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 나에게 보내는 편지

2013. 3. 24. 22:384. 끄저기/끄저기

나 스스로도 항상 생각하기도 하고, 안주인께서 지적해 주시는 나의 문제점 중 하나는 '대중적인 안목의 부족'이다. 


사실 '대중적인 안목의 부족' 자체는 내가 생각하기에 그다지 심각한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나 자신의 색깔이 명확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대중적인 안목마저도 부족하다면 그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더더군다나 뭔가 스스로 창조해 내고자 하고, 그렇게 창조한 창작물을 대중이 소비해주기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대중적인 안목의 부재 + 자신의 색깔 부족'은 치명적인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지금의 나는 뭔가 창조적인 일에 생업을 걸고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이를 동경하는 사람으로서 

안주인께서 지적한대로 '대중적인 안목을 훈련시키는 것'과 같은 기본적인 마음자세는 갖추어야 하는게 맞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인터넷 서점에서 베스트 셀러 순위권의 책들을 구입하게 되었다. 

물론 차마 구입하지 못한 책들도 있지만,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는지 알아가는 연습을 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이 책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이렇게 구입한 책들 중의 한 권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이러한 선택에 정말 감사하고 있다.




1. 흥미진진한 이야기


    이야기는 절도를 저지르고 도망가던 세 명의 친구들이 폐가로 남은 잡화점에

숨어들면서 시작된다.

이들은 잡화점에서 뜻밖의 고민상담 편지를 받게 되고, 그 고민에 대한 답장을 쓰게 된다. 그 후 이들은 그 고민상담 편지가 과거로부터 왔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자신들의 답장 역시 과거의 고민상담자에게 전달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연히 고민상담사가 되어버린 이 미래의 세 청년은 모두 그저 그런 밑바닥 인생을 사는 인생이었지만, 자신들이 누군가의 고민에 답을 주고 그 답을 받은 사람들에게 소중한 힘이 되어주고 있다는 사실에 기쁨을 느낀다.

    

이로부터 이야기는 나미야 잡화점에 숨어든 세 명의 절도범, 그리고 나미야 잡화점에 고민편지를 보낸 여러 상담자들 중에서 비중있게 다뤄지는 다섯 명의 상담자, 

실제 과거에 나미야 잡화점에서 상담을 시작한 잡화점의 주인 아저씨와, 고민 상담자의 주변 인물들이 얽히고 설키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등장인물들로부터 얽혀드는 이야기들은 조금도 흐트러지거나 복잡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각각의 이야기들은 한 명의 작가 머리에서만 추출되었으리라고는 도무지 믿기지 않을만큼 저마다 선명한 자신만의 색깔을 유지하고 있으며, 따라서 이야기는 내내 정갈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 정갈한 이야기 하나하나가 저마다의 기승전결에 충실하다보니 

책 하나에 여러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퍼져나갔다가 모였다가, 다시 퍼져나갔다가 다시 모이는 형국을 갖추면서  

맑은 밤하늘에 화려한 불꽃놀이를 보는 듯한 느낌까지 불러일으켰을 정도였다.  

 

    

2. 감동이 있는 이야기.

 

    하지만 정말 이 작품을 높이 사고 싶은 이유는 상상력 풍부한 소재를 채용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전개시켜나가면서도 놓치지 않은 인생에 대한 작가의 진지하고도 따뜻한 시각에 있다. 

어찌보면 우리와 정서적으로 비슷한 일본의 이야기다보니, 그만큼 공감의 폭도 크게 느껴져서인지 모르겠지만, 가족에 대해 고민남, 고민녀들이 느끼는

고민들은 내 주변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으리라고 생각될만큼 공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책을 읽어내려가면서 고민상담자들의 고민에 어떻게 대답해 줄것인가를 나름대로 고민해보기도 하였다.

물론 나는 카운슬러로서는 함량미달이라는 것을 느끼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러한 노력이

누구에겐가 자신들이 도움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을 느꼈을 때 세 명의 절도범들이 느꼈을 보람을 함께 느끼게 해주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 나로서는 아주 사소한 것 하나만을 나누어주었을 뿐인데,  그것이 누군가에게 큰 위안이 될 수 있다는 사실

- 어찌보면 너무나도 당연하게 알고 있을 것만 같은 사실 - 을 알게 되었을 때 느낌은 정말 인간이라는 정체성 자체에 공명을 일으킬만큼

큰 기쁨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새삼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잠시나마 그런 큰 기쁨을 다시 머릿속에 떠올리고, 느낄 수 있게 해 준 이 글의 작가분께 감사를 드리고 싶다.

 

    

3. 나에게 쓰는 편지. 

 

    이 책을 읽는 동안,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나서, 30년 후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편지를 쓴다면 어떤 편지를 쓸 수 있을까를 고민해보게 되었다. 

어느날 집에 들어오는데 아파트 우체통에 정체모를 편지가 한통 꽂혀 있었다.

그런데 그 편지는 30년 후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다라고 가정했을 때, 그 편지에는 과연 어떤 내용이 씌어져 있을까?

과연 그 내용을 지금의 나는, 설령 그 편지가 30년 후의 나에게서 왔다는 것을 추호의 의심없이 인정하면서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한편 내가 지금 20년 전 내게 편지를 쓴다면 어떨까?

과연 나는 스무살을 시작하는 내게 어떤 얘기를 해 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정작 나는 내 고민이 무엇인지를 구체화하는 일조차 하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문제의 현상과 그 원인이 정확히 분석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고 나 역시 머리로는 이를 잘 알고 있으면서도  

정작 나는 그동안 나 자신의 고민에 대해 너무나도 관대해 왔거나 또는 방치해 왔던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나 역시 이 책의 고민남, 고민녀가 그랬듯이 나 자신의 고민을 한 번 적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고민에 대해 설령 나 스스로가 상담을 해준다 하더라도 마치 제 3자에게 이야기하듯 배경과 이유들도 좀 더 구체적으로 기술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이 책의 모든 등장인물들도 선택은 자신이 하고 그 선택에 스스로 당당해하지 않았던가?

바로 그것이 나미야 잡화점이 만들어낸 기적이 아니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