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5. 5. 00:25ㆍ4. 끄저기/끄저기
일시 : 2013년 4월 27일 13시 25분
장소 : CGV 목동
이른바 SF장르에 해당하는 영화를 보러간다면 내가 그 영화에서 기대하는 것은 항상 딱 하나이다.
상상력의 폭!!!
내가 보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 상상력의 폭이라는 것은 근거가 빈약하면 할수록 더 좋다.
다만 하나, 이야기의 전체 구조를 뚝뚝 끊어놓는 파편 작용만 하지 않는다면 상상력은 황당할수록, 근거는 빈약할수록 나의 마음을 잡아끄는 요소가 된다.
물론 거기에 아이로봇에서 다뤄진 것과 같은 로봇3원칙에 대한 고찰이나 AI와 같은 애틋함이 다뤄진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나
어쩌다 한 번 보는 영화에까지 명작의 잣대를 들이대서 좋으니 나쁘니를 판정하고 싶지는 않다.
거듭 말하거니와 이와 같은 SF영화에서 내가 바라는 것은
정형적인 삶의 굴레에 푹 빠져 있는 내게 약간의 영감이라도 줄 수 있는 상상력의 나래이다.
1. 예측 가능한 반전 구조
비단 SF영화뿐만 아니라 어느 영화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야기의 시작에서 주인공이나 나레이터에 의해 상황이 구구절절이
설명되는 작품들은 바로 그렇게 설명된 상황을 뒤집는
후반부를 필연적으로 갖게 된다.
이 영화 역시 처음 시작부분에 많은 부분이 구구절절 설명되고
심지어는 뭔가 중간이 턱 잘린채 시작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역시나 이 영화는 그 상황을 뒤집는 후반부를 갖기 위해,
이른바 '반전'이라는 포인트를 만들어가기 위해 전반부의 이야기를
딱 그 포인트에 맞춰 전개시켜 나가고 있다.
비록 이러한 이야기 구조에 너무나 많이 길들여졌기에 심지어는
지루게 느껴지기까지 해지만, 뭐... 좋다. 거듭 얘기하지만
내가 SF영화에서 바라는 것은 탄탄한 이야기 구조가 아니다.
그런 것쯤은 구태여 상상력이 풍부하지 않더라도
몇몇 화려한 볼거리만으로도 충분히 벌충이 되고 남는다.
그게 SF영화의 매력 아니겠는가?
2. 그러나 결국 드론이 전부.
대략 보면, 헐리우드에서 생산되는 공상과학 영화상의 장비들은
직선화된 미학을 갖는다.
그것은 철저히 공학적이며, 첨단적인 냄새를 풍긴다.
이에 반해, 일본에서 생산되는 공상과학 만화들의 장비들은
곡선화된 미학을 갖는다.
그것은 철저히 유전공학적이며, 인간과 기계가 융합된
경계선적인 미학을 갖고 있다.
이 두 개의 거대 SF문화점유 영역을 벗어나서
뭔가 새로운 SF의 모델을 찾는다는 건 사실 쉬운 일이 아닐 것 같다.
간단하게는 거대 우주선의 디자인부터, 사람이 들고 다니는 권총과 같은 조그마한 무기에 이르기까지,
혹은 도시나 집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기존 SF영화들이 개척해낸 모델을 벗어나서 상큼한 모델을 창출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영화는 구체를 선택했다.
나는 상당히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본다.
구체는 곡선이지만 직선만큼이나 과학적인 느낌을 주는 형태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
개인적으로 이 구체를 좀더 활용한 소품들이 등장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드론이 바로 이 구체의 기계인데, 아쉽게도 딱 거기까지가 전부였다.
영화 후반부 텅 비어 있는 외계 모선 내부는 실망스럽기까지 했다.
한 마디로 이 영화의 상상력은 딱 드론까지가 전부이다.
고쳐서 말하자면 예고편이 전부인 영화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3. 겉도는 집중 포인트.
: 이 영화는 스토리 측면에서 세가지 중요한 집중 포인트를 가지고 있다.
만약 이 포인트들이 스토리 내에 잘 녹아들었다면 명작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을 것이다.
그 포인트의 진부함 때문에라도 더 필요한 작업이었는지 모른다.
첫번째는 상황을 알아차리기 시작한 주인공이 빅토리아에게 같이 떠나자고 하지만 거절 당하는 부분이다.
아마도 이야기 자체가 그나마 가장 치밀했던 부분이 아닐까 싶다.
뜬금없이 드론이 나타나 빅토리아를 죽이면서 힘이 빠지고 말았다.
이렇게 간단히 끝내지만 않았어도 상당히 여운을 남길 수 있을만한 부분이었다.
둘째는 인류를 위해 목숨을 거는 주인공과 말콤(모건 프리먼)의 비장미를 강조하는 부분이다.
이 부분의 개연성과 비장함을 강조하기 위해
"선조의 유물과 신념을 지키기 위해 강적에 맞서는 것보다 더 나은 죽음이 있겠는가."라는 매콜리의 호라티우스 시 한 부분을 계속 반복시키고 있다.
말콤이 주인공 잭을 주목하게 된 것도, 마지막으로 잭과 말콤이 자신들의 마지막 여정을 선택하게 한 것도 바로 이 싯구로 인해서 가능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냥 그게 전부이다.
영화에서조차 내가 여기 써놓은 것 이상의 느낌도, 이하의 느낌도 느낄 수가 없다.
셋째는 또 다른 잭이 줄리아와 재회하는 마지막 장면이다.
이 부분은 사실 복제인간의 다중 영혼에 대한 가장 복잡하고 무거운 생각들을 끄집어낼 수 있는 부분이지만
또 다른 잭이 중간에 너무나도 간단하게 처리되면서 오히려 생뚱맞은 느낌만을 주고 있다.
전반적으로 너무나도 욕심이 많았던 SF영화가 아니었나 싶다.
그 욕심 때문에 결국 훌륭한 소재, 스토리, 소품 등 어느 하나도 제대로 다루지 못한,
두 마리 토끼를 쫓다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쳐버린 전형적인 보통 SF영화가 아니었나 싶다.
그나마 머릿속에 여전히 둥둥 떠다니는 세련되게 빠진 구체 몸매의 드론만이 이 영화가 이룩한 성과의 전부라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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