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끝을 찾아서 - 한 줄기 빛의 인문학

2014. 7. 8. 23:134. 끄저기/끄저기

 

 

 

 

6년전인 2008년, 사우디 아라비아에 3개월 반동안 출장을 간 적이 있다.
사우디 아라비아는 나같은 외국인이 할 거라곤 거의 존재하지 않는 곳이다보니, 가져간 책들을 가지고 공부하면서 블로그에 '별까지의 거리를 재는 방법'이라는 글을  쓰게 되었다.

 

참고 : 별까지의 거리를 재는 방법
         1편 : https://big-crunch.tistory.com/11538040
         2편 : https://big-crunch.tistory.com/11564621
         3편 : https://big-crunch.tistory.com/12345586
        
사실 몇 백만 광년이니, 몇 억 광년이니 하는 말들을 피상적으로만 접해보다가 도대체 이처럼 광대한 거리를 어떻게 재는 건지 궁금하여 공부할겸, 정리도 해볼겸 쓰게 되었는데, 막상 글을 쓰기 시작하다보니, 천문학 역사 전반을 훑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모를 때는 간단해 보였는데, 그 내막을 알고 나니 결국 그 광대한 거리를 측정하는 역사가 천문학 역사 그 자체였던 것이다.         

 

아마 내가 이런 내용을 막연하게나마 사전에 알고 있었더라면 결코 '별까지의 거리는 재는 방법'이라는 글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한마디로 무식한게 용감하다고 한 번 시작해보니 형편없는 글이나마 어쩔 수 없이 끝까지 쓰게 된 것이었다.

 

어쨌든 그 글에 보면 3편에 세페이드 변광성이 나오다가, 표준 촛불에 대한 내용으로 넘어가면서 '찬드라 세카르 한계'가 나오고 I형 초신성에 대한 내용을 가볍게 한 번 다루고 다른 내용으로 넘어가는 부분이 나온다.

 

개론적인 내용을 정리할 때는 그저 한 번 정리하고 지나간 부분이지만, 단순한 정리 그 이면에 얼마나 많은 내용들이 숨어 있는지를 절실히 깨닫게 된 계기가 생겼다.

바로 '우주의 끝을 찾아서'라는 제목의 이 책을 통해서 가능한 일이었다.

 

 

1. 천문학의 역사에 대한 매끈한 구성.

 

나름 과학 교양서적을 읽는다고 자부한다는 입장에서보면, 천문학만큼이나 대중들 사이에 넓게 퍼져 있는 과학도 없는 것 같다.
   
우리 나라는 어디 이름을 내놓을만한 유명한 광학장비 회사는 없지만, 어느 나라 못지 않은 수많은 아마추어 천문가들이 있고, 지금 이시간에도 어딘가에는 한푼두푼 모은 돈으로 지른 비싼 망원경을 하늘로 향하고 있을 관측가들이 있을 것이다.
   
관측지에 나가면 서로를 부를 때 '별님'이라 부른다.
개인적으로 이 책 '우주의 끝을 찾아서'는 이와 같은 열성 별님들에 대한 선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처럼 열광적인 '별님'들이 넘쳐난다면 전문 천문학자들은 그에 걸맞는 교양 과학 서적을 풍성하게 만들어 내는 것이 예의일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러한 예의를 정말이지 '딱 차린' 책이라 할 수 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이 책에서 내가 높이 평가하고 싶은 것은 구성에 있다.
   
자칫 천문학 교양서적을 낸다고 하면 천문학 개괄서 또는 천문학 역사서 정도의 - 천편일률적인 - 컨셉으로 흐를 수도 있었을 것이고 태양, 수, 금, 지, 화, 목, 토, 천, 해....순서로 흐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사실 그런 책이 나온다 하더라도 이상할 게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책은 1990년대 후반에 밝혀진 '가속 팽창하는 우주'의 발견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그 이전의 역사와 그 이후의 전개내용을 적절하게 배분함으로써, 균형감 있으면서도 균형점과 강조점이 정확하게 존재하는 훌륭한 구성을 만들어 냈다.

총 350여 페이지, 4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의 핵심적인 내용들은 3장 "우주 가속팽창의 발견" 부분이다.
   
