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012. 4. 15. 14:544. 끄저기/끄저기

한반도라는 지역에서 살고 있는 구성원들은
'우리나라'라는 집단정체성을 공유한 이후

몇 번이나 집단의식의 성장을 겪었을까?

 

예를 들어, 16세기를 전후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과 같은,
일방적으로 피해를 당해야 했던 전국적 규모의 전쟁이후  
16세기~18세기까지 서민문학의 성장, 상업의 발달,

불교/도교신앙의 확산 현상 등은 집단의식의 변화를 말해 주는

단적인 증거가 될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에서 나타난 주자학의 강화, 양반의 증가,

삼정의 문란 등을 보면 집단의식이 변화는 했으나

그것을 '성장'으로 봐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지 않을 수 없다.

 

근대에 들어와서는 국가 자체가 무려 35년동안 다른 나라에게 예속되어 있던 시기가 있었고, 수많은 사람이 죽어간 전쟁과,

극악무도한 독재자들의 출연이 계속되는 시기를 겪었다.
이 기간동안 민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의식은 분명 성장한 것으로 보이지만
친일, 친독재와 같은 과거 회귀 세력이 여전히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것으로 보아
집단의식의 변화가 있었지만 그것을 역시 '성장'이라고 불러야 하는지는

여전히 판단을 유보할 수밖에 없다.

 

 

 

 

 

'집단의식의 성장'을 찾는다는 것, 그리고 더더군다나 이를 목격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기본적으로 인간은 경험을 해야만 각성을 하게되는 존재이기 때문에,
의식의 성장은 격렬한 충돌과 혼란의 결과로 얻어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90년대와 지금을 사는 사람들은 정말 운좋게도 짧은 시간에 집단의 의식이 성장하는 모습을 목격하는 진귀한 경험을 갖게 되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이 책, 유흥준 선생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덕택에 가능했던 일이다.


아마도 하나의 '좋은 책'이 인류 지성사에 미치는 거대한 영향력을 이처럼 생생하게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예는 없으리라 생각된다. 

 

1. 유홍준 선생님의 귀환에 대한 안도와 기쁨

    1993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권인 남도답사 일번지가 출판되었을 때,
    나는 대학이라는 곳을 가기 위해 오랜만에 다시 공부를 시작했던 입장이었지만 이 책을 바로 접하고 읽게 되었고,
    그때까지 별 가치를 느끼지 못했던, 아니 내가 뭔가 가치를 느껴야 하는 대상이라고 인식조차 하지 못했던
    이 나라의 문화재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작년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6권이 출판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기쁜 마음으로 1권부터 6권까지 책을 구입하여 내 서가에 소중한 책으로 남겨놓을 수 있게 되었다.

    수많은 책들 중에서 구입전에 이미 좋은 책이라고 확신을 하게 되고,
    즐거운 마음으로 내내 독서를 하고, 뿌듯하게 책을 덮은 후
    그 다음의 구체적인 행동까지 수행하게 만드는 책이 과연 몇 권이나 될까?
 
    이미 대학생 시절 읽었던 1, 2 권을 다시 읽으면서는 책 내용과 함께 새록새록 떠오르는 대학생 시절의 추억에 잠길 수 있었고,
    3, 4, 5 권을 이제서야 읽으면서 내가 젊은 시절 그닥 부지런하게 살지 못했음을 반성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고마왔던 것은 6권을 통해, 유홍준 선생님께서 여전한 모습으로 건재하고 계시다는 사실이었다.

 

    아마 1997년 아니면 1998년이었을 것으로 기억한다.
    대학에서 유홍준 교수님의 초청특강을 듣게 되었고,
    "우리 나라 문화 예술을 발전시키려면 국가가 참견만 안하면 된다." 라는 선생님의 말씀은
    보석과도 같았던 강의시간의 많은 말씀중에서도 여지껏 기억에 남아 있는 말씀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말이 씨가 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유홍준 선생님은 참여정부때 문화재청장을 맡게 되셨고,
    본인의 말씀을 시험하고 적용해볼 수 있는 위치에 있게 되었다.
    그러나 참여정부가 그랬듯이, 유홍준 청장님의 정책 하나하나는 그 진정성과 실적에도 불구하고 끊임없는 양아치언론의 공격거리가 되었으며,
    결국 숭례문의 화재와 함께 문화재청장의 자리를 그만두게 되셨다.

 

    하지만 그 와중에 내가 우려했던 건 그깟 양아치언론의 공격이 아니었다.
    원래 기생충이라는 생명체는 기생을 통해 생명을 유지하도록 태어난 것처럼, 양아치 언론의 개거품 역시 자신의 본능 이상 이하도 아니지만,
    어쨌든 책임있는 관직에 있는 처지에서 숭례문 화재와 같은 거대 사건이 선생님께 미칠 트라우마가 얼마나 심할지,

    그것으로 인해 우리 사회가 또 하나의 스승을 잃게 되는 것이 아닌지가 걱정스러웠던 것이다.

 

    그러나 유선생님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권, 그것도 이미 10년 전에 집필된 금강산 예찬기의 후반부에 등장하기 시작한

    '인생도처유상수'를 부재로 들고 나와 시간 공백을 뛰어넘는 연속성을 확보하시면서 복귀를 하셨으니
    선생님의 재등장 자체가 얼마나 반갑고 고마운 일이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이 단연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권부터 6권까지를 다시 즐거운 마음으로 읽게된 계기가 되었다.

