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 유니버스 - 내 인생 최고의 다양한 세계!

2013. 5. 1. 18:494. 끄저기/끄저기

내가 천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잡지나 인터넷을 통해 접한 천체의 모습이 아름다왔기 때문이다. 

 

물론 그 사진들이 하나같이 엄청난 고가의 과학 장비들에 의해

촬영되었고, 그 사진들이 책이나 인터넷에 올라오기 전에

이런저런 합성을 거쳤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되었지만

그러한 사실이 아름다운 천체의 모습에 대한 흥미를 전혀 줄일 수는 없었다. 

 

심지어는 직접 천문대를 방문할 때마다 관측하는 별이나 성운의 모습이 어찌 보면 그저 밋밋한 은백색 점의 모습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나는 여기서 고가의 장비와 전문적인 이미징 처리를 거친

천체 사진보다 더 큰 아름다움을 느끼기도 했다. 


아마도 그저 아름다운 사진 감상이나 약간은 수고스러울 수도 있는

천체 관측을 직간접적으로 진행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멋지고 보람있는 별사냥꾼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을 거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정말 순수한 호기심으로 우주론을 접할 기회를 맞게 된다.

 

그리고 그 우주론을 접하는 순간!

나 같은 일반인이 정말 감사할 인물 중 하나가 바로

이 책의 저자 '브라이언 그린'이다. 

 

그는 정말이지 신의 두뇌와 맞먹는 두뇌노동이 필요한 '우주론'의 영역을 나와 같은 범부들조차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천재적인 과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이기 때문이다. 


그의 전작, '엘러건트 유니버스'와 '우주의 구조'의 명성을 잇는 멀티 유니버스를 보며 훌륭한 스승이 안내해주는 새로운 세계로 즐겁게 빠져들 수 있었다. 

더구나 이번에 안내되는 세계는 무한하게 펼쳐진 우주들이다!!!

 

1. 다중우주의 가설....들?

 

   누벼 이은 다중우주(Quilted Multiverse) : 무한히 큰 우주공간에 걸쳐 평행우주가 반복되고 있다.

   인플레이션 다중우주(Inflationary Multiverse) : 영원히 지속되는 우주적 인플레이션은 무수히 많은 거품우주를 낳고 우리의 우주도 그들 중 하나이다. 

   브레인 다중우주(Brane Multiverse) : 끈이론/M-이론의 브레인 세계 시나리오에 의하면 우리의 우주는 3차원 브레인 위에 존재한다.

                                                           이 브레인은 더 높은 차원의 공간을 떠다니고 있으며 여기에는 다른 브레인들(다른 우주)도 존재할 수 있다.

   주기적 다중우주(Cyclic Multiverse) : 브레인 세계들이 서로 충돌하면 빅뱅과 비슷한 '우주의 시작'이 창출된다. 

                                                          따라서 충돌이 반복되면 공간이 아닌 시간을 따라 다중우주가 존재하게 된다.

   경관 다중우주(Landscape Multiverse) : 인플레이션 우주론과 끈이론을 결합하면 끈이론의 다양한 여분차원들이 다양한 거품우주를 양산한다.

   양자적 다중우주(Quantum Multiverse) : 양자역학의 확률파동에 존재하는 다양한 가능성들은 수많은 평행우주에서 모두 실현된다.

   홀로그래피 다중우주(Holograhic Multiverse) : 홀로그래피 원리에 의하면 우리의 우주는 멀리 있는 경계면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이 투영된 결과이다.

                                                                        따라서 이들은 물리적으로 동등한 다중우주이다.

   시뮬레이션 다중우주(Simulated Multiverse) : 기술이 발전하면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실제와 똑같은 우주를 만들어낼 수 있다.

   궁극적 다중우주(Ultimate Multiverse) : 다산원리(Principle of Fecundity)에 의하면 이론적으로 가능한 모든 우주는 진짜 우주이며, 

                                                             따라서 우리의 우주가 특별한 이유를 따질 필요가 없다. 

                                                             이 우주들은 모든 가능한 수학방정식에 기초하고 있다. 

                                                             

    브라이언 그린의 책을 보다보면, 중간 중간 '이 부분은 건너뛰어도 좋다.', '바로 몇 장으로 넘어가도 좋다.'라는 표현이 종종 나온다. 

    이 얼마나 친절한 안내인가?

    브라이언 그린의 친절한 안내를 감히 흉내내어 만약 이 책의 두깨에 질린 사람이나, 다중우주의 허무맹랑함에 조소를 보내는 사람이 있다면

    나도 이러한 안내를 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여기 적은 이 9개 분류표만 봐도 된다~"

    

    사실 개인적으로 책의 후반부 489페이지에서 본 이 다중우주 가설 일람표가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좀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번 책은 브라이언 그린의 전작에 비해서 상당히 어려운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 등장하는 다중우주 가설들은 (가장 마지막에 등장하는 궁극적 다중우주를 제외하고는)

    모두 수학적 타당성에 의해 제기된 가설들이지, 사변적이거나 실험적 가설은 전혀 아니다.

    즉, 수학이라는 언어체계에서 모순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들인 것이다. 

