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곰자리(URSA MAJOR) 신화

2021. 2. 26. 13:112. 별자리 이야기/별자리 신화모음

1. 칼리스토와 아르카스

   출처 : 변신 이야기1 p82 ~ 90, 오비디우스 저, 이윤기 옮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 

 

칼리스토를 범한 유피테르

 

신들의 아버지이자 전능한 신인 유피테르는, 파에톤으로 인한 화변으로 혹 성벽에 상한 데가 없는지 알아보려고 천궁을 두루 돌아다녔다. 

천궁은 이미 말짱하게 고쳐져 있었다. 천궁이 여전히 난공불락의 철옹성임을 확인한 유피테르는 이번에는 인간 세상을 살피러 하계로 내려갔다. 

그가 가장 근심한 것은, 평소에 사랑하던 땅 아르카디아였다. 

아르카디아로 내려간 그는 그때까지도 흐르지 못하는 강은 다시 흐르게 하고, 말라버린 샘은 다시 물로 가득 채웠다. 또 맨살이 드러난 대지는 풀과 나무로 옷을 입히고 황무지가 된 땅은 다시 푸른 숲이 되게 했다.

이렇게 분주하게 다니며 일을 하던 그가, 아르카디아의 한 처녀를 보고는 그만 그 자리에 우뚝 서버렸다. 

정념의 불길이 일어, 골수에까지 옮겨붙은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 처녀는, 털실이나 감고 몸매무새나 매만지며 시간을 보내는 여느 처녀가 아니라, 장신구로 옷을 단정하게 여미고 흰 댕기로 머리를 질끈 동여맨 채, 창 아니면 활을 들고 다니는, 사냥의 여신 디아나의 시종인 요정이었다. 

마이날로스 산을 누비던 요정들 가운데 이 처녀만큼, 이 심술궂은 여신의 사랑을 받는 요정도 없었다. 그러나 이 사랑은 오래가지 못했다. 

태양이 황도를 지날 즈음 이 처녀는, 도끼 한 번 받아본 적이 없는 나무로 울창한 숲속으로 들어갔다. 처녀는 어깨에 맨 화살통과 활을 내려놓고는 화살통을 베개삼아 베고 잔디에 누웠다. 

유피테르는, 무방비 상태인 데다 지쳐 있는 듯한 이 처녀를 보고는 중얼거렸다.

「여기에서 일을 벌이면 내 아내가 무슨 수로 알아내랴만, 알아낸들 어떠냐. 저 정도면 취하고 나서 아내의 잔소리쯤은 들을 만하지 않은가」

유피테르는 곧 딸 디아나로 둔갑하여 처녀에게 접근하고는 물었다.

「너는 어디에서 사냥을 했더냐? 어느 능선에서 사냥을 했더냐?」

처녀가 잔디에서 일어나 몸매무새를 가다듬으면서 대답했다.

「어서 오소서, 귀하신 여신이시여. 저희들 보기에는 유피테르보다 귀하신 여신이시여...... 여신께서 저희들에게는 유피테르보다 귀하신 것이 사실인데 유피테르 신께서 들으시면 어때요?」

잠시 디아나 여신의 모습을 빈 유피테르는 이 말을 듣고 웃었다. 

그는, 유피테르로서 받는 사랑보다, 디아나로 둔갑한 유피테르로서 받는 사랑이 더 큰 데 만족하면서 이 처녀에게 입을 맞추었다. 

그러나 이 입맞춤은, 처녀신이 시종인 요정에게 할 법한 그런 입맞춤이 아니었다. 
처녀는 이상하게 여기면서도 숲 속에서 있었던 사냥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나 디아나로 둔갑한 유피테르는 본색을 드러내었다. 

처녀는 여자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저항했다. 

유노가 아무리 질투심이 강한 여신이라고 하더라도 이 장면을 직접 보았더라면 처녀를 잔혹하게 벌하지는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처녀의 몸으로 여느 남정네 이기기도 어려운 터에, 무슨 수로 신들의 지배자인 이 유피테르를 이길 수 있으랴. 

처녀는 꺾였고, 유피테르는 뜻 이루고는 천계로 올라가버렸다. 

요정은, 자기가 당하는 꼴을 목격한 그 숲이 싫어서 견딜 수 없어 그곳을 떠났다. 

얼마나 싫었으면 활과 화살통 가져가는 것도 잊고 그곳을 떠났을까......

사냥을 끝내고 느긋한 마음으로 시종 요정들과 함께 마이날로스 산 능선을 오르던 디아나 여신은, 유피테르에게 당하고 온 이 아르카디아의 요정을 보고는 그 이름을 불러 가까이 오게 했다. 

아르카디아의 요정은 디아나 여신의 목소리를 듣고는, 가짜 디아나, 말하자면 디아나로 둔갑한 유피테르이거니 여기고 도망쳤다. 그러나 멀리는 도망가지 않았다. 