 

2. 그 경복궁이 그 경복궁이 아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권을 읽으며 느낀 첫느낌은 1993년으로 회춘하신 유홍준 선생님을 다시 뵙는 듯한 느낌이었다.

    "자금성 북쪽에 우리의 북악산에 비하면 '뒷간'보다도 작은 가산을 만들었다."는 당당한 대구는
    "저놈의 준공탑만 보면 피가 끓는다"는 1권 초반의 호령과 멋진 수미쌍관을 만들고 있다.

 

    6권의 문화유산 답사는 경복궁과 순천 선암사, 달성 도동서원, 거창/합천의 양반문화와 영암사터, 부여/논산/보령의 백제문화로 구성되어 있으나

    선생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얘기, 그리고 이 책의 백미는 단연 경복궁에 대한 이야기이다.

 

    경복궁!
    서울에서 나고자란 내게, 그리고 서대문구에서 줄곧 어린 시절을 보낸 내게 경복궁은 어려서부터 학교 소풍으로, 사생대회로,

    혹은 그저 개인적으로 심심찮게 들르던 고궁이었다.

 

    그러나 경복궁에 대해 유쾌하거나 뭔가 배웠다거나 하는 기억은 전혀 남아 있지 않다.

    중학생 시절까지 경복궁은 그저 소풍과 사생대회 장소에 지나지 않았고, 경비아저씨들 몰래 잔디밭에서 놀다가 쫓겨나거나

    출입이 통제된 건물 안에 비둘기 똥만이 가득한 그저그런 공간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민주화 열기와 함께, 민중사관이 부각되던 고등학교 시절에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한 번 공부해 보겠다고 국립중앙박물관을 한 두 번 찾아가본 것이 전부였는데
    그 때마다 미국 대사관 앞에서 검문을 받아야 했던 불쾌한 추억만이 가득한 곳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 기억이라면, 여기저기 공사로 공사가림막과 먼지만 가득했던 경복궁이 마지막 기억으로 남아 있다.

 

    나는 과연 무엇을 보고 살았던 것일까?
    경복궁에 대한 130여 페이지의 내용이 없었다면 나는 여전히 경복궁에 대해 내가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무지한 인생을 살았을 것이다.
    여전히 광화문 육조거리에 대한 전통적 자각보다는 어깨위에 걸터앉아 있는 미 대사관에 대한 텁텁한 감정으로 평생을 살았을 것이다.
    근정천의 처마가 그리는 곡선도, 박석의 아름다움도 몰랐을 것이고, 경회루의 화려한 위엄과,  향원정의 고요한 위엄도 평생 몰랐을 것이다.

    하나를 보고 하나밖에 알지 못하는 아둔한 머리는 절대 경복궁의 스케일에서 구현된 '차경'의 미를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이런 글을 접할 때마다 내가 이처럼 모른다는 것조차 모르는채로 살아가고 있는것이 얼마나 많을지를 생각하면서 우울해지곤 한다.

 

3. 유홍준 3.0 만이 쓰실 수 있는 이야기들

    내 맘대로의 구분이긴 하지만 처음 나의문화유산 답사기로 이름을 날리시던 때를 1.0 버전의 유홍준 선생님이라고 한다면

    문화재청장 시절의 유홍준 선생님을 2.0, 그리고 지금 6권으로 복귀무대를 치루신 유선생님을 유홍준 3.0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에서는 유홍준3.0이기에 등장하는 문구들이 있다.

    글 곳곳에서 문화재청장이라는 직책을 수행하셨기에 알 수 있는 에피소드나 분위기를 담고 있는 문구들이 그것이다.  

   

    광화문의 복원과 광화문 6조거리 광장의 복원에 대한 이야기들,

    경회루의 일반공개결정과 궁에서의 연회, 산림청과 맺은 150년 후 금강송 양도 MOU,

    종갓집 며느리 간담회, 돌담길 복원공사 등

   

    이러한 에피소드들과 곳곳에서 나타나는 관리자적인 시점의 얘기들은 
    1권에서라면 적혔을리 없는 얘기들이라는 점에서 2011년의 유홍준 선생님의 생각을 읽어볼 수 있는 재미있는 단서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이야기들을 접하면서 예전 대학강의에서 인상에 남았던 선생님의 말마따나 
    '국가가 감놔라 배놔라 참견하지 않는 문화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선생님께서 몸소 그대로 실천하신 '지원을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 모습을 읽어낼 수 있었다.

 

    서양과 달리 동양은 학문과 실행의 합치를 진정한 지식인의 모델로 손꼽거니와
    이런 측면에서 선생님은 진정한 이 시대 지식인의 한 분이라 할만한 분이심을 알겠다.

 

    책의 곳곳에서 소소한 즐거움들이 책을 읽는 내내 계속 함께했다.
    특히 선생님께서 반교리에 정착하시고, 휴휴당을 지으신 얘기를 읽으면서 대학생 시절 문화유산답사기를 읽으며

    '유교수님께서 집을 지으시면 맞배지붕을 하시겠군'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세 칸 맞배지붕으로 지어진 아담한 집을 보면서 역시나 하는 생각에 미소를 짓기도 했다.

 

선생님께서 열어주신 길을 따라 다시 나의 무지를 깨닳을 수 있는 여행도 시작될 것이다.
이끌어주시는 선생님을 따라가는 길만큼 안심되고 유쾌한 길이 또 있을까?

책과 함께 최근의 유홍준 선생님의 강연 동영상을 여기저기서 찾아서 보면서

왕성한 활동을 하시고 계시는 선생님을 볼 수 있었던 만큼
선생님의 가르침이 계속 될 것이라는 즐거운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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