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차도 - 세월호 아이들을 만나러 가는 길.

2017. 1. 29. 22:151. 별과 하늘의 이야기/하늘앓이 - 별지기의 이야기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는 동거차도와 병풍도 사이 바다에서 침몰했습니다.

지금 그곳에는 세월호의 인양작업이 진행되고 있고, 동거차도 산등성이에는 유가족 분들이 교대로 인양작업을 감시하고 있습니다.

2017년 1월 25일부터 26일 양일간 시간을 내어 동거차도에 다녀왔습니다.

어마어마한 슬픔을 몸으로 견뎌내시는 분들께 어떤 위로를 드린다 한들 도움이 되지는 못하겠지만, 최소한 이 비극을 잊지 않고 기억하려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서울에서 25일 새벽 2시 반에 출발하여, 진도대교 앞에서 아침식사를 한 후, 아침 7시 30분 경 진도 팽목항에 도착하였습니다.

 

사진 1>  여전히 기다림의 아픔이 남아 있는 진도 팽목항 풍경

 

 

사진 2>  팽목항 입구에는 미수습자 가족분들의 임시 숙소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사진 3>  세월호에는 아직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아홉 분이 남아 있습니다.  미수습자 가족분들에게 천일의 시간은 고스란히 아픔과 기다림의 시간이 되고 있을 겁니다.

 

 

 

사진 4> 세월호 미수습자 분들 :  조은화 학생, 허다윤 학생, 남현철 학생, 박영인 학생,  고창석 선생님, 양승진 선생님, 권재근 씨와 권혁규 어린이, 이영숙 씨.  새해에는 꼭 가족 품으로 돌아오시게 되길 간절히 기원드립니다.

 

 

 

사진 5>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 그런지 팽목분향소는 쓸쓸하게만 보입니다.

 

 

 

사진 6> 팽목분향소

 

문을 열고 들어가 아이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만나봤습니다.

세월호 희생자 분들을 위해서 마음껏 울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길을 나섰습니다.
그것이 같은 공간을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예의라 생각합니다.

 

 

사진 7> 과자와 음료수, 어제 갖다놓은 듯 싱싱하게 보이는 딸기를 보니 다시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사진 8>

 

 

 

미수습자 분들에게는 아직 돌아오지 못한 가족을 만날 수 있게 되는 것이 희망일 것입니다.
유가족이 되신 분들에게는 사건의 진상이 밝혀 지는 것이 희망이겠죠.
잔인한 희망이지만 그 희망이라도 이 분들께는 너무나 간절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사진 9>  분향소 앞에 만들어져 있는 십자가의 황량한 풍경이 마음을 더더욱 쓰리게 만들고 있습니다.

 

 

 

 

 

배 시간이 다가와 매표소가 있는 진도항 대합실로 갔습니다.

 

 

 

사진 10> 진도항대합실,  팽목항에서는 진도군 조도면(조도지구)에 속하는 여러 섬들을 왕래하는 배를 탈 수 있습니다.

 

 

 

사진 11> 조도지구

 


동거차도는 조도면에서 비교적 외곽에 자리잡고 있는 거차군도의 동쪽 섬입니다.
세월호 침몰지점이 노란색 리본으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팽목항에서 직선 거리로 32Km입니다.
팽목항에서 출발하는 배는 조도면의 이런저런 섬들을 거쳐서 들어가기 때문에 편도로 약 2시간 30분이 소요됩니다.

 

 

 

사진 12, 13> 동절기와 하절기의 운항 시간표

 

 

동거차도에 들어가는 배는 한림페리 3호이며 동절기의 경우 팽목항에서 09시 30분에 출발합니다.
동거차도까지의 승선료는 성인 1인 15,000원입니다.

 

사진 14> 차량운임표

 

 

동거차도는 작은 섬이긴 했지만 차가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제 경우 동거차도 동육리 이장님께 미리 연락하여 민박을 확보해 놓긴 했지만, 동거차도 내에서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몰라 차량 안에서 자야 할 수도 있을 가능성을 생각하여 렌트해간 경차를 함께 싣고 갔습니다.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동거차도로 들어가는 배는 조도면의 여러 섬들 간의 교통을 담당하기 때문에 승선자와 승선차량은 항상 꽉 찬 상태로 운항이 되고 있는 듯 했습니다.

날씨가 좋지 않아 파고가 2.5미터 이상인 경우는 운항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항상 배는 운항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출항여부는 주식회사 에이치엘 해운에 확인을 하면 됩니다.
(전화번호 061-544-0833, 홈페이지 : http://hl.haewoon.co.kr/)


예정대로 9시 30분에 출항한 배는 조도를 비롯한 몇몇 섬을 경유하며 동거차도로 향했습니다.

