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명출 평전

2012. 7. 15. 19:154. 끄저기/끄저기

관람일시 : 2012년 7월 14일 15시

관람장소 :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연극 공연의 티켓을 구매하다보면 일반적으로 보이는 각종 할인행사들이 있다.
특정 카드사 할인이야 너무나 일반적인 것이고 프리뷰 할인, 평일 관람 할인, 단체 할인, 회원할인 등등.

그런데 주목할만한 것은 그 연극이 주 타깃으로 삼고 있는 특정 연령층, 특정 사회계층에 대한 스페셜 할인이다.


이 연극 '전명출 평전'의 스페셜 할인은 이른바 '오공육공 동창회'할인이다.
단어 자체야 상당히 불순하게 들리지만

그 의미는 1950년대와 60년대에 태어나 5공과 6공의 격동기를 온몸으로 뜨겁게 살아낸 분들에 대한 할인항목(40%)을 말한다.


 

즉, 이 스페셜 할인 항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연극은 50년대 60년대에 태어나신,
내게 있어서는 형님 세대, 삼촌 세대의 삶을 담고 있는 연극이다.

 

 

 

 나는 이 연극티켓을 프리뷰 할인으로 구매하였다.

 내가 프리뷰로 구매한 첫 번째 연극의 사례인데
 앞으로 프리뷰는 자주 이용할 생각을 갖게 만든 연극이기도 하다.

 

 관람 가격의 할인 폭이 크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평가가 있기 전에 내가 먼저 직접 볼 수 있고, 
 그때그때 프리뷰로 선택할 수 있는 연극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아마 섭렵하게될 장르의 다양성을 높이는데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1. 전반적으로 느껴진 정갈한 절제의 맛.
   이야기는 1979년 촉망받는 영농후계자인 주인공 전명출이
   팍팍하기만 한 현실에 마늘을 훔치다가 걸려

   고향에서 야반도주를 하는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도시 노가다판에서 새 삶을 시작한 전명출은 80년대 건설업의 부흥, 부동산의 폭등과 함께

   성공한 삶을 살게되지만, 그 와중에 이 사회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처절하게 깨닫게 되고,
   그렇게 180도 전환된 삶의 가치관을 끝까지 고집하면서 평생을 살게 된다.
  
   주인공이 살아가는 그 이야기 하나하나는 대한민국 격동의 현대사가 그대로 녹아있고
   이야기의 빠른 전개를 위해 다소 서투르게 표현된 개연성이긴 하지만
   그 현대사에 대한 풍자 하나하나를 담고 있다.
  
   그러나 이 연극은 결코 현실의 고발이나 정치적인 비판을 담고 있지는 않다.
   그 시대 그렇게 삶을 영위한 분들의 삶이 그렇듯,

   이 연극 역시 시사고발의 경계선에서 적당히 타협하고 결코 오바하지 않고 있다.
   제목 자체가 그렇듯 전명출이라는 한 인물의 삶에 초점을 맞추어

   담담이 그 삶을 그려가는 절제선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배우들의 연기 하나하나에도 그 절제라인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난무하는 경상도 사투리가 그렇게 귀에 거슬리지 않고,
   촌동네의 촌사람을 연기하는 군상 하나하나의 연기에서도 절제라인이 그대로 살아있다.
  
   전반적인 연기에서 오바가 느껴지지 않아 이야기 전개도 편안하고 배우들의 연기 역시 편안하게 다가온다.
  
   스토리라인이 장대하여 무대의 설정 역시 그만큼의 고민이 필요했겠지만
   건물의 뼈대를 이루는 골조만큼이나 뼈대만으로 구성된 무대장치 역시
   전체 이야기와 잘 어우러지면서 전혀 스토리에서 삐져나가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한마디로 전반적인 절제라인의 유지가
   자칫 비대하게 빠져나갈 수 있는 연극의 소재를 훌륭하게 통제하면서
   슬림하고 여유있고, 그래서 보기에 편안한 연극을 만들어주고 있다.

 

2. 순님이에게 공명하다.
   이 연극이 5~60년대 세대로서 대한민국의 격동기를 살아온 세대를 타깃으로 한다면
   나는 그 이야기에 대한 방관자 내지 관찰자가 될 수밖에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이야기가 내 세대 혹은 젊은 세대가 공감하지 못할 이유는 단 하나도 없다.
   그리고 그것은 5~60년대 세대라 하더라도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대다수 형님 세대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너무나도 정신없는 변화를 온 몸으로 겪어내고 살아왔지만,
   사실 평범한 우리 대부분은 묵묵이 그 자리에서 각자 자신의 삶을 살아온 군상 이상 이하도 아닌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우리의 이야기는 '굴곡'을 몸으로 겪어내고, 또 그 '굴곡'을 직접 창조해낸 주인공 '전명출'보다는
   그 굴곡의 파고를 온몸으로 버텨내야 했던 주인공 전명출의 아내 이순님에게 좀더 투사될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이순님의 모습.
   그것은 어쩌면 우리 세대가 마지막 목격자가 될 희생하는 아내, 희생하는 어머니의 전형일 것이다. 

   이 연극의 뼈대를 이루고 있는, 그 중심을 이루고 있는,
   그래서 사회의 변화만큼이나 빠르게 흘러가는 전체 이야기가 마치 표류라는 위태한 상황을 겪지 않게 중심을 잡아주고 있는,

   즉, 전체 이야기의 중심을 잡아주고 있는 페르소나는 내가 평가하기로는 바로 주인공의 아내 이순님이라는 캐릭터이다. 

   그 역할을 그 모습 그대로 소화해낸 배우의 연기에 이 연극에서 느낀 나의 감동을 묶어 찬사를 드리고 싶다.
  
3. 나의 기억과 추억을 공유하지 못한다면...
   2012년 연극을 늦게 보기 시작해서 그렇겠지만, 역시 오랜만에 연극다운 연극을 봤다.
  
   간혹 그런 생각을 한다.
   누구에게나 정말 찬란한 햇빛처럼 빛나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나역시 투명하기만 했던 아름다운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시절의 소중한 기억을 함께 공유하는 사람이 있다.
   그 기억이 공유되기 때문에, 그 기억을 함께했던 이들이 이 세상에 함께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추억이라 말한다.
   내가 이 세상에 내 존재가 있다고 얘기할 수 있는 것은 내 기억과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같이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생물학적으로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은 정작 내가 살아 있다거나 죽었다거나를 평가하는 아무런 기준도 되지 못한다. 
   이 세상에 나의 아름다운 기억과 추억을 공유할 사람이 남아 있지 않다면  그것이 곧 나에게는 죽음의 선고일 것이다.
  
   바로 그런 생각 때문에 연극의 말미에 펑펑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어느덧 새로운 만남보다는 떠나보내는 것에 익숙해야 할 나이에 접어들고 있다.
   바로 그런 새로운 인생의 단계에 접어드는 초입에서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어준 이 연극에 감사드리고 싶다.

 

 <무대와 객석 모두 너무나 훌륭했던 남산예술센터 공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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