 

    물론 나는 이 우주들이 수학적으로 어떻게 표현되는지는 전혀 알지 못하고, 사실 수학적 표현을 본다해서 이해할만한 능력을 갖춘 것도 아니다.

    당연하게도 브라이언 그린이 이 책 내내 시도하고 있는 것은 방정식으로 표시되는 다중우주를 사변적으로 풀어내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 이 책에서는 그 사변적 풀이마저도 끝내 이해가 되지 않은 채 책장을 넘겨야 했던 곳이 몇 군데 있었다. 

    물론 나는 브라이언 그린 저 - 박병철 역 이라는 환상적인 호흡을 전혀 비난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이건 전적으로 나의 이해력 빈곤이라는 것을 나는 철저히 인정하고 있다. 

    

    특히 책의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홀로그래피 다중우주부터 - 시뮬레이션 다중우주 - 궁극적 다중우주에 이르는 부분은  혼란스럽기 그지 없었다. 

    단편적으로 가능한 이해의 파편들이 전체 맥락에서 도무지 결맞춤이 되지 않았다. 

    이럴 때마다 수학이나 물리학 공부를 소홀히 한 나 자신을 정말 크게 반성하곤 한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가능한한 가장 재미없는 방법으로 수학과 물리학을 가르쳐준 내 중고딩 시절의 선생님들에 대한 원망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저 어디선가 또 하나의 우주의 내가 아인슈타인처럼 천재성을 발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스스로 위안이나 할 뿐이다. 

 

 

2. 검증 가능성의 문제

 

    각각의 다중 우주 모형이 펼쳐지고 설명 되는 부분은 사실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거나 이해되어야 할 부분은 아니다.

    더더군다나 브라이언 그린의 전작인, '엘러건트 유니버스' 나 '우주의 구조'를 읽은 사람들이라면

    인플레이션, 브레인, 주기적, 양자적 다중우주에 대해서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저 해당 다중우주의 가설이 등장하게 된 배경을 이해했을 때의 쾌감이 아마 이 책을 접하면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경험이 아닐까 싶다.

    

    책 자체를 심각하게 만드는 것은 이처럼 다양하게 등장하는 다중우주의 가설이 아니라

    바로 그 가설 자체의 검증 가능성이 집중 논의되고 있는 가장 마지막 장 '탐구의 한계' 부분이다. 

    

    과학은 검증의 학문이다.

    즉 모든 가설은 실험이나 관측에 의해 검증되어야 하고, 바로 이 '검증'이 곧 '과학'의 본질이다.

    

    그러므로  앞서 적시된 모든 다중우주 가설이 그 수학적 일관성에도 불구하고 실험 또는 관측에 의해 검증되지 않는다면, 

    과학이 지금까지 배설해낸 수많은 가설 창고에서 썩어 없어질 운명으로 끝나고 말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다중우주'라는 것이 가설을 뛰어넘어 실험 또는 관측에 의해 검증할 수 있는 것일까?

    

    브라이언 그린의 대답은 이 질문에 대해 그리 부정적이지 않다.

    사실 부정적이지 않기 때문에 이 방대한 양의 책을 집필했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그리 단정적이거나 확정적이지도 않다. 

    다만 그는 어느정도는 유보의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사실 '증거의 부재'가 '부재의 증거'로 치환되는 오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과학자에게 있어

    판단 유보는 너무나도 당연한 미덕일 수도 있을 것이지만 그렇다고 하여 브라이언 그린이 무조건 침묵만 하고 있지는 않다. 

    

    다음의 표는 각 다중우주 가설에 대해 브라이언 그린이 예를 들고 있는 검증 가능 시나리오에 대한 정리내역이다. 

 

    

    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사실 브라이언 그린의 명성에 비해 그 검증, 폐기 시나리오는 그리 치밀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책에서도 간혹 언급되고 있듯이 이미 이론 물리학과 실험 물리학의 간극은 끝모를 우주만큼이나 벌어져 있는 상황이다.

    특히 양자물리학이 실험을 통해 속속들이 맞는 것으로 결론지어지면서 

    뉴턴이나 아인슈타인이 그랬듯, 단순한 방정식의 미학적 가치를 따지기에는 물리학의 난이도가 만만치 않은 수준을 넘어선지 오래인 것이다. 

    

    아마도 "진리는 언제까지라도 우리를 기다려줄 것이므로 결론을 빨리 내리기 위해 서두를 필요는 없다."는 브라이언 그린의 고백은

    그만큼 오랜 시간동안의 노고와 인내가 필수조건이 되어 버린 현대 이론 물리학자의 현실을 에둘러 표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받았다. 

    

서두에도 잠깐 언급했듯이 브라이언 그린의 훌륭한 저작이 아니었다면

나같은 보통 사람들은 과연 우주론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진행되고 있는지에 대한 파편화된 정보조차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연구가 예전과 같이 항상 꾸준하기를 바라고 그의 왕성한 집필 및 방송활동이 꾸준히 이어지기를 바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내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어떤 장르의 책이든간에 나를 이처럼 다양한 세계로 안내해 주었던 책이 있었던가 싶다. 

브라이언 그린의 여정에 응원을 보내며, 그가 풀어내준 왠만한 수준의 인문학적 상상력을 뛰어넘는 수학의 언어에

내가 바칠 수 있는 한 최대의 경의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