관매도를 통과할 때 사람과 차들은 거의다 빠졌고, 이 때부터 제법 넓은 바다로 나가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파도가 확실히 강해지더군요.

동거차도에 가던 중 4.16 가족협의회 한 분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무턱대고 낮선 사람이 찾아가는 게 예의는 아닐 듯 하여, 4.16가족협의회에 개인적인 관심으로 동거차도 세월호 인양감시탑에 갈 것이라는 얘기를 해 놓은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전화를 통해 온 연락은 뜻 밖이었습니다.

중국에서도 설 연휴를 보내야 하기 때문에 인양작업을 하고 있는 상하이 샐비지의 바지선이 철수를 한 상태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동거차도 세월호 감시탑에 계시는 유가족 분들도 철수를 하여 오늘 동거차도 세월호 인양 감시초소에 아무도 없을 것이라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작업을 하는 인양바지선을 볼 수도, 감시초소에서 유가족 분들도 만나뵙지도 못할 거라는 말에 약간 낙담을 하긴 했지만, 어렵게 찾아온 곳이기 때문에 저는 예정대로 오늘 입도하여 내일 나오겠노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게 2시간 반이 지난 25일 12시경 동거차도에 도착했습니다.

 

사진 15>  집을 나선지 10시간 만에 도착한 동거차도의 고즈넉한 풍경,  가운데에서 약간 왼쪽 능선에 세월호 인양감시초소의 천막이 보입니다.

 

 

동거차도에는 동막과 동육이라는 두 개의 마을이 있습니다.
팽목항에서 출발한 배는 동육리 쪽의 항구로 접안합니다.

항구에서 남쪽 산의 능선을 바라보면 세월호 인양 감시초소가 눈에 들어옵니다.

동거차도에는 정식으로 민박 영업을 하는 곳은 없습니다.
다만 가정집에 민박처럼 묵을 수는 있으며 이를 알아보려면 동육리 이장님께 의뢰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비용은 대체로 하루에 5만원 선입니다.

사진 16>  먼길 함께 해준 나의 완소 렌트카.

 

 

 

이장님께서 끓여주신 떡국을 먹고 세월호 인양 감시초소로 향했습니다.

 

 

사진 17> 세월호 인양 감시초소로 가기 위해서는 우선  동거차 보건 진료소를 향해 가는 골목에 접어든 후  보건소 이정표에서 직진하지 않고 왼쪽길로 꺽어들어가야 합니다.

 

 

 

사진 18>  길이 끝나는 지점에 통나무 집이 있습니다.

 

 

이 통나무 집은 외지인께서 지으신 별장이라고 합니다.
또한 이 집의 주인께서 병풍도를 구입하셨다고 합니다.

어떤 내막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행히도 세월호 인양 감시초소의 전기들은 이 집에서 제공한 전선을 끌어다 쓰고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통나무 집의 오른쪽으로 돌아들어가면 야트막한 산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사진 19>  야트막한 산길로 접어들면서부터는 노란색 리본을 잘 따라가야 합니다.

 

 

 

사진 20>  약 50미터 길이의 울창한 대나무 숲길을 지나갑니다.

 

 

 

사진 21>  대나무숲을 나와 뒤를 돌아보면 멀리 동육리의 풍광이 시원하고 아름답게 눈에 들어옵니다.

 

 

 

사진 22>  지금부터 약간 경사가 급해집니다.

 

 

 

사진 23>  경사가 급한 산길을 7~8분 정도 따라올라갑니다.

 

 

 

 

사진 24>  숨이 턱에 차오를 무렵 이렇게 감시초소의 텐트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사진 25> 그 바다 풍경

 

 

능선에 오르자 멀리 병풍도가 보입니다.
그 사이 중간 지점이 바로 세월호가 잠겨 있는 곳입니다.
바지선이 있다면 좀더 위치를 특정하기가 쉬웠을텐데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밤이 되니 세월호 침몰 지점에 밝은 부표등이 켜지더군요.

턱밑까지 치고 올라온 숨결이 가라앉기도 전에 눈물이 차오릅니다.
너무나도 맑은 하늘, 잔인하리만큼 잔잔한 바다와 사방을 에워싸고 있는 고요 때문에 슬픔은 더 진하게 느껴졌습니다.

