아마추어천문학회 경남지부 이소월 지부장님과 지부 가족분들.

   별아띠 천문대 김도현 대장님과 들국화 선생님 

   그 시간을 함께 해 주신 동기분들과 여러 별지기분들께, 

   무엇보다도 찬란한 시공간을 허락해주신 그 하늘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사진 5> 메시에마라톤 전경 : 

         구름이 밀려오고 밀려가던 산청의 밤하늘, 

         그 사이사이를 가득 메웠던 찬란한 별님들. 

         그리고 땅에 가득했던 아름다운 별님들.

         (사진 : 한국아마추어천문학회 문순보 연수부장님)

   

   

p.s : 사진 개재를 허락해주신 윤부연 선생님, 정성훈 선생님, 임슬아 선생님, 문순보 연수부장님께 특별한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