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이 모자라요 - 2017년 쌍둥이자리 별비 알현기.

2017. 12. 19. 22:451. 별과 하늘의 이야기/하늘앓이 - 별지기의 이야기들

3년 전 12월 14일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때 쌍둥이자리 별비가 내린다고 호들갑 떠는 언론이 있었고
진짜 멋진 별비 사진을 찍겠다고 호들갑 떠는 제가 있었죠.


그날도 날씨가 꽤 추웠습니다만
저는 당당히 장비를 챙겨들고 강화도 강서중학교로 향했습니다.


그날 찍은 사진이 이 사진입니다. 
뭔가 하나 삐죽....^^;;;;



사진 1> 2014년 12월 14일 강화도 강서중학교에서 촬영한 쌍둥이자리 별비(?)


사실 하늘의 풍경은 하늘이 내어주는 것이기에 

딱히 이게 제가 잘나고 못나고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제 자세였죠.


저는 동지가 다가오는 그 추운날, 

무려 강화도에까지 가서 새벽 3시까지 있었기 때문에 
별비를 알현하기 위해 할 바를 다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며칠이 지난 2014년 12월 28일 APOD에서 발표한 이 사진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Image Credit & Copyright: Jia Hao

사진 2>출처 : https://apod.nasa.gov/apod/ap141227.html


사진이 아름다운 것에 대해서는 당연히 할 말이 없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형편없는 제 사진 실력과는 비교조차 할 수도 없죠. 


제 뒤통수를 강하게 때린 것은 바로 자세였습니다.


이 사진을 찍으신 지아 하오(Jia Hao)씨는 쌍둥이자리 별비를 알현하기 위해 영하 34도의 백두산 정상을 향해 올라가셨죠.


고작 영하 몇 도의 강화도에 차를 딸랑딸랑 몰고가서
새벽 3시까지 컵라면 끓여먹어가며 자리에 노닥노닥 앉아 있다가 
할 일 다했다고 생각한 저 자신이 심하게 한심스럽고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3년이 지났습니다.


3년마다 돌아오는 황금월령의 쌍둥이자리 별비가 또 다가온 지금
불현듯 그 때가 생각났습니다.


저는 여전히 직장을 다니며 취미로 별을 보고 있어요.

제가 과연 3년 전보다 나아진게 있을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전혀 나아진게 없었습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그저 시간이 주어지는대로 별보러 다니는게 전부일 뿐이죠.


갑자기 3년 전과는 달라지고 싶다는 오기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여전히 백두산 정상에 올라가지는 못하지만 할 수 있는한 하늘에 제 정성을 보여드리고 싶었죠.


때마침 올 7월, 
처음 가본 황매산의 풍경이 떠올랐습니다.



사진 3> 지난 7월 황매산 별풍경.

         한국아마추어천문학회 경남지부 연수를 구경하러 갔다가 만난 경남 산청 황매산의 하늘은 너무나도 아름다웠습니다.



그곳이라면 거리도 적당히 멀고, 날씨가 무지하게 추워주기만 한다면, 
별비를 알현하는 제 자세가 조금은 겸손해지고, 정성들여 보이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14일, 15일 덜컥 회사에 휴가를 냈죠. 
어찌 되거나 말거나...^^;;;


하지만 주초반 내내 춥고 맑았던 하늘은 주말로 갈수록 점점 흐려지고, 기온도 차츰 올라갔습니다.

한 주 내내 많이 초조했죠.

솔직히 날씨는 안 맑아도 좋았어요.
제발 이 추위만 유지되게 해 달라고 빌었죠.


3년 전에 비해 내가 손톱만큼은 더 별지기가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꾸물꾸물 어중간한 날씨가 시작되던 12월 14일, 황매산을 향했습니다.


사진 5> 2017년 12월 14일 17시 경, 황매산 정상 주차장에서 바라본 지리산 천왕봉 풍경.


하늘에는 구름이 많았습니다. 
별로 춥지도 않았고요.


예상보다 늦게 도착하여 해가 떨어질때까지 시간은 한 시간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이 날은 이게 패착이었어요.....좀더 일찍 도착했어야 했는데...ㅜㅜ;)

서둘러 사진을 찍을만한 장소를 찾아봤지만 시간이 많이 부족했습니다.