 

사진 26> 세월호인양감시초소 풍경

 

 

세월호 감시초소에는 모두 4개의 가건물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하얀색의 돔으로 지어진 건물은 숙소로 사용되는 건물인 듯 보였으며 삼각대가 세워져 있는 파란색 천막 가건물은 감시 카메라를 돌리는 건물임을 짐작케 해 주었습니다.
그 오른쪽 뒤로 보이는 작은 천막은 임시 화장실입니다.

 

 

사진 27>

 

 

세월호 유족분들이 계시지 않아 뭔가 함부로 손을 대기가 조심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일단 작은 돔 형 텐트의 문을 열어 간단히 짐을 풀어놓고 안에 있는 의자를 하나 꺼내 앉아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렇게 고요한 바다를 눈과 가슴에 담아냈습니다.


저는 별지기입니다.
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일을 하고 있죠.

며칠 전 한국아마추어천문학회 소속의 부회장님 한 분께서 세월호를 기억하기 위한 천체를 지정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주신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 의견이 정말 좋은 의견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매번 비극적인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우리는 그 비극과 아픔을 덮어두기에만 급급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사고는 반복되었고, 급기야는 어린 학생들이 이렇게 물에 잠겨들어가는데도 전혀 구조를 하지 못한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사람이 사회를 이루고 공동체를 이루고, 국가를 이루는 이유가 뭘까요?

바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기 위해, 안전하게 가족을 이루고 아이들을 키워내서,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엄청난 사고로 그 행복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아이들을 잃었습니다.

구조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만으로도 한반도 남쪽에 살고 있는 공동체는 이미 국가를 이루고 살아야 하는 이유를 상실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월호의 아픔을 이야기하는 것은 정치로 매도당했고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이들의 아픔은 조롱과 비난을 당해야 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이어졌습니다.

저 영겁의 하늘에 세월호 사건을 기억하는 징표를 남기는 것은 바로 우리가 맞닥뜨려야 했던 비극은 물론 너무나 추악하기만 했던 우리 공동체의 일그러진 자화상도 함께 기억하는 촉매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아픔과 그 와중에 바닥까지 추락해버린 우리의 모습을 똑똑히 기억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 야만의 시대에서 결코 한 걸음도 헤어나가지 못할 것입니다.

이러한 작업을 여러 별지기들과 함께 하기 위해 페이스북 상에 '세월호 아이들을 기억하는 천체선정'을 위한 오픈 그룹을 만들고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https://www.facebook.com/groups/353633171678974/?ref=bookmarks)

이를 진행하는 와중에 어떤 별지기 단체에서는 저질스러운 정치 논쟁이 있었고 어떤 별지기 단체로부터는 이 활동의 정보 공유조차 거절당하기도 했습니다.

아픔이 없진 않았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결국 이 모든 모습들 그대로가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모습일 테니까요.

언젠간 우리 모두가 이 엄청난 비극 앞에 얼마나 비겁했었는지를 알 수 있는 날이 올 것입니다.

안타깝게 사그러져간 아이들에게 몇몇 뜻있는 별지기들이 시작한 이 행동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찬란한 별빛 아래서 아이들에게 약속하고 싶었죠.
꼭 이뤄내고야 말겠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너희들을 절대 잊지 않는 계기로 만들겠다고 말입니다.

아이들이 어떤 대답을 해 주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밤 늦게까지 꾸역꾸역 밀려오던 구름들이 어느 순간 다 사라지고 찬란한 별빛이 이 아픔의 바다 위를 총총히 채워주었습니다.

 

 

동영상> 동거차도의 별들 

 

 

 

 

 

 

사진 28> 감시초소의 밤

 

 

깊은 밤이지만, 저 멀리 배들도, 하늘의 비행기들도, 하늘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별들도 모두 분주하기만 합니다.
우리 아이들도 저 하늘 위에서 별들만큼이나 찬란하고 아름답게 웃고 있기를 바래봅니다.

 

사진 29> 동거차도의 일출

 

 

언제나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은 것처럼 이곳 동거차도에도 새로운 아침이 시작됩니다.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미수습자들이 하루속히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하루빨리 진상이 낱낱히 밝혀져 책임규명과 처벌이 확실하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 공동체에 함께하고 있는 모든 이들이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아픔을 뱉어내고 마음껏 한 번 울어보는 것입니다.
다시는 이러한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적, 법적 장치를 확실하게 갖추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두가 이 일을 영원히 잊지 않는 것입니다.

 

 

 

사진 32> 떠나는 길

 

 

짧은 여정을 마치고 동거차도를 떠납니다만, 다시 또 오게 될 것 같습니다.
그 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희망을 갖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이후 이야기 

- 2018년 동거차도 방문기

- NGC 4631을 아시나요? - 소설책 출간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