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 하는 것 - 일상미분

2014. 6. 17. 23:084. 끄저기/끄저기

1. 비평! 즐 드삼~

 

    대학을 다닐 땐 나름 국문학도라고 이상문학상을 옆구리에 끼고 다닌적이 있긴 하지만
    나는 전공필수과목의 한자리을 차지하고 있는 문학비평 수업들이 정말 싫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나에겐 지론이 하나 있는데 술집 벽에 싸질러놓은 낙서 하나가 그 어느 비평보다도 훌륭하다는 것이다.
   
    한번은 문학비평계에서 나름 이름을 날리시던 모 교수님이 "비평은 또 하나의 창작"이라는 강의를 했을 때

    - 물론 안 보이게 - 가볍게 뻑큐를 날린 적도 있었다.
   
    창작과 비평 사이에는 스틱스 강이 흐른다.
    비평가 따위는 그 강을 건너려면 죽어야 한다.
   
    이 책은 단편 소설 17편이 실려 있는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소설집이다.
 
    이 책을 읽고나서 가장 먼저 떠오른 기억이 앞에 쓴 대학생 때의 기억인데,
    그 이유는 소설들이 하나같이 비평가들이 '썰'을 풀기에 딱 적당한 글들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서평을 쓰는 이유는 순전히 책의 내용을 머릿속에 오래 남기기 위함인데,
    이 글들을 보니 몇몇 문장을 뽑아, 프로이드 플러스 융이라는 소스를 치고 포스트 모더니즘이라는 접시위에 올려놓으면
    나름 무슨 소린지 알아듣기는 어렵지만,  뭔가 대단한 걸 써놓은 듯한 느낌을 줄 수 있겠다라는 느낌이 확 들었다.
   
    바로 그 느낌이 내 대학 시절을 불러낸 것이다.
    라캉이라는 젠장할 놈이 말아먹은 내 대학 생활 말이다.
   
    하여 서평을 쓰겠다고 앉아 있는 지금 나름 다짐을 하나 해 본다.
 
    "절대 문장 하나, 어휘 하나 들어내서 난도질하는 추잡한 짓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2. '기문학'의 힘.
   
    일전에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애니메이션을 안주인과 같이 봤을 때, 안주인께서 작품 소감으로 딱 한 마디를 하신 적이 있다.

 

    "기~~~~~~~~~"

 

    해석하자면, 스토리라는게 기승전결이 있어야 하는데, 그 중에서 '기'만 나오다 끝났다라는 얘기다.

 

  내가 보기엔 요즘 대중 드라마나 영화는 기나 결은 엿바꿔 먹은지 오래고 끊임없이

  '승전승전승승전전전' 인거 같다. 

  방송작가이신 안주인께서는 직업의 성격상 대중성이 생명이니 기~~~~~~~~~"라는

  평가는 딱 안주인께서 내릴 수 있는 평가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또 한편 다시 생각하면, 이건 대중성에서 해방된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권리이기도 하다.
   

  비록 그 권리 때문에 치뤄야 하는 댓가가 엄청나지만 스토리 라인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쓰고 싶은 작품을 자신의 스타일에 따라서 쓴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이겠는가 말이다. 
    
  그래서 이른바 '기문학' - 이건 내가 만들어낸 말이다. - 들은 배경이야 어쨌든

  비하인드 스토리가 어쨌든,  책으로 출판이 되어 나같은 불특정 독자들에게 읽히게

  된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그 자체로 충분히 행복한 작품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작품들은 또 한가지 강력한 파워를 발휘하는데
  마치 교리가 애매한 종교가 광신도를 더 많이 보유하듯, 
  스토리 라인 애매한 작품일수록 매니아를 양산한다는 것이다. 
    
  아마 레이먼드 카버 역시 그런 작가 아닐까?
    
  나는 레이먼드 카버라는 작가를 잘 모르고 그의 작품도 이 책이 처음이기 때문에 
 그가 어떤 작품세계를 형성하고 있는지를 논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니다.

 

    하지만 책에 부록에 나와 있는 그의 삶을 보건대,
    낭만주의를 뒤집어 씌우면 나오는 딱 그 모습이 그려지는 전형적인 작가의 삶을 살은 것 같고
    17편의 단편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특징을 봤을 때, 그는 분명 행복한 기문학 작가였음에 틀림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3. 일상미분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작품들을 그저 '기문학'이라고 평가해버리고 마는 것은 분명 창조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세상 모든 비평가들보다 무거운 한 사람의 창조자였기에 그가 창조한 세상이 어떤 세상이든
    소비만이 삶의 전부인 나같은 범인들이 분명 무릎꿇고 찾아보지 않으면 안 될 그의 색깔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레이먼드 카버가 창조해낸 세상에서 내가 찾아낸 그의 색깔은 '일상미분'이라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레이먼드 카버가 다음과 같은 과정으로 글을 썼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그는 함부로 고개를 돌리거나 바로 몸을 일으켜 세우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눈을 뜨고 우선 천장이 자신의 시야에 또렷이 초점이 잡히기까지 기다렸을 것이다.

    그래서 초점이 또렷이 잡히고 나면 몸을 서서이 일으켰을 것이다.

    몸을 움직이면 당연히 눈이 향하는 곳은 달라진다.
    따라서 그는 머리를 함부로 돌리지도 몸을 함부로 빠르게 돌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시상에 맺히는 장면들을 하나하나 폴라로이드 카메라에서 사진들이 쑥쑥 튀어나오듯이 두뇌에 차곡차곡 쌓이게 했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장면들을 하나하나 머릿속에서 불러내서 문서파쇄기에 넣어 돌렸을 것이다.
   
    그러면 글을 쓸 모든 준비가 된 것이다.
   
    레이먼드 카버는 이 문서파쇄기를 열어 하나하나 모자이크 했을 것이다.
    마치 자수를 놓듯이 한땀한땀의 일상이 파쇄된 그 상자 안에서 나와 그의 열정이 시키는대로 이어붙여졌을 것이다.
   
    이렇게 무작위로, 그러나 디테일하게 재배열된 일상은 결국 불특정 다수의 일상을 그대로 모사한 창작품으로 탄생된 것이다.

    여기서 정말 중요한 것은 그가 모사한 것이 사건이 아니라 '일상'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잔잔하다가도 하나같이 어처구니 없다가도, 가끔은 흥미진진하기도 한 것이다.
    그러고보니 우리 일상이 평소에 잔잔하다가도 자주 어처구니 없다가도 가끔은 흥미진진하지 않은가 말이다.

 

    그러다가 책을 손에서 놓고 스르르 잠이 들면 책도 잠이 들고 나도 잠이 든다.
    그 순간 만큼은 이 세상에 두 개의 일상이 존재하더라.
   
    일상미분이 만들어낸 순도높은 일상모사.
    바로 레이먼드 카버가 창조해낸 그의 세계이다.


p.s. : 이 책은 지난 3월 13일 카카오 스토리와 페이스북에 올린 "책읽기 싫은 사람의 투정"에 대해 대학 동기가 추천을 해 준 책이다.
         대학 동기 덕에 또 하나의 세계를 접하고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동기 사랑, 나라 사랑이라고 하나보다.
         은미야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