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치 머리엔 블랙박스가 있다. - 선량한 관리자의 우리 물고기 보고서

2014. 6. 15. 00:164. 끄저기/끄저기

1. 밤마다 참기 힘들던...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물고기들의 '생태'를   

   소위 말하는 '제철'에 따라 기록한 책이다.

 

   여기서 '제철'이란 식재료로 활용하기에 가장 적합한 시즌을 말하는

   것이다보니 책에는 물고기의 생태에 대해 기술한 내용이 기본이긴

   하지만, 제철 물고기를 가지고 만든 음식에 대한 얘기도 상당부분

   포함되어 있다.

 

   처음에는 음식에 대한 부분이 교양과학서적으로서 질을 좀 떨어뜨린

   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이내 내 생각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이러한 과학적 탐사가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에도

   중요하긴 하지만  어자원을 확보하고, 이를 풍부하게 유지, 관리하여

   인간이 먹고 사는데 일익을 담당하는 것 역시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글로 쓰자니 뭔가 고상한 표현이 되긴 했지만, 솔직히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회사일을 마치고 저녁에 이 책을 볼 때마다 입맛 돋구는

   각종 음식 얘기 때문에 식탐을 주체하기가 퍽도 힘들었다.
  

 

2. 일년 열두달 우리바다 물고기.

 

   생물학 분야는 과학의 다른 분야와 달리 특정 수식이나 법칙으로 일괄적인 계산이 가능한 분야가 아니라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우리 물고기에 대한 이야기 역시 박물학적인 접근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고,
   박물학적인 접근이라면 당연히 '폭넓은' 수집을 기반으로 한 체계화가 필수 접근 방법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가능한한 많은 내용을 담는다면 책은 두꺼워질 수밖에 없을 것이고,
   특정 개인이 그 많은 내용을 다 수집하여 연구하기에도 한계가 있을 것이므로
   이 책은 교양과학을 표방하는 책으로서는 적절한 뼈대를 잡고, 적절한 분량을, 적절한 흥미거리와 함께 적절하게 녹여낸 책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일년 열두달 우리 물고기로서 등장시키고 있는 물고기들과 대강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월 : 명태(Theragra chalcogramma)
             대구목-대구과에 속하며 냉수성 물고기이다.
             북미 서해안에서 베링해, 오호츠크해, 일본 훗카이도 및 우리나라 동해안에 걸쳐 서식한다.
             동해에서 주 산란장은 원산만 근해이고, 겨울에 강원도 북부에 어장이 형성된다. 
             1980년대까지 단일어종으로는 어획량이 가장 많은 어류였지만 지금은 원양어선의 조업 재개가 모두 불허될 정도로 심각하게 줄어든 상태이다. 
             시원한 찌개가 가능한 이유는 바다 바닥 가까이에 살아 근육에 지방이 적기 때문이란다. 

         
   2월 : 아귀(Lophiomus setigerus)
            흉칙한 외모와 물컹물컹한 살로 맛이 없었기 때문에 어부가 잡자마자 뱃전 너머로 던저 '물텀벙'이라 불렸다고 한다.
            산란기는 2~4월 경으로 추정되며 수명은 암컷이 8년, 수컷이 5년으로 근해 어종 중 수명이 긴 편이라 한다.
             50여년전 마산 오동동에서 장어국을 팔더 혹부리 할머니가 북어찜 요리법대로 아귀를 요리한 것이 오늘날 아귀찜의 시초라고 한다.

 

   3월 : 숭어(Mugil cephalus)
             우리나라 근해에는 숭어와 가숭어, 등줄숭어가 있는데 횟감으로 일반적으로 말하는 숭어는 가숭어를 말한다. 
             5~6월 봄에 산란하며 펄이 있는 하구역에 서식하기 때문에 갯벌이 없는 제주도에는 가숭어가 출현하지 않는다. 
             늦가을과 겨울에 맛이 들기 시작하여 정월과 2월에 제맛이 든다.
             갯벌 흙 속에서 먹이를 찾기 때문에 삼킨 펄 흙을 배출할 유문이라는 기관이 존재하며 이것 때문에 마치 배꼽이 있는 물고기처럼 이야기 되곤 한다.
             숭어를 일컫는 이름이 100개가 넘을 정도로 친숙한 물고기이지만 숭어의 알로만든 음식인 숭어 어란은 일반인들은 잘 알지 못하는 고급 음식이다.

