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1. 24. 18:34ㆍ4. 끄저기/끄저기
책을 읽고나면 반드시 서평을 쓰리라고 맘먹은게 4년 전이었다.
그리고 올해 초부터는 서평을 만화로 한 번 그려보리라는 생각도 했었고 실제로 최근 몇 편은 만화로 그려보기도 했다.
그런데 만화라는게 쉽게 그려지는게 아니다보니, 서평을 쓰지 못한 책들이 점점 쌓여만 간다.
마지막으로 서평을 글로 쓴게 6월 말이니 벌써 5개월이 넘어가는 셈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만화로 그리는 서평이 나름 개인적으로 의미가 있긴 하지만,
글로 쓰는 서평 역시 그에 못지 않은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5개월만에 쓰는 글이라서 그런지 뭘 어떻게 써야 할지 도무지 감을 잡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림과 마찬가지로 글이라는 것도 쓰지 않으면 퇴보하게 마련인가보다.
5개월의 공백이 어떻게 글을 시작해야 할지를 고민할 정도로 나를 퇴보시켰으니 말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정글만리'라는 그 유명한 작가의, 유명한 베스트 셀러의 서평을 쓰자고 자리에 앉아있는 지금, 글이 선뜻 써지지 않는 것은 단순히 5개월의 공백때문만은 아닌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 책 '정글만리'를 도대체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도저히 모르겠어서 고민에 고민을 지속한지 한 주가 지났다.
그리고 이젠 써야 할 것 같고, 그냥 나 자신에게 솔직해 지기로 했다.
1. 조정래 장편수필 '정글만리'
정글만리는 '소설'이 아니다.
이건 그저 작가 조정래 선생님께서 쓰신 경수필이다.
붓 가는대로 쓴다는 그 수필 말이다.
다만 조정래라는 거대한 이름 탓에 멋진 표지와 띠지를 두른
베스트 셀러가 될 수 있었던 것 뿐이다.
이 책이 마치 '소설'인양 포장하고 있는 여러 요소중의 하나가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있다는 것이다.
상사 주재원들, 중국에 진출해서 기업을 운영하는 한국 중소기업 사장님들,
한국 유학생들, 한국인 성형외과 의사, 한국계 미국인 건축가, 프랑스 명품기업 주재원,
중국계 미국인 사업가, 한국인들과 꽌시 관계에 있는 중국 공무원들, 농민공 등등...
그러나 이들은 조정래 선생님께서 다양한 관점에서 중국이라는 나라를 설명하기 위해 등장시킨 소품에 지나지 않는다.
유감스럽게도 여기에서 방점은 이 인물들이 아닌 '중국에 대한 설명'에 있기 때문이다.
방점이 설명에 있다보니 대사는 대부분 설명투로 구사될 수밖에 없고 설명투로 구사되다보니 대사는 길어지고 대사가 길어지다보니 사건은 약해진다.
만연한 설명에서 허우적거리다보면 어느덧 책은 3권의 막바지에 다다르게 되고,
한국인 유학생과 연인관계인 중국여학생의 행복한 모습과 함께 3권이 덮어진다.
여기서 절대 맨붕을 겪지 않으려면 책을 펼치기 전부터 미리 알고, 인정하고 있으면 된다.
이건 '소설'이 아니라, 기행문, 설명문, 논설문이 어우러진 조정래 선생님의 '수필'이라는 사실 말이다.
이 글을 조정래 선생님의 '수필'이라고 인정하면 비록 책을 덮는 시점의 맨붕은 사라지겠지만, 또 하나의 씁쓸한 느낌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수필은 허구를 기반으로 하는 '소설'과는 다른 장르이고 그대로 작가의 생각이 붓에 묻어나오는 장르이다.
따라서 이 수필에 등장하는 수많은 중국의 평가는 바로 조정래 선생님의 가치기반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중국에 대한 평가를 통해 유추해볼 수 있는 조정래 선생님의 가치는 고작 이광요 류의 동아시아적 가치 운운하는 수준 이상도 이하도 아니거나,
대국 컴플렉스에 빠진 영원한 사대주의 소국가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고등학생 때 소설 '태백산맥'의 압도적임 힘이 내 가치관의 일부를 형성하던 시절.
그리고 벌교 태백산맥 문학관에서 본, 내 키를 넘어서는 육필 원고를 통해 나를 압도하던 그 조정래 선생님이 아니었다.
