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오금학도

2012. 3. 10. 16:504. 끄저기/끄저기

이 시대의 멘토,
꽃노털 이외수 선생님의 글을 이제서야 처음 읽게 되었다.

소설책을 그리 자주 읽는 편이 아니더라도
이외수 선생님처럼 유명한 분의 글을 이제서야 읽었다는건 분명 부끄러운 일이다.

 

며칠전 이외수 선생님과 김태원 씨가 출연한 SBS스페셜 '청춘을 위하여' 를 보고,
그리고 그 다큐멘터리에서 김태원 씨가 교도소에서 본 이 책, 벽오금학도를 통해
이외수라는 사람에게 깜짝놀라고 흠모하는 작가가 되었다라고 말하는 부분이
이외수 선생님의 첫 번째 작품으로 이 책을 접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책을 읽고 난 지금 사실 그닥 남는 것은 없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냥 무디어진 나의 감정을 탓하는 수밖에...

아니면 세계문학상 같은 말랑말랑한 젊은이 감성의 소설에 익숙해진 탓이라고 할 수밖에...

 

1. 책 자체의 내용보다는 책이 쓰인 시점이 더 많은 얘기를 만들어내는 이야기.
   이 책이 씌어진 1992년은 이외수 선생님께서 삶의 굴레에 빠져 계시던 시기로 알고 있다.
   아마 집에 철장을 두르던 기행의 시기, 이 책은 그 결과로 탄생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고,
   그래서인지 작품의 곳곳에는 삶의 본질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고, 후반부 천부경의 글은
   이외수 선생님의 1992년 당시의 삶에 대한 관점이 정리된 것이라 이해할 만하다.
  
2. 작품의 디테일 역시 그닥 섬세하거나 조밀하지 않다.
   비교적 중량감 있는 조연인 백득우의 시작과 5년 동안 먹을 가는 성향은 그냥 설정을 위한 설정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결말에 잭나이프로 벽오금학도를 찢으려 덤비는 모습도 어색하기만 하다.

   주인공 강은백의 정신병원 부문은 그냥 분량을 채우기 위한 이상, 이하도 아닌듯 보이고,
   결국 벽오금학도의 세계로 다시 돌아가고자 하는 강은백의 의지가 이 책의 메인 줄거리임에도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한 의도 역시

   전혀 힘이 들어가 있지 않다. 
  

   특히 후반부 들어 등장하는 인물들, 노파(는 중간에 잠깐 나오기도 하지만), 고영감, 손기자,
   침한의 스승 등은 오직 결말을 위한 급한 설정이상의 느낌이 들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이야기의 시작과 끝에 전혀 연관 고리를 찾을 수 없는 것 역시 전반적인 이야기를 단절로 느끼는 요소중 하나이다.

   

   아직도 남는 의문...어떻게 강은백은 어린 시절 벽오금학도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일까....

   아마도 영겁을 통해 반복되는 인연과 인과응보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 그 답의 전부인걸까...

  
3. 책의 내용에 대해 별 감흥을 느끼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책 자체보다는
   아마도 나 자신이 스스로 설정한 '과거에의 미신', '미풍양속의 미신' 등에 대한 원초적인 거부감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기본적으로 책의 선전문구에 적시된 바와 같이 700만 독자를 감동시켰다는 이 시대의 멘토 이외수 선생님의 글을
   '영 아니다..' 라고 치부할만한 배짱이 있는 인간은 아니다.
  
   책이 씌어진 1992년은 나 역시 나름 청년문학도연 했던 시기였다.
   물론 인생의 고민도 많았고, 결론적으로 새로운 세계관으로 갈아탔던, 내 개인으로서는 중대한 시기이기도 했다.
  
   당시 개인적으로 탑재한 새로운 가치 중 하나가 말하자면, '아름다운 과거와의 단절'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전통과 잊혀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을 가지고 있거니와
   특히 이 책에는 그러한 아쉬움이 수도 없이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입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어린시절을 동경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성장하고 늙어감에 따라 본인의 취향과 세계의 취향을 혼동하게 되고,
   본인의 취향을 당위성과 혼동하게 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문제는 이러한 사람이 뭔가 사회에 영향을 끼칠만한 권력을 가지고 있을 때이다.
   과거는 아름다운 전통이 되고, 현재는 철부지들의 난장판으로 치부해버린다.
  
   나는 과거의 대한민국, 조선, 고려, 그리고 그 이전 어느 지점이든,
   그게 대한민국이라는 공간이든 전 세계 어느 공간이든, 그 곳과 그 때가 지금 현재보다 더 아름다운 가치가 지배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적어도 나에게는 미신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현재 이 세계의 모습이 비록 아름다워 보이지는 않지만

   나에게는 지금이 인류 역사상 가장 다양성이 존중되고 개개인이 존중되고 있는 시기라는 믿음과

   앞으로도 더더욱 개개인의 다양성과 개성에 대한 존중이 발전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종말론 따위...풋..)

   어떤 흉악한 사건을 접했을 때, 그것을 쇠퇴하는 인간성의 증거로 한탄하는 것은

   '열혈초등학교'라는 만화가 학원폭력의 원인이라는 조선일보 1면의 기사만큼이나 무책임한 얘기다. 

   

   이 세계에는 말도 안되는 사건이 수도 없이 일어나고 있지만 그러한 사건은 인간이 지구에 살기 시작한 때부터 늘상 있어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가장 오래된 기록 유물인 성경만 보아도 인류의 역사에 얼마나 잔인한 사건들이 수도 없이 발생해왔는지를 알 수 있다.)

   오히려 지금은 그러한 사건들이 그 어느때보다 빠르게, 그리고 훨씬 광활한 폭으로 인류 구성원에게 전달되고 있으며

   선의를 가진 대다수 인류의 공명이 이러한 사건들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시기라 생각한다.   

  
4. 벽오금학도는 신선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하나의 허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글 자체를 글 외적인 요소로 판단할 필요가 없거니와
   지금의 이외수 선생님께서 위치하고 있는 사회적 위치가 어떠한지 역시 고려할 필요는 없다. 


   더더군다나 이 글 하나가 여전히 가치있고 아름다운 이외수 선생님의 글을 트위터를 통해 소비하고 있는 내게
   이외수 선생님에 대한 하나의 평가요소가 될 만한 가능성 역시 조금도 없다.
   나는 이 책을 접하기 전이나 지금이나, 트위터를 들여다 보기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이외수 선생님에 대해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마 언젠가는 또 이외수 선생님의 책을 보게 될 지 모르겠지만,
   하루키와 마찬가지로 그 우선 순위는 상당히 뒤로 미뤄질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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