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람의 조선여행 - 퇴락하는 나라의 풍경은?

2014. 1. 1. 22:564. 끄저기/끄저기

 

개인적으로 한때 외국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우리 나라가 어땠을지 무척 궁금해서 그런 내용들의 책들을 구입하여 읽기를 즐긴 시절이 있었다.

 

우리나라가 남에게 어떻게 보이는지가 궁금하기도 했지만

국가주의의 세례를 교육받고 자란 내가 익숙하게 그러려니 생각하고 있었던 하나의 현상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훈련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름 가치있는 독서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건 결국 나와 우리 나라에 대한 낮은 자존감에서 기인한 행동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누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가를 신경쓰지 않는다.
자신의 원칙과 주관이 확고하고, 그런 사람들이 자신만의 색깔을 뿜어내고
그러한 주체 하나하나가 모여 만드는 사회는 '다양성'이라는 막강한 무기를 손에 넣게 된다.


반면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게 되고, 자신의 색깔이 자리잡아야 할 곳에 자연스럽게 타인의 가치관이 자리잡게 된다.
그러한 개인 하나하나가 모여 만든 사회라면 획일적이고, 외부로부터의 '강제'에 쉽게 휩쓸리게 될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나는 결단코 그러한 사회를 바라지 않는다.

하여 그런 생각을 했을 때부터 더 이상 이러한 류의 책을 접하지 않게 되었다.

따라서 이 책 '세상 사람의 조선 여행'이라는 책은 남에게 보이는 내 모습이 궁금해서 선택된 책은 아니다.

그저 존경하는 선생님 중 한 분인 전우용 선생님 컬랙션의 일환으로 선택된 책일 뿐이다.

 


1. 책의 구성
   이 책은 규장각 교양총서의 하나이고, 2008년부터 실시된 '금요시민강좌'에서 다룬 한국학 전반에 걸친 내용 중 일부를 엮어 발간된 책이다.
   따라서 책은 한 명의 저자가 아닌 다수의 저자가 참여하고 있으며
   외국인의 입장에서 바라본 조선의 모습이라는 주제하에 총 13편의 글이 묶여 있다.
  
   이 13편의 글에는 중국 칙사, 일본 관료, 임진왜란 당시의 일본 포로 귀화인, 그리고 그 유명한 하멜의 기록 등에서 보이는 조선의 모습이 담겨 있으며
   개화기로 접어들어 한국을 찾은 서양 사람들(잭 런던, 묄렌도르프, 로제티, 베버 신부 등)의 기록에 남겨진 조선의 모습도 담겨 있다.
  
   시대상 중국 명나라 칙사의 내용이 담긴 부분에서 조선 세종까지 거슬러 올라가기는하지만
   전반적으로는 개화기와 일제시대 우리나라의 모습에 중심이 실려 있다.
  
   책은 약간은 두꺼운 느낌이 들긴 하지만 고급 재질의 종이와 다양한 사진, 삽화들로 인해 실제 분량이 그리 많은 것은 아니고,
   대중의 눈높이에 맞춘 학술서적이다보니 내용도 쉽게 읽힌다.
  
   내게는 사실 새로운 내용은 그다지 많지 않았지만
   다양한 사진과 삽화들은 옛날 우리의 모습을 간접적으로나마 들여다보는데 충분하고 좋은 자료들이었다고 생각한다.
   
  
2. 퇴락하는 집단의 모습
   나는 이러한 류의 글들을 통해 단순히 우리 나라의 예전 모습을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며
   오히려 퇴락해가는 집단의 모습이 어떤 모습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역사가 현재에 던져주는 메시지가 없다면 그리고 그 메시지에 영감을 받지 못한다면, 화석화된 역사 자체로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그런 측면에서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글은 7장 "나는 한국에서 살인충동을 느꼈다." 라는 부분이었다.
   '좌파 작가 잭 런던이 본 대한제국의 몰락'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글은
   미국의 잘 나가는 작가 잭 런던이라는 사람이 러일전쟁당시 종군기자로 조선땅을 밟으면서 기록한 조선의 모습을 비평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부제에는 다소 불만이 있다.
   우파 작가가 조선땅에 와서 대량 학살의 감정을 느꼈을지, 감당하지 못할 사랑의 감정을 느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좌파 작가'라는 관형구가 왜 구태여 필요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제목 자체가 이렇게 선정적으로 뽑혀 있는 이 글은 시종일관 몰락해가는 조선의 비루한 모습들로 가득차 있다.
  
   이 글의 초반부에 말을 제대로 돌보지도 못하는 마부의 일화와 함께 잭 런던의 하기와 같은 평가가 기록되어 있다.
   "나는 한국인이 얼마나 비능률적이며 무능력한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기 위하여 평범하기 이를데 없는 이 사건의 전말을 이야기한 것이다.
    마부에게 일어난 일은 모든 경우에,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
    그들은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고 배우려고도 하지 않으며 관심도 없다.
    말은 언젠가는 그 부서진 편자 때문에 다리병신이 되었을 것이다.
    수 세기 동안 한국인과 한국 정부는 다리를 절었으며, 우수한 마부가 발을 들어 편자를 고칠 때까지 그렇게 계속하여 다리를 절고 다닐 것이다."
   
  이 문구는 당시 퇴락하는 조선의 모습 뿐 아니라, 퇴락하기까지 누적된 조선의 비루한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대로 개인의 역량보다는 일부 귀족의 강압과 그들만의 특권의 대물림에 시달린 나라가 우리나라 아니었던가?
  그 귀족들은 자신의 특권의 발판이 되는 나라조차 제대로 지킨적이 없다.
  사대주의에 쩌들었으며, 외세에 편승하여 민중들에 대한 갈취에 앞장섰던 지도층이 바로 이나라의 지도층이었다.
 
  그런 분위기가 계속된 나라이며 그래서 결국은 멸망을 코앞에 둔 나라에서 어떻게 구성원 하나하나에게 염치와 도덕, 열의을 바라겠는가?

  저자는 잭런던의 평가들이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부정확한 관찰과 편견으로 가득차 있다고 평가하지만,
  나는 어찌보면 올바른 평가이고, 그 평가가 기분이 나빴다면 그 평가의 원인이 무엇이었을지를 곰곰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본다.

 

전반적으로 학술서적 풍의 책이어서 그런지 이 책을 선택하게 된 원인인 전우용 선생님의 글은 그다지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흥미만을 목적으로 선택되어도 무난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고,
가급적 이 책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여기 기록되어 있는 글들에서 우리의 모습이 어땠는지,
그리고 그러한 모습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냉철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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