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10. 5. 13:23ㆍ4. 끄저기/끄저기
이미 익히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리처드 도킨스는 리처드 도킨스 교의 교주이다.
리처드 도킨스를 교주로 표현하는 것은
기성종교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진화론에 대한 적극적인 옹호에 대한 종교인들(혹은 종교에 경도된 이들)의 경멸과 함께
과학에 대한 옹호자로서 최전선에 선 저자에 대한 찬사이기도 하다.
어쨌든, 이 책을 읽으며 느낀 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이 책의 표지에 적혀 있는 "신의 존재를 의심하라, 인간의 능력을 주목하라" 라는 선언성 문구는
오히려 리처드 도킨스의 의지를 잘못 표현하고 있는 듯 하다.
마치 리처드 도킨스의 주장들이 '신 자체의 부정보다는 인간의 가능성에 대한 찬사'에 있는 듯한 교묘한 표현인 것이다.
책을 보면 알겠지만 리처드 도킨스는 이러한 표현들을 더더욱 경멸한다.
리처드 도킨스의 방점은 분명 앞 문구에 있다. 그의 사상은 "종교와 신의 부정!!!"그 자체이고, 바로 이것이 이 책을 가치있게 만들고 있다.
둘째. 이 책도 그렇고 앞서 읽었던 '악마의 사도'도 그렇고,
이 책들을 통해 미국과 영국 사회에서는 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쳐야 하는지 마는지',
'창조론을 진화론과 동일하게 가르쳐야 하는지 마는지' 따위가 논란이 된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전혀 안 그럴거 같은 서구 사회에서, 더더군다나 18세기~19세기 과학적 발견과 발명을 선도한 이 두 나라에서
'지구의 나이' 따위가 논란이 된다는 점은 아이러니 그 자체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접한 '시키는 대로 준수하는' 외국 사람들의 성향을 볼 때 가능하리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극성으로 따지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우리 나라 개신교 신자들이 동일한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기특하기도 하다.
하긴 야네덜은 주님대신 미국을 섬기는 종교이긴 하지만.
셋째. 진화론에 대한 저자의 넘치는 자신감이 인정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중학교, 고등학교 과학시간에 접해왔던 진화론을 정말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나의 경우는 운좋게도 대학 1학년때 교양과학으로 선택한 '생물' 수업을 통해 진화론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전적으로 교재와 선생님의 강의 덕택이었다. 만약 이러한 경험이 없었다면,
나 역시 진화를 '종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발전'정도로 착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참고 : 진화에 대하여 올바로 이해하고 있는가를 자가 진단하는 방법은 '진화론이 열역학 제2법칙에 위배되지 않는 사유'를 진술할 수 있으면 된다.)
넷째. 리처드 도킨스의 글들을 통해 '무신론자'라는 말 자체에 대한 나 자신의 무의식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좋은 감정은 아니었고, 내 탓을 피하자는 건 아니지만 이러한 왜곡된 감정을 나스스로 만든건 아닌 것 같다.
아마 무의식 중 많은 경우에 '신을 인정하지 않음'을 '교만한 인간'으로 등식시키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한편 사회 구성원 중 지식층에서 '무신론자'가 많다는 리처드 도킨스의 말에 혹하긴 하지만, 나는 무신론자는 아니다.
리처드 도킨스의 구분을 빌자면 '불가지론자' 정도가 될 것이다.
나는 간혹 지구라는 실험실에서 살아가는 생명체의 다양한 경험을 전사하여 DataBase를 구축하고 있는 고도로 발달된 과학문명이
황소자리 플레이아데스 성단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
(플레이아데스 성단을 우리나라 말로는 '쫌생이 별'이라고 부르니 잘 다듬어서 '쫌생이 교단'이나 만들어 볼까나~)
다섯째. 과학의 성과를 유난히 향유하고 있는 현재의 세대는 유달리 과학에 대해서 회의적이기도 하다.
과학은 밝히는 학문이고 밝혔다면 검증받는 학문이다.
이에 반해 종교는 밝히긴 하나, 검증을 허용하지 않는다.
바로 여기에 과학의 위대성이 있다. 리차드 도킨스는 내내 이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과학이 종교와의 대척점을 이루는 지점이 바로 이것임에도 불구하고
일반인들의 의식에는 여전히 '절대성에 반항하는 인간의 교만'정도로 과학을 평가하는 것 같다.
(이것도 역시 종교가 만들어낸 허식 중 하나일 뿐이겠지.)
마지막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문구는 마크 트웨인의 말로서 인용된 다음의 문구이다.
"나는 죽음이 별로 두렵지 않다. 나는 태어나기 전 영겁의 세월을 죽은 채로 있었고, 그 사실은 내게 일말의 고통도 준 적이 없다."
어떤 경우든 저자가 원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만약 종교를 제대로 믿는 사람이라면 이 정도 책 쯤은 읽을 것이라 생각한다.
반면, 종교를 삐딱하게 믿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금서'나 교만한 인간의 낙서 정도로 치부할 것이다.
아마 대부분이 후자가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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