디아나 여신 곁에 요정들이 여럿 서 있는 걸 보고는 그제서야 진짜 디아나 여신인 것을 알고 가까이 다가간 것이다. 

하지만 죄를 짓고 태연한 낯색을 하고 있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아르카디아 요정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뿐만 아니었다. 이 요정은, 여느 때와는 달리 디아나 여신 앞으로 나서지도 못했고, 선두에서 요정들을 선도하지도 못하는 채 그저 다소곳이 서 있기만 했다. 

그러나 이 요정은 속으로 몹시 괴로워하고 있었다. 

붉어진 얼굴을 들지 못하고 있다는 게 그 증거였다.

디아나 여신 자신이 만일에 처녀가 아니었더라면, 이 아르카디아의 요정에게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을 첫눈에 눈치챘으리라.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다른 요정들은 모두 그 눈치를 챘었다고 한다.

달이 아홉 번 차고 기운 뒤의 일이었다. 

디아나 여신은 뜨거운 여름날 사냥으로 지친 몸을 끌고 산을 내려오다가 시냇가에 이르렀다. 

시냇물은 부드러운 모래 바닥 위를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디아나 여신은 이 시냇물이 반가워, 물에다 발을 담그고는 요정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기에는 엿보는 자가 없으니 모두 옷을 벗고 멱을 감도록 하자」

아르카디아의 요정은 얼굴을 몹시 붉혔다. 

다른 요정들은 모두 옷을 벗었지만 이 아르카디아 요정만은 이 핑계 저 구실을 앞세우며 미적거렸다. 

그러자 다른 요정들이 달려들어 이 요정의 옷을 벗겼다. 

옷을 벗겼으니 알몸이 드러난 것은 당연한 일, 알몸이 드러났으니 아홉 달 전에 죄지은 증거가 백일하에 드러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르카디아의 요정은 하릴없이 죄지은 증거를 손으로 가리며 당혹해했다. 

그러나 손으로 가린다고 가려질 것이 아니었다. 디아나 여신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꺼져버려라! 이 거룩한 시냇물을 더럽히지 말고 꺼져버려라!」

말하자면 디아나 여신은 이 아르카디아의 요정에게, 동아리 요정들에게서 떠날 것을 명한 것이다. 

전능하신 벼락의 신 유피테르의 아내는, 오래전에 이 일을 알고 무서운 벌을 내리기로 마음을 먹었으면서도 때가 무르익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다. 

이윽고 요정의 몸에서 아르카스라는 아들까지 태어나고 보니 더 이상 징벌을 유예할 입장이 아니었다. 

요정의 순산은 유피테르의 아내를 견딜 수 없게 했다. 요정과 아들을 내려다보는 유노의 눈, 유노의 가슴에는 분노의 불길이 일었다. 유노는 이를 갈았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이로구나. 자식을 배는 것부터가 나를 능욕하는 처사인데 그 자식을 낳기까지 해서 나를 또 한 번 능욕하고 내 지아비가 저지른 난봉의 증거로 삼아? 네가 무슨 수로 이 징벌을 피하겠느냐? 이 호난 계집아, 너와 내 남편을 시시덕거리게 만든 너의 그 아름다움을 빼앗아버릴 터이니 그리 알아라」

이 말 끝에 유노는 연적인 이 요정의 머리채를 잡아 땅바닥에 내굴렸다. 

요정은, 땅바닥에 쓰러지자 유노에게 빌 요량으로 두 팔을 벌렸다. 그러자 그 팔에서는 꺼칠꺼칠한 털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손은 안으로 구부러지면서 끝에 구부러진 발톱이 돋기 시작했다. 발에도 그런 발톱이 돋아났다.

유피테르가 찬탄해 마지않던 그 얼굴은, 갑자기 쭉 찢어진 입으로 흉측하게 일그러졌다. 

요정은 유노에게 빌면서 용서를 애걸했지만 그 소리는 이미 유노의 연민을 살 수 없었다. 유노가 이미 말하는 능력을 빼앗아버렸기 때문이었다. 요정의 입에서는 듣기에도 무시무시한 소리, 화가 나서 금방 싸움이라도 거는 듯한 소리가 터져나왔다. 요정음 곰으로 둔갑한 것이었다.

그러나 마음은 여전히 요정의 여린 마음 그대로였다. 

곰이 된 요정은 하늘의 별들을 향해, 이제는 앞발이 된 손을 내밀고 자기 슬픔을 하소연하는 한편 무정한 유피테르를 원망했다. 

그러나 곰이 내는 소리가 인간이 하는 말과 같을 리 없었다. 

곰은 숲속에 외로이 있을 수가 없어서 한때 자기가 살던 집, 뛰놀던 벌판을 찾아가 헤매었다. 

