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로 포장하기

2007. 7. 21. 17:234. 끄저기/끄저기

어려서부터 독실한 가톨릭 신앙의 영향을 받고 자라온 나는

한국에서 천주교가 싹트기 시작한 초기 순교의 역사를 줄곧 교육 받았다.

 

지금 생각해도 끔찍하기 그지 없는 고문, 처형 장면들을

만화로, 영화로, 그리고 절두산과 같은 순교지에서의 전시실에서 항상 접했고,

거기서 내가 몸담고 있는 종교의 위대함을 느끼며 살아왔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그것들이 전부는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어찌보면 '변절'이고 '냉담'이겠지만,

자신이 믿는 절대신앙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겠다는 신념은

단지 내가 속한 종교뿐만 아니라, 종교라는 가치를 표방하는 모든 신념체계에

똑같이 존재하고 있었고, 그래서 내가 가지고 있던 신념을 제 3자의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 천주교의 초기 역사에서 많은 순교자들이 배출된 것도

잘 생각해보면 종교 자체의 문제를 뛰어넘는 문제가 있었다.

 

누구나 알듯이 당시 조선은 주자 성리학이 국가의 통치이념이었고

그 중 '효' 사상은 꼭 성리학이 아니라 하더라도

사회기강의 으뜸이 되는 규범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효 사상을 생활에서 구현하는데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조상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행위였다.

 

하필 조선에 초기 천주교가 싹트기 얼마전부터

로마가톨릭의 해외 선교 주도권이 현지적응적 선교방식을

채택하고 있었던 '예수회'에서 교조적인 성격으로 유명한 '도미니꼬회'와

'프란치스꼬회'로 넘어가게 되면서 조선의 조상제사 습관은

이교도의 행위로 치부가 되게 되었고 이 서한은 즉각 조선으로 통지되었다.

 

초기 서학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대체로 학자이며, 양반 계층이었는데

당연히 반발이 발생할 수 밖에 없었다.

어떤 사람은 서학을 떠났고, 어떤 사람은 이도저도 못했으나

일부는 이를 그대로 수용하고 '신주'를 불태우기에 이르른다.

 

여기서 '윤지충'과 '권상연'이 체포되어 처형되고

한국 가톨릭의 두번째 순교자로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이후 조선 사회에서 천주교는 조상을 모르는 것들로, 사악한 집단으로 낙인찍혔다.

남녀와 신분을 가리지 않는 종교 모임은 추잡하고 난잡한 모임으로 간주되었고

성체성사는 인간의 피와 살을 뜯어먹는 흉악한 예식으로 간주되었다.

 

늘 그렇듯 초기 박해는 이유가 있었고,

이게 반복되면서 소문이 더해지고, 그래서 더더욱 가증스러워지고,

그렇게 살육의 역사가 100년을 넘게 이어오게 된 것이다.

 

나는 간혹 생각한다. 과연, 당시 예수회의 현지적응적 선교 방식이 여전히 영향을 발휘할 수 있었다면

이와 같은 일은 피해갈 수 있었을 것이다.

나를 더욱 어이 없게 만든건 지금의 천주교 신자들은 약간 형태를 달리하긴 하나

제사를 지내고 있다는 것이고,

교황청에서 제사 의식을 문제삼지 않게 된 계기가

일본의 선교에서 '신사참배'라는 걸림돌을 피해가기 위한 것이었다는 점이다.

 

천주교의 순교의 역사는 자랑스러울지 모르나

오늘날 그러한 behind스토리를 아는 사람은 아니, 알고자 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천주교는 한국 사회에 무난히 자리잡았고,

수많은 순교자 중 103위의 성인이 선포되면서 세계 가톨릭계에서

무시못할 숫자의 성인을 보유하게 되었으며(아마 내 기억으로 4번째던가...)

당시 조선의 상황이 워낙 피폐했고, 근대화에 실패했던지라

천주교에 대한 역사적 평가도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어제부터 뉴스가 무척 시끄럽다.

분당 샘물 교회에서 파견한 한국인이 아프카니스탄에서 피랍을 당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 한국군 철군 요구시한은 지났고,

이 시간 같은 하늘을 공유하는 이 지구상 어딘가에서 그 사람들은

내가 상상하지 못할 고통과 맞서고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사람들이 선의의 의지로 그러한 오지에서

당당히 젊음의 한때를 지내는 것이 부럽기까지 하고,

아무쪼록 모두 무사히 한국으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길 바란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유서'까지 써가며

꼭 그곳으로 가야 했던 것에 대해 그들이 소속한 분당 샘물교회 측에는

분노를 금할 수가 없다.

 

아마 그 교회의 최고 책임자나

아프카니스탄 파견을 기획했던 사람들이

'선교'와 '봉사'를 하다가 '죽더라도 문제될 것이 없다'는

의식을 가졌던 건 아닐까?

아니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순교'라는 엉뚱한 가치로 포장해서 바라본 것은 아닐까?

 

아마 이러한 느낌을 대체로 공유하는지

이미 온라인 상에는 교회 측과 이젠 보통명사가 되어버린 '개독교'를 비난하는 글이

넘쳐나고 있다.

 

나는 무엇보다도 이들의 무사귀환을 바란다.

그리고 이후부터 '사람의 생명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순교'라는 엉뚱한 가치로 전환하면서

뭔가 위험스러운 행동을 기획하는 짓은 되풀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순교'라는 것은 팔레스타인에서 몸에 폭탄을 감은 어린 소년에 의해서도

이루어지는 것이고,

그 죽음을 순교로 만드는 것은 죽음 자체가 아니라,

그로 인한 영향을 향유할 다른 사람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인질로 잡힌 모든 한국인들의 무사 석방 및 귀환을 기원합니다.

당신들의 신께도, 나의 신께도 기도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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