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별자리 이야기/BABYLONIAN STAR LORE

바빌로니아 별자리와 천문전승 - 별자리 상세 13. 닌마흐자리

다락방별지기 2025. 6. 8. 14:29

'고귀한 숙녀' 닌마흐(Ninmah)는 그 이름보다 훨씬 더 높은 신성을 가진 신입니다.

바빌로니아 전통에서 닌마흐는 수많은 '여신들의 어머니'이며 '여러 신의 연인'인가 하면 '하늘과 땅의 창조에 상당한 지분을 가지고 있는 여신'입니다.

 

바빌로니아의 자료를 보면 닌마흐자리의 위치는 남쪽 하늘, 뱀자리사자자리 아래입니다. 

이를 고대 그리스 별자리에 대비해보면, 아르고자리에서 가장 동쪽에 있는 별들 사이에 위치해 있었을 것입니다.

(번역자 주 : 이탤릭체로 표시한 별자리는 고대 그리스 별자리가 아닌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별자리를 말합니다.)

 

닌마흐의 본질적 성격을 어머니 여신으로 확신할 수 있고, 별자리 형상에서 '어머니'라는 테마와 연관된 내용이 있을 것으로 상상할 수 있겠지만 바빌로니아 자료는 닌마흐자리의 형상에 대해서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습니다.

 

다행히도 이집트 덴데라(Dendera) 신전의 원형 황도대에 닌마흐의 모습으로 수긍할만한 그림이 있습니다.

여기서 닌마흐는 아이를 안고 왕좌에 앉아 있는 여신의 모습으로 묘사됩니다.(그림 1)

그림 1 덴데라 황도데(the Dendera Zodiac)에 그려진 닌마흐로 추정할 수 있는 그림

 

모든 자료에서 닌마흐를 모성애 및 아이와 연결시키는 방식은 '생명을 선물로 주는 분, 닌마흐의 별'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닌마흐는 산파의 수호자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산파는 탯줄을 자르고 아이의 운명을 결정하며, 대개 안전한 출산을 보장하기 위해 출산현장을 지키는 이들입니다. 

마찬가지로 닌마흐는 인류의 산파로서 자연스럽게 임신한 여성의 수호신이 됩니다. 

 

만약 세그메가르(Sagmegar, 목성)가 고귀한 여신에게 다가가면

임신한 여자들과 그 태중의 아이들은 죽고 말 것이다.

 

신화에는 닌마흐가 갇혀 있는 아이를 위해 한탄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비록 신화의 내용만으로는 닌마흐의 아이가 왜 납치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그 아이가 무사히 돌아온다고 해도 닌마흐가 겪고 있는 고통은 산통을 겪는 여인을 수호하는 여신으로서의 신성을 만든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유사한 내용이 갓 태어난 아이가 어떤 악이든 피해갈 수 있도록 닌마흐에게 탄원하는 기도문에 등장합니다. 

닌마흐자리는 '물 닌-마흐(Mul Nin-mah)'로 표기합니다.
'닌(Nin)' 표기는 대상이 '여성'임을 나타내는 표기입니다.
이 표기는 기본적으로 '숙녀' 또는 '여왕'을 의미합니다.
이 표기는 여신 이름 앞에 가장 많이 사용되며 대단히 드물긴 하지만 남자 신의 이름에서도 발견됩니다.


비록 기원은 알려져 있진 않지만 '마흐(Mah)' 표기는 '고귀한, 가장 상급인, 최상의'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표기가 남자의 성기를 묘사한 것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닌마흐와 관계된 예언은 주로 어머니와 자녀 및 그 가족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맥락이 확장되어 닌마흐는 모든 창조물의 어머니로 간주되며, '야생 동물의 여주'라 불리기도 합니다. 

특히 그 새끼들은 닌마흐의 특별한 보호 아래 있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만약 이상한 별(화성)이 닌마흐자리에 접근한다면

어린 짐승과 인간들은......

 

위 예언은 나머지 내용을 알 수는 없지만 화성이 등장하는 대부분의 예언이 그렇듯이 부정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을 것입니다. 

 

야생의 여신으로서 닌마흐는 '초원의 숙녀'인 닌후르사가(Ninhursaga)라는 정체성이 있습니다. 

후에 닌후르사가는 왕과 국가의 후원자로 숭상되죠. 