 

   4월 : 실치와 조기
            실치(Pholis fangi) : 4월 한달에만 맛볼 수 있는 실치는 뱅어 새끼로 잘못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흰베도라치 새끼이다.
                              10월에 알을 배기 시작하여 11~12월에 먼바다에서 산란한다.
                              1월이 되어야 새끼가 부화하고, 2월에 1센티미터 크기이다가 3~4월에 하루가 다르게 자라면서 우리가 익히 아는 실치가 된다.
                              4월에 다시 연안에서 급속도로 빠져나가 6월까지 먼바다로 이동하고, 7월에 성어인 흰베도라치가 되어
                              바닷속 깊은 바닥에서 10월까지 생활한다.

            조기(Larimichthys polyactis) : 조기는 서해의 대표어종이며, 예로부터 최고급 생선 대접을 받아왔다.
                              동중국해에서 겨울을 나고 3~4월에 전라도 칠산 앞바다, 그리고 4~5월에는 서해 옹진군 연평도에 이르러 산란한다.
                              굴비는 조기를 염장하여 말린 것이며 영광 굴비는 영광군 칠산 앞바다에서 잡은 산란 전의 참조기를 염장하여 말린 것을 말한다.
                              참조기와 같은 민어과 어류로는 수조기, 보구치, 부세, 민어 등이 있는데 한때 참조기로 둔갑해 팔리던 물고기들이다.
                              같은 민어과 어류로 크기가 작은 눈강달이와 황강달이는 '황세기'젓갈의 재료로 쓰인다.      

 

   5월 : 멸치(Engraulis japonicus)
             일반적으로 유통되는 마른 멸치를 기준으로 몸길이 7.7센티미터 이상이 대멸,  7.6~4.6센티미터 사이를 중멸, 4.5~3.1센티미터 사이를 소멸,

             3.0~1.6센티미터 사이를 자멸, 1.5센티미터 이하를 세멸이라 한다.
            빛을 쫓는 대표적인 양성 주광성 어류로 떼를 지어 이동하며 30여가지의 다양한 어업으로 어획되지만
            남해 죽방렴이라는 생태어법으로 잡은 멸치는 외관도 손상되지 않고 맛도 더 좋아 비싼 값에 거래된다. 

 

   6월 : 조피볼락과 넙치
             조피볼락(Sebastes schlegelii) : 우럭으로 알려져 있는 물고기의 표준어는 조피볼락이다.
                               우리나라 전 연안의 얕은 암초 사이에 살고 있는 대중적인 낚시 대상종이다.
                               1980년대 후반에 종묘 생산에 성공하여 대표적인 서해 양식어종이 되었다.
                               자연상은 회갈색, 양식산은 흑갈색을 띤다.
                               수온이 낮은 겨울에 빠르게 성장하다가 6~7월에 수온이 높아지기 시작하면 성장이 느려지는 냉수성 어종이다.
                               11월~12월에 체내 수정하여 1~2월에 4~5밀리미터 크기의 새끼를 물속에서 낳는 난태생이다. 

             넙치(Paralichthys olivaceus) : 광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는 넙치는 눈이 왼쪽으로 돌아가 있는데서 가자미와 구분된다.
                               자연산은 눈이 없는 쪽이 완전 백색인데, 인공 종묘시 방류되어 자연산처럼 자란 넙치도 완전 백색이 아닌 유백색 반점이 남아 있어,

                               이 반점이 무엇 때문에 생기는 것인지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갓 부화했을 때는 눈이 양쪽에 위치하나 3주 정도 후에 변태를 하면서 눈이 한쪽으로 이동한다.
                               넙치의 담기골살은 미식가들이 진미로 치는 부분이다.

 

   7월 : 복어(Tetraodontiformes)
             동그랗게 배를 부풀린 물고기가 복어임은 누구나 알 수 있거니와 이때 몸을 부풀리는 작용을 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부레가 아니라 위장이다.
             이처럼 배를 부풀리는 이유로는 현재로서는 적에게 맞서는 방안이라는 위협설과, 물을 입으로 강하게 뿜어내려는 모종의 습성과 연관되어 있다는

             분수설이 유력하게 대두되고 있다.
            종류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지만 복어는 알, 간, 내장, 근육에 독성이 청산가리보다 1천배나 강한 테트로도톡신이라는 독을 가지고 있다.
            한편 실험실에서 부화하여 양식된 복어에는 독이 거의 없는 점으로 미루어 복어가 독을 스스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먹이를 통해 독이 만들어지는

            것으로 추측하는 경향이 강하다. 
        