지리산 자락이 이어지는 산청은 제가 평소 별보러 다니던 아홉사리재보다 산이 깊어서 그런지 
덩치가 한 뼘은 더 큰 고라니들이 많이 뛰어다녔습니다.

그 친구들이 '제 뭐꼬?' 하는 눈으로 저를 바라보곤 하더군요.


SNS에 황매산에 와 있다는 글을 남겼습니다.

고맙게도 많은 친구님들이 응원을 해 주시더군요.

그리고 거짓말처럼 서쪽 하늘이 열리기 시작하면서 겨울은하수가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서둘러 황매산 제단 옆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초점을 맞췄습니다.
주차장에는 제 망원경 '첫눈이'를 설치하고 
오롯이 그 하늘을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사진 6> 구름 사이로 선명하게 빛을 떨구는 쌍둥이자리 별비.


새벽 2시까지도 북동남쪽은 여전히 구름에 잠겨 있었지만 생각보다 구름은 두껍지 않았고
커다란 불덩이 별똥별이 구름을 찢어내며 오늘 밤 기대해도 좋다는 사인을 주었습니다.


저도 왠지 기대가 되기 시작했죠.


쓸쓸한 황매산 정상 주차장은 밤이 깊어갈수록 칼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새벽 3시가 넘어서자 하늘이 완전히 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하늘이 그곳에 펼쳐지고 본격적으로 별비가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사진 7~11> 황매산에서 맞은 쌍둥이자리별비


정말 죄송하게도 저는 여전히 사진을 잘 찍지 못합니다.

그 순간을 이렇게밖에 전해 드리지 못하네요.....ㅜㅜ;;;


하지만 그 곳에 있는 저는 너무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떠올랐습니다.


언제 이룰지모를 꿈을 향해 작업실에서 하루 종일 글을 쓰며 젊음을 글과 맞바꿔가고 있는 안주인마님이 생각났구요.
황매산에 혼자 있는 저를 응원해 주는 별친구님들도 생각났습니다. 


올해 처음 별을 봤던 동거차도에서 지금 여기 황매산까지
1년 동안 별을 매개로 만난 여러 소중한 인연들이 생각났습니다.


여기 저기 떨어지는 별비를 보며 정말 많은 소원을 빌었습니다. 
소중한 인연을 맺은 분들의 소원도 들어달라고 빌었어요.

그렇게 소원이 바닥났습니다!!!


하지만 하늘에서는 여전히 별똥별이 내렸고
나중에 저는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라는 말만을 반복해야 했습니다.


새벽 다섯시, 

월령 27일의 달이 서쪽 구름 위로 떠오르고 한 시간 여가 지나자 사위가 밝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사진 12> 황매산의 새벽을 아름답게 장식해주는 화성과 목성과 달님.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물어봤습니다. 

제가 3년전보다 조금은 더 나아졌나요?
손톱 하나 만큼은 나아졌나요?


밤새 밤하늘을 가득 채웠던 그 별들 주위에도 
저처럼 이렇게 밤새 별과 함께 있다가 자신의 태양을 맞는 이들이 있을 겁니다.
그 분들도 그 전보다 나아졌나요?


물론 대답은 듣지 못했지만, 분명한 거 하나는 이거였습니다.

제가 3년 전보다 훨씬 뿌듯한 아침을 맞고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내년에는 좀더 나아진 별지기가 되게 해 주세요.
 그리고 언젠가는 별비가 퍼져나가듯이 내리는 장관도 사진에 담을 수 있게 해 주세요. 
 제가 그런 자세를 갖춰야만 만날 수 있는 그 시공간에 반드시 서 있겠습니다." 



사진 13> 아침에 별아띠천문대에 여장을 풀었습니다. 
           여기저기서 뜯어낸, 밤새 나를 따뜻하게 해 준 핫팩들입니다. ^^

길 나선 별지기에게 따뜻한 밥과 잠자리를 허락해주신 김도현 별아띠천문대장님과 들국화 선생님께 무한 감사를 드립니다.


별지기가 된다는 건 참으로 멋진 일입니다! ^^




동영상> 2017년 12월 14일, 경남 산청 황매산의 밤하늘

         BGM : 신카이 마코토, 별의 목소리(2002)OST 중 '아가르타의 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