1장은 본 책에서 다루는 연구원들에 대한 개괄, 우주론의 개괄이 단순히 다뤄지고,

2장에서는 어떻게 우주의 거리를 측정하는지에 대한 내용이 천문학의 역사와 함께 다뤄진다. 
3장은 이 책의 백미로서 Ia형 초신성을 대상으로 1990년대 이뤄진 두 개 프로젝트 팀인 초신성 우주론 프로젝트(Supernova Cosomology Project) 팀과, 높은 적색편이 초신성 탐색 팀(High-Z Supernova Search Team) 간에 이루어진 Ia형 초신성의 밝기와 거리를 밝혀나가는 모습이 매우 세부적이면서도 흥미롭게 진행된다.
마지막으로 4장에서는 3장에서 밝혀진 내용에 대한 검증과정, 그리고 빅뱅이론과 인플레이션 이론이 증명되는 과정과 이를 통해 가속팽창하는 우주가 사실임을 증명하는 또다른 내용들이 가볍게 다뤄지면서 책이 마무리되고 있다.
   
천문학 개괄서로서 이처럼 균형감 있으면서도 매끄러운 구성이 가능했다는 것에 정말 놀라움을 금치 못할 뿐이다.
또한 이러한 구성에 걸맞는 맛깔나는 글을 써내신 이강환 선생님의 글솜씨에도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새삼 당분간은 이 분의 책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 Ia형 초신성을 추적하여 우주의 비밀을 밝혀내다. 

 

앞서도 잠깐 언급했듯 이 책의 백미는 3장 '우주 가속 팽창의 발견' 부분이다.
  
초신성 우주론 프로젝트 팀과 , 높은 적색편이 초신성 탐색 팀이 멀리 떨어진 Ia형 초신성을 발견하고 그 거리를 밝혀 나가는 부분은 내용 자체도 자체이거니와 편린과 같은 관측 자료와 연구의 누적이 새로운 발견의 토대가 되는 과학의 위업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부분이다. 
  
Ia형 초식성은 백색왜성으로 식어버린 별에 동반성으로부터 물질이 유입되면서 원자 내의 전자가 축퇴(Degeneracy)된 상태로 버틸 수 있는 중력 한계선인 찬드라 세카르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 폭발하게 되는 초신성이다.
  
그 폭발 기재가 단순하고, 폭발되는 시점의 질량이 일정한만큼 Ia형 초신성의 절대밝기는 항상 동일할 거라는 생각이 20세기 초중반, 그리고 나와 같은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 지식의 전부이다.
  
그러나 이 사건을 세부적으로 맞닥뜨려야 하는 과학자들에게 이는 순진한 생각일 뿐이다.
  
워낙에 멀리 떨어져 있는 극미량의 빛을 대상으로 적색편이를 분석하고, 분광 스펙트럼을 추출하는 일의 지난함은 차치하고서라도 실제 Ia형 초신성의 밝기는 동일하지 않을 뿐더러, 밝기를 가늠하는데에는 여러가지 변수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같은 Ia 형 초신성이라도 어떤 초신성은 성간 먼지에 가려져 어둡게 보일 수도 있다.
따라서 이런 경우 그 초신성이 원래 어두운 것인지 성간 먼지에 가려져서 어두워진 것인지를 구분해내야 하는 과제가 추가되는 것이다.

초기 우주의 초신성과 근래의 초신성의 구성 성분이 다를 수 있다는 의심도 Ia형 초신성의 밝기를 유추하는데 걸림돌이다. 

   

그러나 우주를 규명하려는 과학자들의 노력은 이러한 모든 걸림돌들을 하나하나 뛰어넘으며 그 과정에서 걸림돌들은 오히려 탄탄하고 단순한 이론을 만들어내는 계기가 된다.    

하기 그래프는 이 책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그래프이며 가장 인상적인 그래프이다. 

 

 

   
높은 적색편이 초신성 탐색 팀의 팀원이자, 나중에 노벨상을 수상하게 되는 애덤 리스(Adam Riess)에 의해 1996년 박사논문으로 정립된 이 그래프는 초신성의 최대 밝기와 15일간 어두워진 정도의 관계를 도식화한 그래프와 특정대역의 파장만을 통과시키는 필터를 사용하여 걸러낸 밝기 차를 도식화한 그래프로 구성되어 있다.
  
