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3. 10. 18:50ㆍ4. 끄저기/끄저기
서재에 꽂아놓고 이런 저런 핑계로 읽지 못하는 책들,
월급쟁이인 내게 가장 큰 핑계거리는 단연 회사생활 때문이다.
그러나 게중에 뭔가 사연이 있는 책들도 있다.
항상 책을 구입하게 될 때면 우선순위에 있는 책들,
그리고 책을 집어들때도 우선순위로 집히는 책들,
그러나 꼭 중간에 더 이상 읽지 못하는 책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잡게 되는 책들,
내게는 참여정부, 노무현 대통령님과 관련된 책들이 모두 여기에 해당되는 책들이다.
유시민 씨가 엮은 '운명이다' 가 그랬고,
지금 여기에 서평을 쓰게 되는 '문재인의 운명'이 또한 그렇다.
그리고 '진보의 미래'는 아직도 다시 집어들지 못하고 있다.
김어준은 예전부터 문재인을 눈여겨 보고 있었다고 하지만,
김어준 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문재인을 눈여겨 보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참여정부는 출범때부터 매해, 매순간, 사사건건 주류의 공격을 받았고,
그때그때마다 민정수석으로서 시민사회수석으로서, 비서실장으로서 문재인은
언론에 노출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2004년 탄핵정국의 총선, 그리고 2008년 총선 때 모두
문재인은 정치인의 길을 거절했음을 잘 알고 있기에
문재인의 자서전이라는 이 책을 접하는 순간까지,
과연 가능성 있는 상품이 정말 정치에 참여하는 걸까라는 의구심은 없어지지 않았다.
물론 지금 이 글을 쓰는 시점에 문재인은 부산 사상의 총선에 출마했고
더더군다나 연초 SBS 힐링캠프의 출연으로 인해서 대권주자로서 대중적인 입지도 다져놓은 상태이다.
나로서는 그것이 정말 원하는 것이긴 하지만
문재인은 언제나 그래왔듯이 여전히 대권에의 의지를 표현하지 않고 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모르겠으되, 이것이 문재인의 본심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상하게도 TV에서, 잡지에서, 사진이나 얼굴을 보고, 인터뷰 내용을 보고 들을때,
그 말이 정말 본심임이 공명되는 사람들이 있다. 문재인이 그런 사람의 대표적인 예이다.
1. "운명"은 누구의 운명인가?
이 책에 대한 첫 느낌은 제목이 잘못됐다는 것이었다.
운명은 문재인의 단어가 아니다.
(물론 이 단어는 노무현 대통령님의 단어도 아니다. 나는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 그 얘긴 접어두고..)
책이름이 "운명"으로 접해질 수밖에 없었던 비하인드 스토리는 나중에 접하게 되었지만
어쨌든 나는 여전히 이 책의 제목을 정하는데,비중있게 관여했을 참모가 있다면, 그 사람의 수준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에서 부각되어야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문재인 이라는 사람이다.
문재인이라는 사람은 우주반대편에 혼자 떨어뜨려도 노무현 대통령님이라는 연상이미지를 떨쳐버릴 수 없는 인물이다.
문제는 그 연상이미지에서 우선이 누가 되어야 하는가이다.
이제 더 이상 노무현 대통령님이 떠오르고 그와 함께 했던 문재인이 되어서는 안된다.
문재인이 보이고 그리고 그 어깨너머에 미소짓는 노무현대통령님이 떠오르면 된다.
이건 영향을 벗어나고말고, 연상을 끊고말고의 다소 중량감 있는 사회적, 심리적 문제가 아니다.
결국 대중의 기억에서 노무현 대통령님의 선명한 이미지는 점점 강도가 낮아질 수밖에 없으므로
자연스럽게 순서상 현존하는 문재인이 앞서 나타날 수 있음에도 구태여 그 앞에 노무현대통령님을 세운 꼴이 되어 버렸다.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문재인 개인이 가지는 매력이 노무현 대통령님 못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 인터넷에 화제가 된 공수부대원으로서의 문재인의 사진은 그 단적인 예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책꽂이에 들어가면 "운명"이라는 두 글자만 보이면서 그 매력의 원천을 왜곡하고 있다.
2. 문재인이라는 사람의 관성.
"그런데 군대에 가보니 군대가 요구하는 기능을 상당히 잘 해내는 편이었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이 문구에 주목하고 있다.
(책에는 이 문구가 적힌 바로 맞은 편에 낙하산 장비를 들고 있는 화제의 공수부대원 문재인의 사진이 있다.
의도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 책이 목표로 하는 최상의 배치이다.)
작금에 문재인이라는 사람에게서 기대하는 바는 대체적으로 동일한 패턴을 가지는 듯 하다.
개인의 욕구라는 측면에서 문재인의 권력욕구는 결핍수준을 넘어서 부재를 의심할 정도임에도
나 자신도 문재인 씨가 올해 12월 영등포 통합민주당사에서 꽃종이를 맞으며 꽃다발을 들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생각을 가능하게 하는 문구가 바로
"그런데 군대에 가보니 군대가 요구하는 기능을 상당히 잘 해내는 편이었다." 라는 문구이다.