"중국에 대한 자연인 조정래의 평가는 옳을지 모르지만, 중국에 대한 작가 조정래의 수필은 형편없다."
조정래 선생님께서는 늙지 않으셔야 할 부분이 늙으신것 같다.
2. 진정한 중국을 기다린다.
G2, 그리고 G1.
이 책에는 시종일관 향후 10년 내 G1에 등극할 중국을 이야기하고 있다.
도대체 여기서 'G'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했는데 전반적인 맥락에서 결국 의미하는 것은 GDP 정도일 것 같다.
결국 미국 제치고 세계에서 최대의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나라가 된다는 의미 말이다.
그게 그렇게 가치있는 것이라면 난 중국이 하루 빨리 G1이 되길 바라고
IMF가 예견했듯, 그리고 수필가 조정래씨께서 예견하시듯 빨리 그 때가 되길 바란다.
나는 중국이 여전히 똑똑한 공산당원들에 의해 유지되어나가고 공안들에게 정갈하게 통제되어나가길 바란다.
내가 중국이라는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나와 같은 하나의 인격체로 인정할 이유가 없으며
그저 우리나라의 1위 상대 교역국으로서 물건 팔고 돈받으면 그만인 그런 상대에 지나지 않는다면 나는 그들이 하루 빨리 G1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그걸 위해서 얼마든지 내 젊은 시절 학습의 상당부분을 차지했던 중국에 대한 지식들을 기반으로 그들을 기쁘게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정말 그게 중요한 걸까?
그건 외국귀빈들 행여 역겹지 않으시도록 음식쓰레기 버리는 날을 통제해서 국격을 높였다고 자랑하는 명박이와 다를바 없는 천박하기 그지 없는 생각이다.
정작 G1은 'Great No.1'또는 'Giant No.1'으로 인정받았을 때 가치있는 것이며, 그건 수치로만 달성되는 것이 아니다.
과연 중국은 'Great No.1'또는 'Giant No.1'이 될 수 있을까?
중국은 위대한 역사와 문화를 가진 나라이고, 동아시는 물론 세계에서도 첨단에 섰던 경험이 가장 많은 나라이다.
조정래 수필가께서는 중국은 황금만능주의와 정경유착, 절대권력의 부패 속에서도 신기하게 잘 돌아가고 있다고 반복적으로 언급하고 있으며
그게 바로 중국이라고, 이 지점에서 마치 중국이 뭔가 새로운 미래사회 모델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라고까지 생각하시는 것 같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러한 모습은 중국이라는 나라가 유구한 역사속에서 내내 경험해온 첨단의 모습이 아니다.
이미 선진국이라는 나라들이 옛날에 다 경험한 모습에 지나지 않으며,
중국의 역사만큼이나 유구한 인간의 역사는 민주주의가 수반되지 않는 자본주의의 붕괴라는 여지없는 법칙을 증명한지 오래이다.
앞서 조정래 선생님께서 늙지 말으셔야 하는 부분이 늙으신것 같다고 평가한 것은
이제는 혜안조차도 필요치 않은 이러한 당연한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서양의 유산이 아닌 인간의 유산이다.
인간은 누구나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가지며, 그 권리는 권력이나 재력에 의해 제한되거나 훼손될 수 없다.
서양은 이러한 원칙에 3권분립이나, 투표와 같은 제도화된 수단을 붙여 구체화했을 뿐이다.
문제는 이걸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있고, 이걸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마치 민주주의 가치가 서양의 가치인양 매도한다는 데에 있다.
나는 중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다만 중국이라 불리는 이 행성의 한 구역(꽤 넓은 구역)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이런 저런 많은 생각이 든다.
그 사람들은 내가 한 인격체로서 존중받길 바라고, 대우받길 바라듯이 존중받길 바라고 대우받길 바라는 주체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아직 한참 모자르지만, 아니 심지어 퇴행하고 있지만,
그 지역의 사람들이 하루빨리 서로를 존중하고 대우해주는 주체로서 자각하길 바란다.
그것은 중화주의를 외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외칠때 달성 가능한 것이다.
아마 그 지역에 있는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항상 첨단에 선 경험을 집단의 원형으로 가지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비록 지금은 혼돈스럽지만, 오히려 우리나라보다도 훨씬 빨리 서로를 존중하고 대우하는 사회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진정한 중국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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