닌후르사가의 정체성을 띤 그녀의 예언은 왕의 운명에 대한 것입니다.  

 

만약 사그메가르(목성)

고귀한 여신자리(닌마흐자리)를 감싸고

그 주변에서 번쩍인다면

왕은 죽게 될 것이다.

그림 2 어머니 여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숭배자들 

 

닌마흐는 임신한 여성의 수호신을 넘어, 인류의 창조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인간 창조 전승을 기록한 신화들이 있습니다. 

아래 단락은 <엔키와 닌마흐(Enki and Ninmah)>라는 제목의 수메르 서사시에서 파생된 이야기로서 창조신화의 주류로 다뤄지는 이야기입니다. 

 

아주 오래전 하늘과 땅이 처음 갈라졌을 때

신들은 스스로 일하고 식량을 조달해야 했다.

 

아눈나키 최고 신들의 엄격한 감시아래

낮은 지위의 이기기 신들은 

운하를 파고 도시를 건설하는

고된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이 와중에 불만이 쌓여가고

반란의 기운이 타올랐다.

 

가장 현명한 신 엔키는 이를 막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엔키는 '검은 머리(인간을 말함)'라 이름 붙인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

신 대신 그들에게

고된 노역을 지울 생각이었다. 

 

아눈나키의 어머니 남무(Nammu)는 

검은 머리를 창조하는 엔키를 돕기 위해 

압주 천정에서 점토(Im)를 떼어왔다. 

산파의 여신들이 점토로 인간을 빚었다. 

 

이렇게 빚어진 점토에서 첫 번째 검은머리가 탄생했다.

남무는 검은머리에게 '근본적 운명'을 선포했다.

 

그것은 검은머리가 신의 간섭에서 벗어나

스스로 번식하여

후손을 만들도록 허락한 것이었다. 

 

남무의 조력자였던 닌마흐는

검은머리에게 고된 노동의 운명을 지웠다. 

검은머리는 신전을 짓고 제사를 지냄으로써

신에게 봉사해야 했다. 

 

이 이야기는 술에 취한 닌마흐와 엔키가 점점 심각한 장애를 가진 인간을 만들고 그들에게 운명을 지우는 것을 경쟁하는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번역자 주 : 저자가 <엔키와 닌마흐(Enki and Ninmah)>라는 제목으로 소개하고 있는 신화는 간추려진 것입니다. 같은 내용으로 원문에 보다 충실한 내용 조철수 선생님의 저서 <수메르 신화>에 '사람이 태어난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등장합니다. 전문은 링크를 참고하십시오.)

 

물론 이 신화를 뒷받침하는 주요 소재는 진흙으로 신상을 만드는 오래된 관습입니다. 

그림 3 별자리 그림으로 재구성해본 닌마흐의 모습

 

메소포타미아 전역에서는 임신한 여신을 조각한 작은 입상이 많이 발견되었습니다. 

그 시기는 신석기시대 초기까지 올라갑니다. 

 

인간은 점토를 이용하여 여러 신상을 만들어왔습니다. 

위 이야기에서 신이 점토로 인간을 빚었다는 것은 이러한 관습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이야기 중 '점토'라고 번역한 수메르어 '임(Im)'은 '점토서판'을 비롯한 폭넓은 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산파 여신들이 인간의 운명을 점토판에 기록하는 행위로써 인간의 운명을 설정했다는 것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전승에서 신의 업무와 권능을 기록했다고 전하는 이른바 '운명의 서판(the Tablet of Destiny)'과 상당히 닮았습니다 

 

또한 수메르어 '임(Im)'이 '바람' 또는 '숨결'이라는 의미를 가진다는 것에도 유의해야 합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전통에서 숨결은 '영혼의 본질'이었습니다. 

이는 신화에 숨겨진 그 이상의 뜻을 헤아릴 수 있는 단서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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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자 주석
1. 이 글은 천문작가 Gavin White의 책으로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별자리와 천문전승을 담은 에세이집 Babylonian Star Lore (ISBN-13 : 978-0955903748)를 번역한 것입니다. 

2. 동일한 이름의 별자리라도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별자리는 '이탤릭체'로 표시하였으며 고대 그리스를 기반으로 하는 현대 별자리는 Star Tales의 글을 링크로 달아 구분하였습니다.
3. 본 글은 저자의 허락을 받아 포스팅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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