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누적

2023. 2. 5. 15:024. 끄저기/끄저기

청소를 마친 든든집, 목욕을 마친 하니

아침부터 부산을 떨었다. 

 

설거지를 하고

옷을 정리하고

이불을 탈탈 털어 접었다. 

 

이불 중 깔개 하나는 세탁기에 넣어 돌렸다. 

 

크리스마스트리를 접어 넣었다. 

어렸을 때부터 천주교 영향을 받고 자라서

나는 지금도 

크리스마스 이브에 트리를 세우고 그로부터 40일이 지난 예수봉헌대축일 즈음에 트리를 걷는다.

 

20여 년 동안 크리스마스 트리를 담아온 종이 박스는

온통 너덜거리는 몸통에 청테이프와 비닐 테이프를 가득 감고 있다.

새로운 비닐 테이프를 촘촘히 감아 일년 더 버틸 임무를 주었다. 

 

물티슈로 탁자, 책장, 싱크대, 문, 전기 스위치 등 먼지가 앉을 만한 곳을 닦아내고 

현과문과 창문을 활짝 열었다. 

 

화장실에 들어가 고무장갑을 끼고 

세면대와 변기, 화장실 바닥과 낮은 벽에 락스를 뿌려 닦아냈다. 

 

바닥을 차지하고 있는 러그와 걸레를 걷어내고 

하니 밥그릇, 물그릇, 집과 계단, 체중계를 적당한 곳에 올려 치운 후 

진공청소기를 돌렸다. 

 

진공청소기의 쓰레기통을 비우는 것으로 

종량제 봉투를 채우기 시작했다. 

 

오늘은 버려야 할 쓰레기가 제법 많았다. 

영수증과 청구서를 비롯한 이런저런 문서들을 파쇄했고

헌 신발과 옷가지도 버려야 했다. 

 

그 덕에 5리터짜리 종량제 쓰레기봉투가 가득 찼다.

 

여유 없이 꽉 들어찬 쓰레기 봉투 때문에 괜히 마음이 좋아졌다. 

 

물걸레질을 하고 

모아둔 재활용 쓰레기와 일반 쓰레기, 음식 쓰레기봉투를 들고 나가 정리했다. 

 

여전히 차가운 기운이 느껴지긴 하지만 그래도 매운 기운은 가라앉은 공기를 느끼며 

하니를 데리고 나가 단지를 한 바퀴 돌았다. 

 

더개행개 - 더러운 개가 행복한 개다.

 

하지만 오늘은 목욕을 시켜야 했다. 

행복을 좀 덜어낸 보답으로 뽀송뽀송 말린 후 개껌을 자르지 않고 크게 한 덩이 줬다. 

 

이제 다 됐다. 

 

커피 마셔야지.

오늘의 커피는 예멘 모카 마타리.

 

손에 든 머그잔에 내 50년 누적된 일상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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