사냥개에 쫓겨 바위산을 헤맨 것도 부지기수였고 사냥꾼에게 쫓겨 달아난 것도 부지기수였ㅆ다. 

이따금씩은 자기가 곰이 되었다는 사실도 잊어버리고 하찮은 산짐승과 맞닥뜨리고도 후다닥 몸을 숨기기도 했다. 

자기가 곰이면서도 곰을 만나자 기겁을 하고 도망친 적도 있었다. 

이리의 딸이면서도 이리 때문에 기겁을 한 일도 있었다. 

 

별이 된 모자 

 

곰이 된 이 요정 칼리스토의 아들 아르카스가 열다섯 살 되던 해의 일이다. 

아르카스는, 뤼카온의 딸인 자기 어머니에게 이런 일이 생긴 줄은 까맣게 모르는 채 자라났다. 

어느 날 숲속에서 짐승을 쫓던 아르카스는 에뤼만토스 산에다 큰 그물을 친 다음, 목을 잡고 숨어서 기다렸다.

아르카스는 여기에서, 곰이 된 어머니 칼리스토를 만났다. 

칼리스토는 아들 아르카스를 보고는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칼리스토는 아들을 알아보고 걸음을 멈추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곰이 이상한 눈치를 보이는 까닭을 헤아리지 못하는 아르카스는 겁을 먹고 몸을 사렸다. 

곰이 잠시도 눈을 떼지 않고 자기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곰 모습을 하고 있는 칼리스토는, 아들에게 다가서고 싶어 견딜 수 없었지만, 한 발짝만 접근하면 아들의 창이 날아와 가슴에 꽂힐 터였다. 

그러나 이 모자에게 서로 죽이고 죽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전능하신 유피테르 신이 이 아르카스와 칼리스토의 손을 잡고는 이 모자를 다른 곳으로 옮겨 아들로 하여금 살모의 대죄를 짓지 않을 수 있게 했다. 

즉, 돌개바람을 시켜 이들을 빈 하늘로 옮기게 하고 다시 이들을 이웃해 있는 두 개의 별자리로 박아준 것이었다. 

칼리스토 모자가 별이 되어 하늘에서 반짝거리는 것을 보았으니, 질투심이 강하기로 유명한 유노의 마음이 어떠했겠는가?

유노는 바다로 뛰어들어 백발의 여신 테튀스와 연로한 해신 오케아노스를 찾아갔다. 

이 노신 부부는 올륌포스 신들의 존경을 받는 티탄들이었다. 

거신 부부가 바다로 내려온 까닭을 묻자 천궁의 왕비 유노가 대답했다. 

「두 분께서, 신들의 왕비인 제가 어째서 천궁의 보좌를 떠나 여기에 왔느냐고 물으시니 말씀드리지요. 제 지아비의 사랑을 입은, 저 아닌 다른 계집이 별이 되어 하늘에서 빛나고 있습니다. 밤이 세상을 가리거든 보세요. 창궁 저 높은 곳에 새로 자리를 잡고, 저를 비웃으며 반짝이는 두 개의 별자리가 보일 것입니다. 극권 가장자리와 천체 축이 맞물리는 곳, 극권에서 가장 가까운, 좁으장한 원 주위를 보시면 그 별자리를 찾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제 손으로 벌을 내렸는데 저것들이 저기에서 저런 명예를 누리는 판에, 누가 이 유노에게 죄짓기를 망설일 것이며 누가 이 유노와 맞서기를 두려워하겠습니까? 저는 대체 무엇입니까? 제 권능은 어디로 갔습니까? 제가 저 계집으로부터 인간의 형상을 빼앗았더니 저 계집은 여신이 되어 있지를 않습니까?  제가 벌을 주었는데 이렇게 되어도 좋습니까? 제 권능이 이 지경이 되어도 좋습니까? 유피테르는 전에 아르고스 계집 이오를 그렇게 하더니 이번에 또 제가 짐승으로 만든 계집에게서 짐승의 탈을 벗겼습니다. 유피테르가 왜 유노와 인연을 끊고 이 계집과 정혼을 하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유피테르가 왜 이 계집을 제 방에 들어앉히고 뤼카온을 장인으로 섬기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두 분께서, 두 분의 슬하에서 자란 이 양녀가 이같이 모욕당하고 있는 것을 가엾게 보신다면, 원컨대 저 두 곰자리 별이 두 분의 푸르고 푸른 바다에 드는 것을 금하소서. 부끄러운 짓을 하고도 하늘의 별자리가 되는 부당한 상을 받는 저것들이, 다시는 두 분의 맑은 물에 들지 못하게 하소서」

두 바다의 신은 고개를 끄덕여 그렇게 하마고 약속했다. 

 

참고 : 별자리 신화모음 폴더에는 각 별자리 신화를 제 1 텍스트의 기록 그대로 모아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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