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5. 28. 12:10ㆍ4. 끄저기/끄저기
노신 산문집 '아침꽃을 저녁에 줍다' 中에서 발췌...
... 그때 가끔 놀러와서 이야기를 나누곤 했던 사람은, 옛친구인 김심이(金心異)였다.
그는 커다른 가죽 가방을 낡은 책상 위에 놓고 웃옷을 벗어 던지고는 마주 앉았다....
"자네 이런 건 베껴서 뭣하려고 그러나?"
어느 날 밤, 그는 내가 베낀 엣 비문의 초본을 펼쳐 보며 궁금한 듯이 물었다.
"아무 소용도 없지."
"그럼 뭐하러 베끼나?"
"아무 이유도 없어"
"내 생각엔 말야. 자네가 글을 좀 써보는 게 낫지 않나 싶어......"
나는 그의 뜻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신청년>>이란 잡지를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그 당시엔 특별히 찬성하는 사람도, 그렇다고 반대하는 사람도 없는 것 같았다.
필시 그들도 아마 적막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가령 말일세, 창문도 없고 절대 부술 수도 없는 철로 된 방이 하나 있다고 하세. 그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깊이 잠들어 있네.
머잖아 모두 숨이 막혀 죽겠지.
그러나 잠든 상태에서 죽어가니까 죽음의 비애는 느끼지 않을 걸세.
지금 자네가 큰소리를 질러 비교적 깨어 있는 몇 사람을 일으켜,
이 불행한 소수들에게 구제할 길없는 임종의 고통을 겪게 한다면 도리어 그들에게 미안한 일 아닐까?"
" 그러나 몇 사람이라도 일어난다면, 그 철로 된 방을 부술 희망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맞다.
나는 내 나름의 확신을 갖고 있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희망이라는 것을 말살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왜냐하면 희망이란 미래에 속하는 것이기에, 반드시 없다고 하는 내 주장으로,
있을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을 꺾을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마침내 그에게 쓰겠다고 응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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