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타 - 개연성을 찬양함.

2012. 12. 29. 00:244. 끄저기/끄저기

관람일시 : 2012년 12월 25일  

관람장소 : 집(YES24 다운)


솔직히 말해서 나는 김기덕 감독님의 영화에 대해

'그의 작품' 세계라는 개념을 들어 뭔가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전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용감하게 글을 쓸 수 이유는

대한민국에 그런 사람이 얼마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김기덕 감독님의 영화를 몇 번 보려고 시도를 해 본 적은 있다. 


영화를 보려고 시도를 했던 이유는 물론

'김기덕 감독'이라는 이름 값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시도에서 결국 그 영화를 끝까지 본 적이 없다. 


뭐 대단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다. 

그저 배우들이 연기를 잘 못한다는 느낌이 들었던 적이

많았었던 것 같다.


그나마 핑계를 들어 말하자면

사실 나는, 꼭 김기덕 감독님이어서가 아니라

'영화'라는 장르에 그다지 친하지 않다. 


그러다보니 '영화'를 볼 양이면 항상 이런식이 된다.  


양팔저울을 가져다가 한 쪽에는 '영화'를 올려놓고

나머지 한 쪽에는 '시간'을 올려놓는다. 

'영화'가 더 무겁게 내려앉은 상황이 계속되면

영화를 계속 보는 것이고

무게추가 '시간'쪽으로 기울면 영화를 꺼버리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영화는 정말 '영화라는 장르가 아니면 볼 수 없는'

그런 영화를 찾게 된다.

블록 버스터나 SF 같은 스케일 큰 영화 말이다. 

장르가 그저 드라마나 멜로라면

그런 건 연극이 훨씬 많은 느낌과 풍성한 감수성을 준다. 


구구하게 많이도 썼다. 

내가 왜 김기덕 감독님의 영화를 안 보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이렇게라도 변명을 늘어놓지 않으면 

영화 '피에타'에 대해 뭔가 내 느낌을 쓰는 나의 '무엄함'이 용납되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1. 재밌다!!!

   결국 김기덕 감독님의 영화에서 엔딩 크레딧이 올라오는 것을 처음봤다.

   이유는 간단하다. 

   재미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봤던, 아니 보려고 시도했던 김기덕 감독님의 영화들은 시간이 지나도 기복이 없는 상황이 20여분 넘어 지속되는 영화들이었다. 

   결국 그 경계에서 영화를 더 이상 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초반부터 흥미를 끌었다. 

   미선이 등장하는 순간, 그 수수께끼와도 같은 순간부터 영화에 빠져드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김기덕 감독님의 영화에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결국 이 영화를 끝까지 보게 만든 건, 지금 생각해 봐도 뭐 대단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저 처음부터 흥미진진했고, 끝까지 재미있었기 때문이었다.     



2. 개연성을 찬양함.

    사실 김기덕 감독님의 영화를 '재미'라는 단편적인 요소를 들어 끝까지 봤다고 말하는 것은

    세계적인 거장 김기덕 감독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며, 오만불손하기 그지 없고,

    결국 무식한 관객의 하나임을 자임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결국 내 수준이 그 정도인 것도 사실이다. 

    

    그나마 몇 번 집적이기라도 했던 김기덕 감독님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의미전달에 전투적이었다. 

    어떤 때는 세련되지 못하다 느끼기도 했고, 어떤 때는 투박함을 넘어 촌스럽다고 느낀적도 있었을 정도이다. 


    사실 그런 측면에 있어서는 이 영화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뭔가 미묘한 차이가 하나 있었다.

 

    자본주의의 극단적인 가족해체를 다룬다는 이 영화 역시 시종일관 의미전달의 의도가 노골적이고 극단적이지만, 

    기존의 작품에서는  이러한 극단적인 의도가 영화의 설정을 극단으로 몰고가는 형국을 띠었음에 반해

    이 영화는 반대로 극단적인 영화의 설정이 극단적인 의미전달의 의도를 오히려 중화시켜주고 있었다. 


    무슨 차이가 있었던 걸까?

    나는 그 이유를 김기덕 감독께서 의도하셨는지 안하셨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오히려 영화의 설정이 결코 극단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시사하는 주변 환경에 상당부분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이미 이 사회는 영화의 설정이 더 이상 '과장만은 아닐 것'이라는 느낌이 들만한 사회가 되어 버렸다는 점!

    

    심지어 나는 고리대금업 사장이 강두를 쥐어패면서

    "내가 언제 돈 받아 오랬지, 불구를 만들라고 했냐?" 라는 대사에서 데자뷰를 느끼기도 했다. 

    그건 내가 회사에서 존경하는 사장님 이하 윗분들께 늘 듣는 말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내가 일 끝내라고 했지, 언제 야근하라고 했냐?"


    '개연성'은 '공감'의 기반이 되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공감'한다면 빨려들고 집중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리라.

    

    김기덕 감독님의 의도가 어디까지인지 나로서는 알 수 없지만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개연성'의 요소는 정말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지금 되짚어 생각하더라도 어디 하나 극단적이라 느낄만한 요소가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일을 마치면 늘상 살아있는 것을 들고와서 식사를 하는 강두의 습성도 전혀 극단적이라 느껴지지 않는다.

    심지어는 영화가 내내 잔잔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이런 느낌...

    과연 현실을 찬양해야 하나?

    영화의 개연성을 찬양해야 하나?

    감독님의 술수(?)를 찬양해야 하나?

    헉...MB를???

    

좀 불편한 사실을 하나 고백해야겠다.


어디선가 우연히 훌륭한 작품을 보게되면

동일한 저자에 의해 집필된 다른 작품들을 찾아 읽으면서 그 저자분의 컬렉션이 형성되는 게 나의 자연스러운 독서패턴이다. 


그 공식을 그대로 적용시킨다면 '피에타'는 김기덕 월드로 안내해 주는 너무나도 고마운 영화가 될 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뜻 김기덕 감독님의 다른 영화에 손이 가지 않는 이유는 뭘까?   


아마도 한 일주일 정도는 더  이 점으로 고민이 좀 될 것 같다. 

그리고 그 이유를 파악하기 위해 아마 한 편 정도는 더 김기덕 감독님의 영화를 보게 될 것 같다. 


어떤 영화를 선택해 볼까....

아마 그게 김기덕 월드로 진입하게 될지 말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지 않을까?

이 느낌의 정체를 알게되면 내가 여기 이렇게 끄적인 글에 대해 내 느낌이 또 어떻게 변하게 될지 궁금하기도 하다.


하지만 분명한 게 하나있다. 

이 영화는 정말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거머쥐기에 충분한 너무나도 훌륭한 영화라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