초신성의 최대 밝기와 어두워지는 속도간에 연관관계에 대해서는 이미 1977년 러시아 천문학자 츠코프스키에 의해 의견이 개진된 바가 있거니와 높은 적색편이 초신성 탐색 팀의 팀원인 마크 필립스가 실제 관측 데이터를 근거로 15일간의 밝기차로 개량한 데이터를 근거로 한 첫 번째 그래프의 효용성은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이다.
  
초신성은 그 시기와 장소가 예측되지 않는 우주적 사건이고, 발견한다해도 짧은 시일 내에 사그러들기 때문에 폭발하는 초신성을 찾는 것은 말그대로 '하늘의 별따기'인 사건이다.
그러나 이 그래프로 인해 발견된 초신성이 이미 최대 밝기가 지났다 하더라도,  빛이 사그라드는 양상을 이 그래프에 대입하면 실재 그 초신성의 절대 밝기가 어떠했는지를 추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래 3 개의 그래프는 초신성의 빛이 우주먼지에 가려질 경우 어둡게 보일 수밖에 없는 초신성의 원래 밝기를 보정해 주는 그래프이다.
매우 밝은 초신성이라면 B필터에서 통과된 빛의 양이 많을 것이고, I필터에서 통과된 빛의 양은 훨씬 적을 것이다.
이는 B, V, R, I 필터 순으로 각 필터에서 측정된 밝기의 차가 적은 값으로나오면 나올수록(별의 밝기 등급은 적을 수록 밝다) 그 초신성의 원래 밝기는 더 밝다는 것을 의미한다. 

초신성의 빛이 우주먼지에 가려져 원래 밝기보다 어둡게 보이는 '성간소광'효과에 의한 오류를 제거하는 이 그래프를 통해 관측자는 특정 초신성을 발견할 경우 이 그래프에 분광분석 자료를 대입하여 가장 유사한 패턴을 찾음으로써 해당 초신성의 절대 밝기를 찾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초신성의 밝기를 규명할 수 있는 방법이 다듬어졌다면, 추가로 필요한 것은 유의미한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는 초신성 데이터를 얼마나 많이 확보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여기서는 '초신성 우주론 프로젝트 팀의 솔 펄머터의 아이디어가 빛을 발한다. 
한번에 관측하는 은하의 수가 많다면, 그 많은 은하에서 반드시 초신성이 하나쯤은 발견될 것이라는 아이디어가 그것이다. 

예를 들어 한번에 4만~7만개의 은하를 관측할 수 있다면 적어도 5~6개의 초신성이 있을 것이며, Ia형 초신성의 경우 폭발 후 최대 밝기에 이르는 시간이 약 20일이므로 20일 간격으로 하늘을 한 번 훑으며 여러 은하를 촬영하면 20일 사이에 반드시 밝기 변화를 나타내는 은하가 있을 것이고 바로 그 은하가 초신성 폭발이 발생한 은하라는 것이다.    

실제 솔 펄머터의 계획은 멋지게 성공하였고, 오늘날 이 방법은 초신성을 발견하는 보편적인 방법이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Ia형 초신성의 관측 데이터가 누적되고, 초신성의 밝기에 대한 규명이 진행되면서 멀리 있는 초신성들이 예상되는 밝기보다 어두운 관측 결과가 도출되었다. 

이미 초신성의 밝기와 관련된 모든 오차 요소를 식별해낸 높은 적색편이 초신성 탐색 팀은  결국 이 현상의 원인을 '우주가 팽창하기 때문'이라고 결론짓고, 1998년 2월 18일 자신들의 역사적인 연구 결과를 발표하게 된다.
  
우주는 50억년 전부터 가속 팽창을 시작했다.
이는 20세기 초, 상대성 이론에 의해 수축하는 우주로 도출된 연구결과에 못마땅해한 아인슈타인이 정적인 우주를 유지시키기 위해 끼워넣은 우주상수가 천문학의 전면으로 다시 등장하는 일대 사건이었으며, 우주밀도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암흑 에너지가 우주론의 최대 테마로 떠오르는 역사적인 현장이었다.
  
