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리의 조국 버어마를 위하여.

2007. 9. 27. 13:134. 끄저기/끄저기

 시민과 승려가 하나된 시위 장면 ⓒ블로그 http://niknayman.blogspot.com

 

 

 

2005년 프로젝트로 인도에 출장가 있었을 때 있었던 일이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마련해 준 아파트에서 생활하고 있었는데,

4명이 머무르고 있었던 아파트에는 우리 나라로 치면 파출부 역할을 하는 아이들이 한 명 씩 있었다.

 

게중에는 인도 아이들은 거의 없었고, 주변 국가인 네팔에서 온 열 다섯살 남짓의 어린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학교에 가야 할 나이...그런 건 분명 사치였을게다.

 

아파트에서 일을 도와주는 아이들은 대부분 여자아이들이었다.

음식은 게스트 하우스에서 식사 때마다 들러서 훈련된 솜씨로 한국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들이 별도로 있었고

이 여자아이들의 일이란 아침에 각 방에 두고 온 빨래거리를 수거해서 빨래를 하고, 방을 청소하고,

빨래가 마르면 다리미질을 해서 다시 방에 갖다놓는, 그런 일이었다.

그 외에는 우리의 시중을 드는 일이 대부분이었는데 그야말로 인도에서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학교에 가지도 못하고 이런 일을 하는 모습이 우리가 생각하기엔 불쌍해 보일 수밖에 없었지만,

(사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그닥 많은것 같진 않았지만...)

나름 얘네덜은 밝은 표정으로 같이 일하는 친구들과 함께 잘 지내고 있었던 거 같다.

 

그러던 중 우리 일을 봐주던 아이 하나가 그만두고 새로운 아이가 우리 아파트로 오게 되었다.

까무잡잡한, 우리 나라로 치면 시골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그런 인상의 아이였다.

그런데 이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 다른 모습이 하나 있었다.

 

한 번은 토요일 저녁에 평소보다 일을 일찍 마치고 아파트에 들어왔더니,

소파에 앉아 진중하게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일을 하는 아이들 중에서 책을 읽는 모습 자체를 처음 보는지라 짐짓 놀라기도 했고,

책 가득히 씌어져 있는 알파벳에 흥미가 가서,(처음에는 영어를 읽을 줄 아나보구나..해서 더더욱 놀라기도 했다.) 무슨 책을 읽느냐고 물어봤다.

 

그러고 보니 이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 틀리게 영어를 할 수 있었던 아이였다.

흠....그제서야 그 사실을 생각해 내다니.....어지간히 주변에 관심을 두지 않는 성격인지라.......

 

무슨 책을 읽느냐고 했더니, 성경이라고 한다.

책을 좀 잠깐 볼 수 있냐고 물어봤더니 선뜻 건네주는데, 글씨만 알파벳일뿐 도무지 못 알아볼 조합의 단어들 뿐이었다.

어느 나라 말이냐고 물어봤더니, '버어마' 글이라고 했다.

 

그곳에서 일을 하고 있는 많은 네팔 사람들을 봐왔지만, 버어마 사람은 처음이었다.

아~ 버어마. 아 그래 지금 미얀마지. 했더니 그렇다고 한다.

 

대화를 통해 그 아이의 이름이 '릴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처음 릴리가 나에게 그 아이의 조국 이름을 얘기할 때 사용한 단어 '버어마'라는 호칭을 통해서

릴리에게 뭔가 사연이 있지 않을까 싶어 그 쪽의 얘기들을 묻게 되었다.

 

릴리는 돈을 벌기 위해 인도에 왔다. 

남아시아에서 인도는 그 주변 국가중에서 가장 경제력이 받쳐주는 나라이고, 그러다보니 자연 그 주변 국가의 많은 사람들이 인도에 돈을 벌러 온다.

 

그리고 의외로 인도에서의 인종 차별은 상상을 넘어선다.

특히나 주변 국가, 네팔과 같은 그런 나라 사람들이 인도 사람들에게 받는 멸시는 우리나라의 인종차별을 상회할 정도이다.

오죽하면 처음 출장을 온 우리들에게 어설프게 힌두어를 배우고 쓰지 말고 영어만 쓰라는 가이드가 있었을 정도이다.