   8월 : 뱀장어(Anguilla japonica)
             일반적으로 장어라 부르는 물고기에는 여러 종류가 포함되어 있다.

             보통 민물장어로 불리는 뱀장어, '아나고'라고 불리며 횟감으로 즐겨먹는 붕장어, '하모'라고 불리는 갯장어, 꼼장어라고 불리는 '먹장어'가 그것이다.
             뱀장어, 붕장어, 갯장어는 경골어류이지만, 먹장어는 입이 흡반 형태에 눈이 퇴화된 원구류로 분류학상 종류가 다르다.
        
             뱀장어는 연어와 반대로 민물에서 자라다가 산란할 때 바다로 회유하는 강내림(강하성) 회유를 한다.
             동북아산 뱀장어의 산란장은 마리아나 해구 북쪽의 마리아나 해저산맥으로, 이곳으로 이동하는 6개월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4월~8월 사이 수심 160미터쯤 되는 해저 산봉우리에서 산란을 하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렇게 태어난 새끼는 '렙토세팔루스(Leptocephalus)'라는 투명한 대나무 잎 모양의 댓잎뱀장어 형태로
             북적도 해류와 쿠로시오 해류를 따라 6~12개월동안 3천킬로미터의 여행을 하고 대륙사면에 이르면 몸이 원통형의 실뱀장어 모양으로 바뀌어

             한국, 중국, 일본 연안으로 들어온다.
             댓잎뱀장어에서 실뱀장어로 변태할 때, 모양이 완전히 바뀔 뿐 아니라 크기도 오히려 줄어들기 때문에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댓잎뱀장어와 실뱀장어를

             다른 종으로 인식했었다.
            새로운 세대의 뱀장어가 자신의 부모 세대의 고향을 찾아오는 모천회유는 여전히 풀지못한 신비로 남아 있다.
        
   9월 : 갈치와 전어
             갈치(Trichiurus lepturus) : 최대 15세까지 살며, 그 길이가 2미터를 넘기도 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갈치는 보통 1미터 정도이고, 수컷은 4살, 암컷은 6살까지 사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비교적 심해성 어종으로 수심 100미터 정도의 모래와 펄이 섞인 곳에 산다.
                                     6~10월의 산란기에는 연안 가까운 얕은 곳으로 이동하여 밤에는 표층까지 떠올라 멸치 등의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는다.
                                     갓 잡은 갈치를 만지면 은색 가루가 손에 묻어나는데, 이것은 구아닌이라는 유기염기로 갈치를 날로 먺을 때 깨끗이 벗겨내지 않으면

                                     복통과 두드러기가 날 수 있다. 

             전어(Konosirus punctatus) : 우리나라 연안 수심 30미터 내외의 표층과 중층에 사는 연안성 어종이다.
                                     서해안에서는 봄에 수온이 올라가면 만이나 연안으로 들어와 여름을 나고 수온이 낮아지면 외해로 빠져나간다.
                                     전어는 가을 전어를 최고로 치는데 실제 국립수산과학원에서 전어의 성분을 분석한 결과 가을이면 유독 지방 성분이 최고 3배

                                     높아졌다고 한다.
                                    
   10월 : 고등어(Scomber japonicus)
               고등어를 비롯한 참치, 삼치, 정어리 등과 같이 평생 물에 떠서 사는 떠살이 물고기(표영어류)는 위아래, 전후좌우 모두가 투명한 3차원 공간에

               노출되어 숨을 곳이 없다.
               그래서 이들 떠살이 물고기는 대체로 등 쪽이 푸르고 배쪽은 은백색을 띤다.
               등 색깔이 푸른 것은 바닷새가 하늘에서 내려보았을 때 바다색과 구별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며 배 색깔이 은백색인 것은 물밑의 포식자가

               올려보았을 때 분간하기 어렵게 하기 위해서이다.
               고등어는 낚아 올리는 즉시 죽고, 죽자마자 붉은 살이 빠르게 부패한다.

