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종말시계

2012. 3. 18. 15:584. 끄저기/끄저기

지금도 여전히 스테디 셀러의 지위를 고수하고 있는 '엔트로피'라는 책이 있다.

내가 이 책을 읽은 것이 구체적으로 언제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 책을 읽고 강렬하게 남은 인상은 아직도 지워지지 않고 있고

그 때 아마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쓸 때,

'과학을 기반으로 그려낸 종말론'이라고 평했던 거 같다.

 

'엔트로피'라는 책에서 강한 인상을 받은 사람이라면
아마 지구의 인류가 사용하는 에너지의 소비형태에서 묘사하고 있는
신에너지 소비 반감기에 대한 내용을 어렴풋이나마 기억하고 있을 것이고,

오래지 않아 석유에너지는 고갈의 운명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선고와 함께
이렇다할만한 대체 에너지를 갖추지 못한 인류의 암울한 미래에 대한 경고를 기억할 것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엔트로피의 내용이 정확히 맞아떨어지진 못했다.
21세기하고도 12년이 지난 지금까지, 도로는 여전히 차들로 막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록 "몇 년대에는 어찌어찌  될 것이다."라는 각론에서는 맞지 않았을지 몰라도
"석유자원의 고갈과 여전히 미약한 대체에너지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엔트로피의 예측은 여전히 유효함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책 '석유종말시대'는 이처럼 엔트로피라는 책이 남겨준 강렬한 기억으로 인해
브라질 출장 시 인천공항 서점에서 제목을 보고 선뜻 집어들게 된 책이다.

 

이 책은 유가의 증가에 따라 인류의 삶의 방식 - 주로 미국이라는 나라가 초점이긴 하지만
일반적 사례로 환원하는데 그닥 무리가 있지는 않다.-이 어떻게 변하리라 혹은, 변할 수 박에 없으리라는 내용을 저자가 수집한 자료를 근거로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나열하고 있는 책이다.
 
1. 유가의 상승과 환경의 변화

    책의 내용은 갤런당 4달러의 유가부터 갤런당 20 달러의 유가가 그대로 목차화 되어 진행되고 있다. 

    정리하자만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나온다.
   (책에는 갤런당 달러로 나오고 있으나 이를 리터당 원(환율 1100원으로 고려)으로 환산한 후
    휘발유에 부과되는 세율의 차이(대략 미국 20%, 대한민국 50%)를 고려하여 기재되었다. )

 

   - 리터당 2,000원 : 시장에서 사라지는 SUV, 인기를 끄는 하이브리드 차량, 디젤엔진 승용차, 걸어서 순찰을 돌게 되는 경찰
   - 리터당 2,800원 : 사라지는 항공사(대한항공, 아시아나 항공도 사라질 거라고 함), 모여살게 되는 가족, 라스베가스 파산
   - 리터당 3,500원 : 전기차의 시대,
                              폴리프로필렌의 가격이 바이오플라스틱과 동일  수준으로 올라 더이상 석유로 만든 플라스틱이 아닌 바이오플라스틱이 상용화 될 것임.
   - 리터당 4,200원 : 소규모 밀집기능의 도시화(대한민국 송도가 이상적인 모델로 나오고 있음.)
                               기차, 전철 등 대량수송 일상화, 베드타운에서 도심으로 회귀하는 인구이동
   - 리터당 4,900원 : 도심의 소규모 소매상점 부활, 도시외곽의 대규모 아웃렛 사라짐.
                               제조업의 국내복귀(인건비로 인해 해외로 진출한 제조업의 철수)
                               차량의 감소로 관리되지 않는 아스팔트도로 증가
                               원자재시장 재편 : 각종 석유기반의 원자재가 천연소재, 지방토산품 소재로 대치됨
                               탄소섬유 자동차, 탄소섬유 비행기, 신문배달 사라짐.
                               일회용품과 물질주의의 첨병 월마트 사라질 것.
   - 리터당 5,600원 : 지구적 규모의 식품 네트워크 붕괴 및 지역 농장의 활성화  
   - 리터당 6,300원 : 철도르네상스(책 띠지에 "자동차, 항공사 주식을 팔고 철도 주식을 사라."고 씌어져 있음)
   - 리터당 7,000원 : 대체에너지.

 

    물론 앞으로의 세계가 구체적인 측면에서 위에 적시된대로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일례를 보더라도 유가가 2천원을 넘어선 현재 대한민국에서 SUV가 사라지지도, 하이브리드가 인기를 끌고 있지도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유가가 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2. 석유자원고갈을 의심하게 만드는 미신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주변을 보면, 유가의 인상을 석유자원의 고갈과 연결시키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다.
    아마도 2011년 사상 최대의 에너지 소비를 달성했다는 대한민국의 상황은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 같다.