이유인 즉슨, 힌두어가 어설프면 주변 국가, 네팔이나 미얀마, 캄보디아 등에서 온 사람으로 오해받을 수 있고,

그러면 길거리에서 구타를 당할 수도 있다고 한다.

 

물론 내 눈으로 직접 누군가가 구타를 당하는 모습을 본 적은 없지만, 만일에 사고가 난다면 유쾌하지만은 않은 경험일 것이 분명하므로

수긍을 하고 철저하게 영어만을 쓰고 다녔다. (회사에서는 친분을 위해 힌두어를 배우고 쓰긴 했지만...)

 

어쨌든 릴리는 정치적인 박해나, 어떤 정치적인 신념으로 인해 '망명'을 한 사람은 분명 아니지만

자기 조국이 서슬퍼런 군부독재하에 있음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미얀마'가 아닌 '버어마'를 그리워하는 의식이 있는 아이었다.

그래서, 자신이 아웅산 수치 여사의 지지자라고 당당히 밝히기도 했던 릴리에게 우리 나라의 사례를 얘기해 주었다.

 

릴리는 아시아에서 아주 발달한 선진국으로 알고 있던 한국에서 불과 20년 전에 군부에 의해서 시민들이 살해당했다는 사실,

1987년에서야 겨우 대통령을 국민의 손으로 직접 뽑을 수 있었고, 그 와중에 큰 민중의 봉기가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러한 사실이 한편으로는 릴리에게 작은 희망이 된 듯 했고,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내겐 뿌듯한 시간이 될 수 있었다.

 

바쁜 일상이 계속됐고, 릴리는 성실히 자신의 일을 했다.

일을 워낙 늦게 마쳐서 숙소로 돌아가지 못하고 마루의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잠든 릴리의 모습을 여러번 볼 수 있었다. 

 

인도를 떠나오기 전, 릴리에게 캐시미어 스카프를 선물했다. 

릴리가 언제나 밝은 모습이었으면 좋겠고,

언젠가는 자신이 원하는 조국으로 그녀의 국가가 회복되고, 릴리 역시 가족이 있는 그녀의 나라로 행복하게 돌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추석연휴가 계속되던 지금, 버어마의 시위소식이 뉴스에서 들리고 있다. 벌써 유혈사태가 났다고도 한다.

릴리도 어디선가 이 뉴스를 보고 있겠지, 내 생각엔 여전히 인도에 남아 있을 것 같다.

 

1980년대 90년대를 지나오면서 어린 시절 들은 민주주의의 정의는, '피를 먹는 나무'였다.

 

민주주의라는 나무가 자라게하려면 그 나무에 피를 먹여야 하고,

사이비종교의 경전에나 있을법한 이런 강경한 표현하에 많은 젊은이들이 마치 순교를 하듯 스스로 목숨을 버리기도 했다.

 

어쨌든 우리 나라는 정치적으로 민주주의를 달성했고, 여전히 미약하기만 하고 불안하기만 한

이 나라의 민주주의나마 외국에서 외국사람에게 자랑거리로 얘기할 수 있는 거리가 되어 주었다.

 

버어마에서는 더 이상의 희생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물론 아무런 희생도 있어서는 안되겠지만, 군부는 물러나야 할 것이고, 주권은 국민들에게 돌려보내져야 한다.

당연히 권력을 국민들로부터 찬탈한 군부세력은 그 죄값을 치뤄야 하겠지.

 

민주주의가 피를먹는 나무라면 거기에는 민주주의를 앗아간 범죄자들의 피를 부으면 될 일이다.

우리 나라는 그 나무에 애꿎은 시민의 피만 부어졌고, 그러다 보니, 그 피를 흘리게 만든 인간들이 그 유실수를 따먹으며

오히려 그 나무를 뒤집어 엎으려 하는 것이다.

 

버어마가 민주주의를 다시 되찾을 수 있고, 그 후 릴리를 다시 볼 수 있게 된다면,

이번에는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항쟁에 대한 얘기보다는, 그 범죄자들을 제대로 처단하지 못하여

혼란을 겪고 있는 지금의 대한민국을 다시 얘기해 주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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