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6. 9. 23:41ㆍ4. 끄저기/끄저기
대체로 책을 덮을 때면
이 책에 대해 어떻게 서평을 써야 할지에 대한 맥락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그러나 이 책 '유령'을 덮는 순간에는
마치 책 제목에서 느껴지는 혼란스러움처럼
도대체 어떻게 맥락을 잡아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래서 결국 서평 메모조차 하지 못했고
이렇게 일주일 정도의 시간동안 곰곰이 생각을 해 보고 나서야
내가 왜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혼란을 느끼게 됐는지를 이해하게 됐다.
이 책 '유령'은 2011년 세계문학상 수상작이다.
예전에 2010년 세계문학상 수상작인 '컨설턴트'에 대한 서평을 쓸 때도
언급한 바 있지만
세계문학상 수상작은 내가 유일하게 의식적으로 접하는 문학작품들이다.
'아내가 결혼했다.'에서부터 '내 심장을 쏴라.', 그리고 '컨설턴트'에 이르기까지
현대 소설에 걸맞는 가벼운 필치에 문학작품으로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진중한 주제의식들이 계속 유지되었기 때문이다.
좀 늦게 구입하여 읽긴 했지만
이 책 '유령' 역시 세계문학상이라 하면 느껴지는
그런 분위기를 기대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기대는 문체에서 내용에서 여지없이 어그러져 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앞서 느꼈다는 그 '혼란'의 원인이
이러한 기대와 결과의 괴리 때문은 결코 아니다.
1. 분단문학?
시종일관 혼란스러웠던 내용은 둘째치고
나는 이 작품이 과연 '분단문학'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작품인지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느꼈다.
바로 이 느낌이 이 책을 읽었을 때 느꼈던 혼란의 실체였다.
혼란스러웠던 내용을 모두 읽고 이어서 나온 심사평은 나의 혼란의 심지에 불을 붙인 꼴이었다.
언제나처럼 많은 작품이 세계문학상에 제출되었고,
언제나처럼 쟁쟁한 심사위원들의 치열한 심사가 있었던 거 같다.
'젊은' 탈북자 세대의 고민이나 탈북 '이후'의 남한에서의 구체적 실상이 리얼하게 드러나면서
보다 진화된 분단 문학의 면모가 돋보인다.
(심사평 중)
심사평 중 등장하는 이 문구는 이 작품을 진화된 분단 문학으로 평가한 근거가 된다.
그런데 과연 그것이 '분단문학'의 근거가 될 수 있을까?
만약에 그것이 분단문학의 근거가 될 수 있다면
주인공으로서, 혹은 장소적, 시대적 배경으로서 북한, 탈북자, 그리고 그들의 생각과
상황 등등을 언급하면 모두 분단문학이 될 수 있다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나는 아직도 이 작품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이 탈북자라는 점.
주인공이 탈북자다보니 그 인물들을 매개체로 끌어들일 수 있는 화소들이
북한과 관련된 것들이라는 것 외에 도대체 무슨 분단문학의 특성이 있는것인지 혼란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분단문학'이라 하면 적어도 분단이라는 거대 구조에 내몰리는 개인의 갈등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것때문에 희생되고, 그것 때문에 좌절을 겪게 되는 이야기들이 기본 축을 이루어야 하는게 아닌가 말이다.
과연 내 생각이 최인훈의 '광장'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한 고루한 생각인 걸까?
내가 이런 문제를 삼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주인공을 한 번 탈북자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바꿔보면 어떨까?
조선족 노동자라면 더 좋겠다.
그렇게 치환했을 때, 그 주변을 구성하고 있는 사건들이 동일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하더라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데에 내가 제기하는 문제점이 있다.
이게 정말 분단문학이라면
주요 인물들의 군상에 다른 캐릭터를 갖다놓았을 때 완전한 괴리를 보여주어야 한다.
제3국으로 향하는 배 위에서 자신의 아내와 아이를 따라가기 위해 투신하는 이명준처럼 말이다.
(거기에 이명준 외에, 분단을 몸으로 겪고 있는 한국인 외에 누굴 집어넣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 소설의 주요 군상에는 탈북자뿐만 아니라 뭔가 이 사회에서 소외를 겪고 있는 군상들을 갖다놔도 전혀 어색하지가 않다.