문재인 씨의 권력 욕구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욕구와는 시발점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그것을 권력욕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을까를 의심하게 만든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이 김어준 씨가 얘기하는 이 시대의 결핍을 채우는 부분이다.
나는 이것을 바로 "문재인의 관성"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관성이란 물리적으로 어떤 물체가 운동상태를 지속하는 속성이라고 정의되므로
움직임을 시작하는 것이 문제였지, 움직이기 시작했다면 그 다음은 그대로 지속될 수 있음을 알 수 있고
문재인씨는 이미 움직임을 시작했으므로 그 움직임을 멈추지 않을것이다.
이것이 내가 문재인 씨에게 가지는 믿음이다.
3. 어찌하지 못할 변수 - 대중
노무현 대통령님을 사랑했던 사람이라면, 참여정부 5년이 내내 괴로웠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2007년 한해에 대해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트라우마가 있는 것이 아닐까라고 의심할 정도이다.
처음에 얘기했듯 참여정부, 노무현대통령님과 관련된 책을 읽을 때마다
2007년 시점에 책을 놓고 다시 이 부분을 읽기 위해서 해를 넘기기까지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2009년 노무현대통령님의 영결식 때,
서울광장을 함께했던 사람들, 서울역까지 거리를 가득매웠던 사람들, 포스트잇이 날리던 YTN 건물...
안타까운 전임대통령의 죽음에 어이없어하던 시민들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들에 대한 분노도 함께 가지고 있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노무현 대통령을 뽑은 사람도, 그에게 등을 돌린 사람도, 그리고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사람들도 결국 그들이 아닌가.
"지켜주지 못해서 죄송합니다"라는 문구와 말이 얼마나 듣기 싫었는지 모른다.
이말은 최소한 지켜주고자 하는 의도라도 있었어야 할 수 있는 말 아닐까?
2007년 국정지지율은 19%였다.
임기마지막 해 정권에 대한 야당(당시 딴나라당)의 몽니가 극을 치닫고,
대부분의 여당의원들이 자기살겠다고 당을 깨던 시기였다.
상황을 정확히 볼 줄 안다면 뭐 하나 하려해도 안되던 시기였음을 알것이고,
잘잘못을 따질 줄 안다면 국정을 잘 하니 마니라는 평가 자체가 무색했을 시기라는 것을 알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을 모르거나 인정하지 않거나, 인정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다섯명중 네사람이었다는 얘기다.
도대체 뭘 지켜주지 못해서 죄송하다는 걸까?
총선이 코앞이다.
역사를 바로잡아야 할 대단히 중요한 선거임에도 이름만 바꾼 양아치들의 힘은 여전히 위력적이다.
이런 때, 웃기는 현상이 하나 있다.
누군가 통합민주당이 마음에 안든단다. 그 사람은 충분히 그럴 이유와 근거를 가지고 있다.
문제는 그것을 자신의 이유와 자신의 근거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의 여부를 고민조차 하지 않은채
그냥 그대로 따라가는 대중이다. 그 사람의 수가 무시못할만큼 많은 것이 현실이다.
선대인 씨가 김진표 씨의 공천을 들어 통합민주당 10석이 날라간다고 했단다.
이에 대한 나의 반론은 이거다.
김진표의 공천때문에 김진표 자신(즉 1석)이 날라가는 것이 아닌 10석이 날라갈 수 밖에 없는 것이 대중들의 생리라면
바로 그 생리가 지금의 정권과 새누리라는 양아치들이 유지되고 있는 원인에 덜더 더도 아니다.
이건 정말 무서운 현상이다.
나는 문재인의 관성을 믿고 문재인의 관성은 새누리나 조중동 같은 양아치들 쯤에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믿지만
대중의 힘은 그 관성쯤은 쉽게 막아버릴 수 있고, 바로 그 대중의 변덕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나는 문재인의 관성이 대중이 안티로 변하는 순간에도 이를 뚫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의 관성에서 사사로움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가지는 믿음이다.
우리에게 다시 기회가 올 수 있을까?
이명박으로 인해서 대한민국의 역사가 10년 이상을 퇴보하고 있다.
지금이 2012년인지 1992년인지 알 수가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박근혜가 다시 정권을 잡는다면(상상만으르도.... 어우......ㅡㅡ;;;)
대한민국은 1979년 이전으로 퇴보하게 될 것이다.
이미 정권이 막나갈 때, 시민들이 할 수 있는게 의외로 없다는 사실을 지난 5년동안 뼈져리게 느끼고 있다.
이 책을 처음 사고, 책을 들고 회사에서 퇴근할 때 팀장님이 무슨 책이냐고 물었다.
나는 "박근혜를 깰 수 있는 사람의 자서전"이라고 대답했다.
문재인의 운명? 아니, 나는 문재인의 관성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