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문'은 파란달이 아니다.

2023. 8. 21. 00:141. 별과 하늘의 이야기/별지기 토크

낙산 보름달 풍경

 

가족 단톡방에서 어머니가 

오는 8월 31일 슈퍼블루문이 뜬다는 정보를 알려왔다. 

 

다음 슈퍼블루문이 2037년 1월 31일이니 이번에 놓치면 14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는 내용과 함께 말이다. 

 

내가 별쟁이라서 

가족 단톡방에는 가끔 이런 천문 현상을 공유하는 내용이 올라온다. 

 

하지만 울긋불긋 순수한 마음이라고는 애저녁에 사라져버린 

고루한 별지기에게 이런 내용은 그저 코웃음을 유발하는 속임수일 뿐이다. 

 

슈퍼문은 타원형 공전궤도를 도는 달이 지구와 가장 가까운 지점에 있어 다른때보다 시직경이 커진 달을 말한다.

원래 이 기준은 "1년 중 지구와 가장 가까운 지점(근지점)이나 인근을 통과할 때의 보름달"이었다. 

즉 1년에 슈퍼문은 한 번 밖에 생기지 않았던 것이다. 

 

'슈퍼문(Supermoon)'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나는

1년에 한 번 뜨는 가장 큰 보름달이라는 뜻에서 '해보름달'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썼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 기준이 ‘특정 거리 이내(약 357,000km)’로 슬며시 바뀌면서 '해보름달'이라는 단어는 더 이상 쓸 수 없게 됐다. 

1년에 여러 번의 슈퍼문이 만들어질 여지가 생겨 버렸기 때문이다. 

 

슈퍼문의 기준이 이렇게 바뀐 이유가 공개적으로 언급된 적은 없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게 있다.

바로 슈퍼문이 장사가 되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슈퍼문이 지구와 가까이 접근한 달이라지만

달 공전궤도의 이심률은 그렇게 크지 않기 때문에 

사실 사람의 눈으로는 변경된 시직경을 인식하지 못한다.

 

슈퍼문이나 마이크로문이나 똑같이 보인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슈퍼문 때 달은 정말 커 보이는데 

각인효과 때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이벤트를 보기 위해

그 날만큼은 사람들이 달이 떠오를 때부터 기다리기 때문이다.

 

이제 막 떠오르는 달은 대기의 굴절 효과로 커 보인다.

이걸 슈퍼문이라서 커 보이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얘기는 다소 불편한 얘기일 수 있다. 


어차피 워낙 사람들이 하늘을 안 보고 사는데 

이런 이벤트가 여러 번 만들어져 하늘좀 보게 만드는게 뭐가 문제냐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이유 여하를 떠나서 개념과 정의를 명확히 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학문의 근간이다.

 

과연 일반인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어느정도 개념을 뭉개는게 뭐 그리 대단한 문제냐고 

얼버무리고 지나갈 문제인 걸까?

 

다른 식으로 생각해보면

세상에 어떤 과학분야가 

이렇게 대중의 관심에 목말라 있나 싶기도 하다. 

 

블루문으로 가면 대중의 관심에 대한 집착이 병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블루문에서 Blue란 ‘파란색’과는 전혀 상관없는 단어이다. 

 

이는 서양 문명에서 달이 차지하는 문화적 위상과 관련이 있는 용어이다. 

 

서양에서 달은 불길한 존재였다. 

보름달에 유독 울어재끼는 늑대가 유럽에서는 공포의 존재였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고

유럽을 위협한 이슬람교의 상징이 달이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어쨌든 서양에서 달은 불길한 존재다. 

그 불길한 달이 가장 커진게 보름달인데 

그 보름달이 한 달에 한 번도 아니라 무려 두 번이나 뜨는 해괴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때 같은 달에 두 번째 뜨는 보름달을 블루문이라 한다. 

 

즉 여기서 블루는 ‘우울한’, ‘음란한’ 따위의 부정적인 의미이다. 

 

이 지점에서 서양과 우리나라는 명확하게 갈린다. 

 

우리나라에서 달은 민간신앙의 대상이자 어두운 밤을 환하게 밝혀주는 고마운 존재이다. 

정겨운 누이이기도 하고 든든한 오라버니이기도 한 대상이다. 

우리에게 달은 절대 불길한 존재가 아니다. 

 

따라서 한 달에 두 번 뜨는 보름달은 환영받을 일이지 금기시 될 일이 아니다. 

(전통적으로 음력을 사용한 우리나라에서는 애초에 한 달에 달이 두 번 뜰 일 따위는 없었다.)

 

그런데 그 불길한 이미지를 극대화시킨 단어인 '블루문'이 

아무런 검토도 거치지 않고 언론에 버젓이 등장하는 건 분명 잘못된 일이다.

 

그나마 달이 떠오를 때 대기굴절효과 때문에 커보이는 달을 슈퍼문이라고 얼버무릴 수는 있겠지만

파란색이라고는 절대 보이지 않는 블루문은 뭐라고 설명할텐가?

 

'슈퍼블루문'

 

영어 형용사가 두 개나 붙어 대단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과학적 개념도 허술하고

우리나라에서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붙은 해괴한 말,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달에 대한 개념이나 단어는 우리 상황에 맞게 다시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며칠 전 ‘밤길’이라는 소설책을 읽다가 

‘gibbous moon’ , 즉 반달과 보름달 사이에 있는 볼록한 달을 의미하는

‘달걀달’이라는 단어를 발견한 적이 있다. 

 

‘gibbous moon’에 해당하는 우리말은 없는 줄 알았다. 

없는 것이 아니라 내가 몰랐던 것이다.

 

그 단어가 얼마나 정겨웠는지 모른다. 

 

이런 일은 천문연구원이 나서서 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천문연구원이 이런 일에 별 가치를 두지 않는 것 같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각 언론사에 뿌려진 홍보문구에 

“슈퍼블루문”이라는 해괴한 단어가 그대로 사용된 것 같다. 

 

뭐 딱히 천문연에 바라는 건 없다.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