평가는 '진화'된 분단 문학이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정말 백보 양보해서 이 문학을 분단 문학이라 표현한다면 '진화'는 당치도 않고,
사회 분위기 만큼이나 밍숭맹숭해지고 개인의 문제로 파편화된 분단문학 정도로는 받아줄 수 있을 거 같다.
2. 바츠해방전쟁 그리고...
작가의 작품을 논하는 자리에서 심사위원들의 뻘짓을 탓하는 건 결코 공평한 것일 아닐 것이니 작품으로 한 번 들어가보자.
아마 작가 역시 이 작품의 주요 모티브로서 '바츠해방전쟁'이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다는 걸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바츠해방전쟁'이라는 기막힌 사건으로 인해서 이 작품은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한 편으로 이 작품은 '바츠해방전쟁' 때문에 죽을 쑨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바츠해방전쟁'은 리니지라는 온라인 게임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문제는 리니지나 더더군다나 바츠해방전쟁 모두 이른바 문학도들에게 그다지 친숙하지 않다는데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문학도들을 비난하는 건 아니다.
이 사건은 사실 일반 대중에게도 그닥 친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이 게임을 즐기고 이 게임이 아주 대중적이라는 생각을 하지만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리니지는 매니아 문화에 속하고,
그나마 이 게임이 '국산'이기 때문에 조금은 더 대중에게 알려진 것일 뿐이다.
그러다보니 작품에서는 리니지라는 작품에 대해 직간접적인 '설명'을 해야 하는 부분들이 존재한다.
이건 마치 작가 스스로가 작품 집필을 위해 리니지와 바츠해방전쟁이라는 사건에 다가선 동선을 그대로 안내하는 것처럼 보인다.
즉... 미안한 얘기지만 전혀 불필요한 얘기들을 양산해내는 원인이 되고 말았다.
백석공원에서 발생한 엽기적인 살인사건,
초반에는 게임방에서 삶을 때려박고 있는 주인공과 군상들,
바츠해방전쟁, 엄지와 인희, 손오공, 포르노맨, 정주 아줌마, 회령 아저씨...
주인공이긴 한데 도대체 왜 엮였던건지 아직도 알 수 없는 영화감독, 마리...
(여기 적히지 못한 인물이나 사건들도 무시못할 만큼 많다.)
그러다보니 결론적으로 이런 생각이 들게 된다.
이건 소설이 아니라...미니시리즈 드라마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니 일종의 시트콤?
좀 억지스러운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추리 시트콤?
인정한다. 취재에 열정을 다한 작가의 능력과 열정을.
내가 문학에 대해서 아는 바는 없지만, 어떤 실용문학이든, 순수문학이든간에 작가의 취재능력이나 열정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래서 그 점을 높이 사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하지만 하나하나 놓고 보면 어찌보면 중요한 사건들, 소재들.
심지어는 진짜 분단문학들보다 더 리얼하고, 충격적인 각성을 줄 수 있는 그런 일화들을
아무런 방향 정립없이 난립시켜 놓은 것을 문학적, 또는 예술적 장치라고는 차마 인정해 줄 수 없다.
전반적으로 좀 힘을 뺐으면 어땠을까?
일화도 반, 인물도 반 정도 줄였으면 어땠을까?
딱 두가지만 쓰는 거지, 백석공원에서의 살인사건과 바츠해방 전쟁.
이 두가지만 엮어내더라도 많은 논리적 비약이 필요했을 것이고
그 비약이 만들어낸 틈 하나하나를 디테일한 일화들로 매꿨으면
충분히 괜찮은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끊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주인공은 구태여 탈북자가 아니어도 이 사회에 만연한 소외계층의 인물들 중 누구여도 괜찮았을 것이다.
물론 탈북자가 고려되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좋다고도 할 수 없다. 적어도 이 이야기 구조하에서는 말이다.
'탈북자'라는 소재 자체는 너무 힘이 들어가 있는 소재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심사위원들조차 '탈북자'와 그 인물군이 선택되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딸려들어올 수밖에 없는 일관성 없는 화소들에 현혹되어
'분단문학'이라고까지 평가를 해 주는 위력이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작가의 필력보다는 노력이 돋보이고 주제의식보다는 취재의식이 돋보이고..
이런 요소들 때문에라도 충분한 평가를 해 줄 수도 있겠지만
이것이 2011년의 '세.계.문.학.상' 수상작이라는 사실 때문에, 바로 그것 때문에 오는 허탈감을 감출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