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어스 - 반드시 수긍해야 할 전제조건이 있는 구라 SF

2013. 6. 6. 22:064. 끄저기/끄저기

일시 : 2013년 6월 1일 08시 10분
장소 : CGV 목동

 

바야흐로 블록버스터가 쏟아져나오는 여름의 극장가!
더더군다나 올해는 SF가 전에 없이 여러편 개봉을 하고 있다. 

 

SF를 좋아하지만,

아이언맨 따위와 같은 영웅물은 또 별로 안좋아하는 괴팍스러운 성격탓에

같은 SF라도 극심한 편식에 시달리는 나로서는

어쨌든 반갑기 그지 없는 일이다.

 

앞서 오블리비언의 관람평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내가 SF에서 보고자 하는 것은 상상력의 폭이다.

과연 얼마만큼의 상상력으로 지구인류가 아닌 외계인류를,

그리고 지금이 아닌 미래의 첨단 문명을 그려내고 있는가 하는!

 

6월 1일과, 6월 2일.

주말 이틀에 걸쳐 애프터어스와 스타트랙을 연이어 관람했다.

 

만약 내가 이 영화를 본 다음 날 스타트랙을 보지 않았다면

이 영화의 관람평 제목으로 아마

'헐리우드의 상상력은 끝났다!'라고 적었을 것이다.

 

다행히 스타트랙 덕분에 그저 헐리우드가 잘못 만든 

수많은 영화중 하나로만 이 영화를 평가할 수 있게 되었다.


 

 

 

 

 

 

 



1. 정말 중요한 대전제 하나


    딱 작년 이맘때 개봉한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프로메테우스'를 보며 느낀 점 중 하나가 SF 디자인의 다양성이 퇴보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헐리우드의 SF 자산은 세계 최고임에 분명하고, 그 헐리우드 영화에서 지금까지 그려낸 우주선과 비행체를 비롯한 각종 미래 문명의 모습은

    감히 다른 스토리공장이 넘볼 수 없는 수준이라 아니할 수 없다. 

     
    개인적으로 지구의 문명이 지속된다면 지구의 미래 문명은 딱 미국 SF영화 제작자들이 그려낸 그런 디자인의 미래사회가 될 것이라

    자신할 수 있을 정도이다. 
    예나지금이나 미래는 현재에 꿈을 꾸는 이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화 '프로메테우스'에 나오는 지구의 우주선, 외계의 우주선을 보며 

    기존 SF영화의 헤리티지를 벗어나려는 강렬한 몸부림은 느껴지지만 뭔가 엉성하고 덕지덕지 껴붙여놓은 듯한 느낌을 받으면서
    헐리우드 SF자산에 있어 상상력의 퇴보가 나타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었다.  
    불행하게도  이 영화는 그러한 상상력의 퇴보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느낌을 확정해 주고 있는 영화이다. 

     
    어쩌면 이 영화는 제작자들에게 상상력을 요구하지도, 스토리의 개연성을 요구하지도 않았다고 말한다면
    차라리 헐리우드의 상상력 퇴보에 대한 변명이라도 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윌 스미스'가 

    "이건 SF 영화가 아니오. 이건 내 아들을 위한 영화요.

    영화의 모든 스토리, 소품, 장치는 내 아들의, 내 아들에 의한, 내 아들을 위한 영화가 되어야 한단 말이오!"라고 노골적인 요구를 했고, 
    그 요구를 감독이나 스테프가 수긍했다는...

    뭐, 이정도 수준의 정말 비상식적인 가정을 한다면 헐리우드를 욕보인 이 영화의 상상력 빈곤을 용서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 SF영화 매니아라면, 그리고 이런 류의 영화를 볼 때 늘상 기대하는 바로 그 기대심리에 상처를 받지 않으려면 우선 이점을 인정하면 된다. 

    "이 영화는 윌스미스가 오로지 아들을 위해 만든 영화고, 감독과 스테프 역시 여기에 동의한 사람들"이라는 전제를 말이다.


    이 대전제를 하나 인정하고 나면 영화관에 앉아 이 영화가 그려내는 모든 스토리를 딱! 무리 없이 즐길 수 있게 될 것이다. 

    

    왜 첨단 미래 사회가 괴물 얼사를 총과 같은 원격 무기로 제압하지 못하고, 구태여 가까이까지 가서 칼로 죽여야 하는지,  

    백번 양보해서 칼로만 죽일 수 있는 거라 치고, 그렇다면 왜 뛰어난 검술보다 정신수양을 통해 얼사가 감지하지 못하는 '고스트'가 되는 확률 낮은 위업을 

    이루어야 하는지. 등등의 질문을 구태여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되어야 이 영화를 즐길 준비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2. 상상력 요구를 회피하는 꼼수


     외계 문명이나 외계 생명체를 고려해야 하는 SF에 있어서 뛰어난 상상력은 사실 득보다는 실이 많다.
    스타워즈도 그렇고, 스타트랙도 그렇고 대부분이 인정하겠지만,  

    주인공이 지구인이 아니거나, 지구인류와 유사한 점이 없다면, 관객들의 감정이입이 되지 않게 되고, 

    감정이입의 결핍은 스토리에 대한 흥미, 감동의 부재를 야기시킨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그러니 SF영화들은 당연히 외계인을 다루더라도, 주인공은 지구인이거나 지구인과 동일한 형채를 갖춘 인류여야 한다.
   
    그런데 십분 양보해 줄 수 있을만한 양보 외에 이 영화가 중대하게 저지르고 있는 상상력 회피 만행이 하나 있으니
    바로 사람이 살 수 없게 된, 위험한 미래의 지구로 되돌아 온다는 설정이 그것이다.
   
    결국 공간적 배경을 지구로 설정하다보니,

    우리가 늘상 알고 있는 그런 지구의 환경을 배경으로 깔아주면 그만이 되는 셈이다.
   
    조난을 당한 주인공의 비행선은 착륙하면 안될 1급 위험 행성으로 지구를 지목하지만,  주인공들은 선택의 여지 없이 지구에 불시착하게 된다.
    (그런데 정작 그 위험하다는 지구에서 정말 위험한 건 지구의 생명체나 환경이 아니라,  오히려 우주선에 실려 있던 외계괴물 얼사이다. )
   
    지구의 생명체들은 그저 지금도 그런것처럼 나름의 생명 법칙에 충실할 뿐이고,
    심지어 어떤 생명체는 은혜를 보답한다면서 주인공을 위해 생명을 바치기까지 한다.
   
    도대체 왜 지구가 1급 위험 행성인거야???
   
    아....잠시 망각했다. 이 영화는 윌 스미스의 아들에게 헌정하는 영화라는 대전제를 말이다....
   
    어쨌든 대전제가 그렇다 하더라도 결국 대부분의 분량을 차지하는 공간적 배경을 지구로 설정하여
    여기에 어처구니 없는 서술을 붙이기는 했지만,

    결국 우리가 아는 지구 환경과 거의 다를바 없는 배경 구성을 보면서, SF를 가장한 이런 상상력 빈곤의 범죄에 은근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살다보면 늘상 좋은 일만 있을 수 있겠는가...

뭔가 대작을 만나기 위해선 이런 쓰레기에 돈과 시간을 버리는 일도 감수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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