비록 초신성 우주론 프로젝트 팀의 연구 결과는 높은 적색편이 초신성 탐색 팀의 연구 결과보다 9개월여 늦게 발표되긴 했지만, 이 두 팀의 선의의 경쟁으로 같은 결과를 도출해 내고, 그 근거 데이터를 풍부하게 하는데 일조함으로써 초신성 우주론 프로젝트팀의 솔 펄머터와, 높은 적색편이 초신성 탐색 팀의 브라이언 슈및, 애덤 리스는 2011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게 된다. 
 

3. 빛의 인문학.

 

천문학, 우주론 관련 자료들을 접하면 늘 느끼는 거지만, 신의 영역을 향해 나아가는 천재들의 열정과 노력, 그리고 기발한 아이디어는 나로 하여금 깊은 경외감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이러한 경외감은 단순히 과학자들의 천재성에 대한 것만은 아니다.
  
나는 이 책에서 3장에 핵심 내용이 있다고 말했고, 그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2장에 나열되어 있는 천문학의 역사, 즉, Ia형 초신성의 밝기 측정을 위해 고민하는 20세기 후반에 다다르기까지 다양한 과학자들이 만들어낸 한 계단 한 계단 디딤돌과 같은 연구 성과와 그 성과를 이뤄내기까지 겪어야 했던 초인적인 인내심과 노력의 장면들 역시 그에 못지 않은 경외심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19세기 말 ~ 20세기 초,  별 빛과 스펙트럼을 모으고 이를 분석하는데 투입된 여성 노동자들, 즉, 하버드의 '컴퓨터(계산기)'들에 대한 이야기는 대단히 인상깊었다.
  
헤르츠스프룽 러셀도의 분광 스펙트럼 순서인  O, B, A, F, G, K, M 체계를 정립한 애니 캐넌, 변광성의 밝기와 주기 관계를 처음으로 보여줌으로써, 천체 거리 측정의 한계선이었던 기선의 한계를 깨뜨리는데  이바지한 헨리에타 레빗. 
  
예전에 읽은 책에서는 그냥 한 줄로 지나가고 말았던 이들의 업적에 대해 보다 상세한 내용과 사진을 보며 현대 천문학이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수고와 노력들이 있었는지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태양의 스펙트럼을 완전히 새로운 관점에서 분석함으로써, 태양이 사실은 90%의 수소와 10%의 헬륨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밝혀낸 여류 천문학자 세실리아 페인의 이야기 또한 천문학의 역사만큼이나 드라마틱한 이야기였다.

 

보수적인 남자 과학자들 사이에서 의도적인 방해를 받으면서도 자신의 업적을 이루고 하버드 대학 최초의 여성 종신교수 및 최초의 여성 학장이 된 세실리아 페인은 자신이 규명한 별만큼이나 찬란한 별이라 할 수 있다.

   
천문학에 따로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라도 중세에는 하늘의 현상에 대한 진리를 말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천문학은 이러한 역사가 있기에 단순히 하늘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이곳 인간들의 이야기라 생각한다.

 

누구나 자신의 존재를 고민하고, 짧게는 자신과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해보곤 하거니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과 공간을 바라보며, 이를 알고자 하는 노력은 그 자체가 인간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인문학 중의 인문학이 아니겠는가?
  
그곳은 짙은 어두움이 있기에 무섭고 쓸쓸하기도 하지만, 그 안에 앉아 있으면 별이 밝게 빛난다는 것을 알게 되기에 아무도 쉽게 범접못할 아름다움이 숨어있는 것이다.
  

 

사실 이 책은 천문학에 대해서 어느정도 교양서적들을 접해보지 않은 사람이 읽기에는 결코 만만치는 않은 책이다.

일전에 브라이언 그린의 책에 대해 말할 때, 수학적으로 규명되는 세계를 하나하나 말로 풀어낸 그 역량에 대해 놀라움을 표시한 바가 있다.
물론 이강환 선생님도 많은 부분을 쉽게 설명해주긴 했지만, 수식의 등장을 아예 없애기에는 한계가 있었던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수식들을 주석으로 빼고 말로 좀더 많은 것을 설명하면서 현재 분량보다 3분의 1쯤 더 늘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능하면 예시도, 사진도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않을까,

좀더 다듬으면 중학생 정도 학생들에게 읽힐 수 있을만한 훌륭한 토종 천문학 서적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본 서평을 쓰기 위해 이 책을 총 세 번 읽어야 했다.
이해하지 못한 부분도 많았고, 정리하고 싶은 부분도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 시간동안 너무나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