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이즈 컬처 - 21세기 르네상스의 시작

2014. 2. 16. 22:444. 끄저기/끄저기

1. 학문간 융합의 첫 걸음.

 

     학문간의 융합이란 많은 지성인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오늘날의 중요한 패러다임 중 하나이다. 
     다만 아직까지 교육 및 학습 현장에서 아직 학문간의 융합을 구체적으로 구현하기에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산업현장에서 각 영역간의 경계는 이미 융합이 시작되고 있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을 대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술적인 개선사항보다도 직관적으로 인식되는 화면의 크기, 화질, 디자인, 명칭 등에 쉽게 이러저러한

     평가를 내리게 된다. 

     그러다보니 이러한 평가 행태는 UX(사용자 경험, User Experience)라는 개념으로 

     단말기 제조사의 엔지니어들에게 중요한 개발 요소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교육 현장에서, 학문간 융합에 대한 개념정립은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대한민국만 해도 여전히 교육 체계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전인 교육에서 전문 교육으로 옮겨가는 방향성을 유지하고 있으며, 

     한때 대학 사회가 전공의 벽을 깬다는 취지하에 학부제로 전환되기도 했지만, 그 학부제에서마저도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등 학문의 범주는

     여전히 공고하게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교육체계가 학문간 융합에 부합하려면
 현재 교육 체계의 마침점(대학졸업) 이후

 다른 학습 영역으로 다시 배움을 시작하는 새로운

 학습체계를 얹어 내거나 아니면 현재의 교육 체계를

 전면적으로 뜯어고치는 불안한 발걸음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물론 불행히도 이 두 시나리오 모두 쉽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 측면에서 이미 저명한 자연과학자와 사회과학자,

 예술가 등을 한 자리에 앉혀 특정 주제에 대해 

 서로 대화를 진행토록 한 시드(Seed)의 기획자 애덤 블라이의 시도는

 중요한 의미를 획득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책 '사이언스 이즈 컬쳐'는 그 첫 걸음이라 할 수 있는

 여러 저명 학자들의 대화록을 기록하고 있다.

 

 

 

 

 

 

 

 

 

 

 

 

2. 견지되어야 할 방법론

 

   '사이언스 이즈 컬쳐'가 학문간의 융합을 중요 목적으로 하고 있지만 중구난방식의 접붙이기를 시도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책 '사이언스 이즈 컬쳐'는 모든 학문의 우선 순위에 '과학'을 놓고 있다는 측면에서,  과학을 그닥 신뢰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반동적이라는

    느낌을 가지게 될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역사에서 사실 과학이라는 학문이 차지하는 시간은 미미하기 이를데가 없지만,  과학은 그 어느 학문보다도 인간의 모든 분야에 있어 막강한 영향을

    끼쳐왔고,  지금은 그 어느때보다도 과학이 만개하는 말 그대로 '과학 만능주의'의 시대를 맞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책이 우선시 하는 것은 '과학' 자체가 아니라 '과학적 방법론'이라는 사실이다.

 

    사실 과학의 산물로서 각종 기계, 기술 문명이 넘쳐나는 작금의 시대는  과학이 모든 사회의 주도권을 장악한 것처럼 보이게 만들지만,
    그것은 단지 과학의 산물을 소비할 줄 아는 향유자로서의 인간이 넘쳐나는 것에서 유래되는 착시현상일 뿐이지,
    정작 그 산물을 가능하게 했던 과학적 방법론의 대중화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기획자가 제시하는 문제점이다.
    

    책 제목으로 사용된 '과학은 문화이다'라는 선언적인 문구는 바로 그러한 기획자의 문제의식을 고스란히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이를테면 '과학'이라는 학문 그 자체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여타 학문 또는 문화 체계와 충돌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종교'라는 분야는 '과학'과 항상 극한의 전선을 형성하고 있는 분야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종교'에서도 '과학적 방법론'은 유효하다는 것이 기획자의 생각이다. 

    대부분의 고등 종교가 너무나도 획일적이거나 배타적이어서 반론을 허용하지 않는 종교적 움직임을 '이단'이라고 배격하는것을 보면

    이러한 기획자의 생각은 타당성이 있어 보이고 현재 이미 구현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종교가 이럴진대 인간이 영위하는 일상생활과 학습활동 등에 있어서도 과학적 방법론은 충분히 그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주장은 중요하지만 그 주장은 반대될 수 있고, 오류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항상 열어두는 것이야말로  찬란한 기술문명을 이룩한

     - 그리고 앞으로 이룩을 지속할 - 과학적 방법론의 핵심이라는 것을 고려했을 때, 
    자세 자체만 놓고보면 그다지 어려울 것도 없는 "이러한 자세를 대중화하는 것이야말로 과학 그 자체보다도 중요하다"는 선언은 

    기획자가 이 책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 중의 핵심일 것이라 생각한다.
   
   
3. 아쉬운 점.    
  
   하지만 '과학적 방법론을 기초로 한 학문간의 융합'이라는 측면에서 이 책을 바라보면, 

   본 책에 나열되어 있는 22개의 대화록 자체보다는 저명한 과학자, 예술가들이 한 자리에서 토론하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게 되고
   이것은 정작 구체적인 대화록 하나하나의 중요성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 모호한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이처럼 모호한 상황은 불행히도 아직까지는 이러한 시도 자체가 뭔가 원대한 것을 건드는것 같은 느낌, 

   아직은 구체성을 획득하지 못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불러일으키게 되는 원인이 되기도 하는데
   실제 이 책에는 몇 가지 아쉬움이 이러한 느낌을 증폭시키는 요소로서 작용하고 있다.


   우선 대화로서 구현되는 언어와 글속에 붙박혀 버리는 문어체의 차이에서 오는 아쉬움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모든 글들이 두 명의 학자들간의 대화를 글로서 기록한 것이다.
   이처럼 대화로 이루어진 내용을 글로 정리하다보니 대화에서 당연히 오갔을 어투와 상황과 분위기 등이 누락되면서
   무미건조하게 남겨진 찌꺼기처럼 대화록 자체가 그닥 생기있게 느껴지지 않고 있다. 


   더군다나 나와 같은 비영어권 독자는 그런 문어체를 또 한 번 번역해낸 글을 봐야 하니, 더더욱 내용이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또 하나는 대화를 하는 분들 한 분 한 분이 워낙 저명하신 분들이다보니 대화의 주재로 사용되고 있는 내용에 대해,
   혹은 마주앉은 두 분의 전문 영역에 대해 어느 정도 식견이 있지 않다면 여전히 내용이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어느 대화록은 대화하시는 두 분간의 전공 영역 차이로 인해 대화가 마치 물과 기름처럼 서로 둥둥 떠다니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저명하지 않은 분들을 모셔놓고 대화록을 적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대화 당사자간에 상대방 영역에 대한 사전 학습을 실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는 점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앞서 이 책에 대한 아쉬움을 '단점'이 아닌 '아쉬움'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책에서 느껴지는 아쉬움, 그리고 기획자가 의도하는 '문화로서의 과학, 방법론으로서의 과학'이라는 서로다른 두 느낌의 존재는

이 책이 담고 있는 한계와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정말 다행이게도 아쉬움은 그저 불평어린 독자의 사족과 같은 평가일 뿐이고,

획자의 의도는 이 책이 출반된 2012년 이후에도 여전히 중요한 패러다임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21세기 새로운 르네상스는 그 의미있는 발걸음이 이미 시작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기획자의 의도대로, 사이언스가 컬처라는 인식이 대중화되기를, 그리고 실현되기를 바라고 나 역시 그러한 흐름에 한 몫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