 

     분명히 석유자원이 고갈되고 있음에도
     첫째, 유가의 상승은 정유사의 탐욕과 세금을 양보하려 하지 않는 정부의 책임이라는 착각
     둘째, 두바이 경제위기라든가, 이란 경제제재 및 호르무즈해협 봉쇄등 애꿎은 갈등 때문이라는 착각
     셋째, 시베리아나 남극등 아직 기술탐사가 이루어지지 못한 지역이 널렸다는 착각 등

     딱히 근거있어보이지 않는 믿음이 지독하게 낙관적인 대한민국을 만들고 있는 듯 하다.

    

     조각조각을 떼어놓고 봤을 때 위에 나열한 세가지 착각은 아주 작은 비중에 있어서 사실인지 모른다.
     그러나 석유자원이 고갈된다는 사실이자 대전제에는 아무런 변수가 되지 못할 것이다.

     더군다나 그런 측면에서 책의 서두에서도 강조하고 있는 전지구적인 착각이 있다. 
    

     바로 석유의 발견과 생산 소비가 점진적으로 증가했듯이
     석유 자원의 고갈과 그로인한 생산 감소도 점진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착각이다.
     그러나 석유가 바닥나기 시작한다면 그 감소폭은 하루가 다르게 기하급수적으로 감소할 것이라 보는게 타당하다. 
     게다가 이미 석유자원의 생산이 피크를 쳤으므로 바로 지금 석유 이후의 시대를 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내 주위에는  새로 차를 사기 위해(당연히 더 큰 차로..) 적절한 영맨을 소개시켜달라는 얘기들이 많다. 
     내가 지나치게 민감한 것일까...

 

3. 원자력을 위한 변명

    리터당 유가 7천원을 돌파하는 시기에 대한 책의 마지막 부분은
    대체에너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으며 저자는 주저없이 원자력 에너지가 그 유일한 대안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내가 이 책을 읽었던 때는 2011년 3월 브라질 출장중이었다.

    2011년 3월 11일 일본의 대지진과 이어 벌어진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해

    2010년 씌어진 이 책의 결말부분은 작금에는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는 결론이 되어 버렸다.

 

    이 책이 2011년 3월 이후 씌어졌다면 어떤 결론을 담게 되었을까?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전세계적으로 탈원전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탈원전에 대한 논리에 그닥 호의적이지 않다.

 

    원전의 에너지 생산 원가가 생각만큼 싸지 않다는 점.

    즉, 어디까지를 원가로 볼 것이냐라는 관점의 원가산정방식에 따라 널뛰기를 하는 원가에 대한 내용을 충분히 알고 있고,

    핵폐기물의 방사성 준위가 인류가 멸종할때까지 첫 반감기를 맞이하기나 할지에 대한 회의와 위험성 역시 충분히 인정하고 있다.

    오히려 내가 문제삼는 것은 원전이 아닌 포스트 오일 시대에 대해 탈원전을 앞서 주장하는 사람들이나 그에 호응하는 일반인들이

    자신의 생활을 먼저 어떻게 변화시켜야 하는지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을까라는 회의이다.

   

    많은 경우 사람들은 지금 자신들의 생활 패턴이 그대로 유지되면서,
    예를 들자면, 매일 20킬로를 넘게 달려 회사에 출퇴근하고, 모닝커피와 함께 하루를 시작하고
    불야성의 빌딩숲에서 야근을 하다가 동료들과 술한잔하고,  늦은 귀가 후 잠자리 들기 전 웹서핑을 하다가 잠이 드는,
    그런 생활이 그대로 유지되지만 다만 그 에너지 원천이 서해 앞에 팔랑 거리는 바람개비 발전소로 바뀌는 것 뿐이라는,
    그런 정도에만 머무르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회의가 그것이다.     

 

    아마 구성원 개개인이 자신의 생활패턴을 혁명적으로 바꾸지 않는 이상,

    원유와 원전이 없는 세상은 청정한 하늘과 바다대신 폭동으로 얼룩져 있을 것이다.


앞서 적시한 내용대로 유가의 상승은 우리 생활의 불가피한 변화를 요구하거니와
간단해 보이는 내용하나하나에 들어있는 심각한 생활의 변화를 인지해야 할 필요가 먼저 있어보인다.

 

물론 인지한다고 해서 고갈되는 석유라는 사실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지만
그에 대한 대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석유자원의 고갈을 누누이 얘기하고 있지만,
어느날 갑자기 전지구적으로 원유공급이 뚝 끊기지는 않을 것이다.

 

본 책에서 정리되어 있듯이 공급은 계속되지만, 유가의 상승이 가파르게 일어나는 현상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래서 어느날 갑자기 내 소형차에 기름 한 번 채우는데 20만원 이상의 돈이 필요하다면
바로 그 순간이 나에게는 석유가 이세상에 없는것과 마찬가지 상황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는 더이상 예측만이 아니다.

이미 유가의 가파른 상상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과연 내게 더이상 석유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은 날이 되는 때가 얼마나 남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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