               이때 붉은 살에 함유되어 있는 히스티딘이 히스타민으로 변환되고, 이 물질이 알레르기 증상을 일으켜, 두드러기, 복통, 구토 등이 생길 수 있다.

 

   11월 : 홍어(Raja pulchra)
               참홍어는 혈액 속에 요소와 요소 이전의 물질인 트리메틸아민산이 많이 들어 있어 체내 삼투압이 해수와 거의 같고 오히려 신장으로부터 요소를

               배출하지 않고 재흡수하여 높은 삼투압을 유지한다.
               참홍어가 죽으면 몸속요소가 암모니아, 트리메틸아민으로 분해되면서 자극적인 냄새가 나는데, 이 두 물질이 코끝을 톡 쏘는 맛의 원인 물질이다.

               이처럼 참홍어에서 발생하는 암모니아 냄새는 자체의 요소 성분이 분해되어 나오는 것이지, 부패 과정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어서
               먹어도 뒤탈이 없고, 맛이나 소화, 영양의 측면에서도 훨씬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2월 : 꽁치와 청어
               꽁치(Cololabis saira) : 꽁치는 계절에 따라 지방 함유량이 달라지는데, 10~11월에 20%정도로 가장 높다. 
                                  꽁치는 야간에 유영하는 성질이 있어 주로 밤에 조업한다.
         
               청어(Clupea pallasii) : 청어목 청어과의 물고기로 대표적인 한대성 어류이다.


 

 

3. 선량한 관리자를 위한 찬사

     창세기 1장 28절은 종교를 가진 환경운동가들에게는 새로운 해석이 시도되고 있는 부분이다.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여라.
       그리고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생물을 다스려라."
       (성경, 주교회의 성서위원회)
   
     이 성경 구절에서 '다스려라'라는 부분은 그 동안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라는 신학적 근거를 제공해왔다.
     그러나 현대 환경운동에서는 이 문구가 내포하는 인간중심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라틴어 Dominare에 관리하다라는 뜻이 있음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즉, 이 부분은 '다스림'이 아닌 '관리'로 해석되어야 하고, 인간은 지구의 모든 생명체를 관리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종교인들이 교리체계 내에서 어떤 형태의 왈가왈부를 일삼든간에
     대자연에 대해 인간의 겸손함을 명령하는 엄숙함을 나는 성경이 아닌 이와 같은 교양과학서적에서 본다.
  
     아무도 중요하게 생각지 않는 물고기의 생태를 알기 위해 과학자들은 평생을 연구에 몰두하고
     그 결과 4월의 실치, 8월의 장어와 같이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장대한 자연의 서사시가 완성되는 것이다.
     이러한 지식들이 종의 보존과 인간의 풍요로운 삶을 목적으로 하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종교단체에서 신의 말씀을 전달한다고 하는 성직자보다, 이 시간에도 묵묵히 자연현상을 분석하고 있는 과학자들이 신이 보시기에 더 선량한

      관리자들이 아닐까?

 

      이성을 가진 우리 인간의 눈으로 보아도 마찬가지이다.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별거 아닌 것처럼 보여도, 그 이면에는 그 별거 아닌 것을 규명해내기 위해 평생의 노력을 바치는 사람들이 있다.

      따라서 그 사람들이 평생을 바쳐 규명해 낸 한 줄의 진리를 대하는 나와 같은 일반인들은  최소한 그 예의로서 이 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며 혹시라도 이러한 수고의 결정체를 함부로 재단하고 간과하지 않도록 주위 환경에 임하는 자세를 조금은 더 진지하게

      가다듬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교양과학서적을 고르다가 제목이 눈에 띄어 사게 된 책이다. 

 

     "멸치 머리엔 블랙박스가 있다." 라는 이 재밌는 제목은 멸치 귀속의 이석을 표현한 것으로서 실제 본문에서는 한 페이지 남짓의 분량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한페이지를 쓰기 위해서 저자를 비롯한 학자들께서는 얼마나 많은 노고를 쏟으셨겠는가?

     새삼 이 책의 저자 황선도 박사님과 지금 이순간에도 묵묵하게 자신의 일을 수행하고 계실 과학자분들께 존경의 마음을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