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군 이야기

2012. 6. 3. 21:024. 끄저기/끄저기

 

 

만약 십자군 이야기를 종교적 광풍이 만들어낸 산물로만 간주한다면 십자군 이야기에 대해 할 수 있는 이야기란
그저 유일신교의 배타성과 집단 편집증과 같은 신앙활동에 대한 비난 외에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얘기가 없게 되는 것이고,
이것은 200여년에 걸쳐 유럽과 서아시아를 주도한 역사를 지나치게 단순화해 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모든 학습활동이 대학입시를 향해 나란히 정렬하고 있는 경박한 대한민국의 교육체계에서 이미 반복하고 있는 행태이고
이는 유일신교의 아집과 배타성 못지 않게 창피하기 그지 없는 관점일 것이다.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를 접하면서 내가 바라보고 싶었던 관점은
십자군 전쟁의 시작부터 종료까지의 역사적 사실을 알고자 하는 기본적인 동기외에
과연 그 시대를 살고간 사람들이 그 시대의 패러다임에 어떻게 반응했는가 하는  점이었다.

 

지나간 시간을 재구성하는 디테일에 자신의 상상력을 살붙일줄 아는 시오노 나나미의 글은
이런 내 관점을 충분히 만족시켜 줄 것이라고 생각했고,
마지막 권을 덮은 지금, 그러한 관점을 만족시켜준 시오노 나나미의 글에 감사를 느끼고 있다. 

 

1. 패러다임에 저항할 수 있는가?
   과연 이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패러다임은 무엇일까?
   내가 몸담고 있는 대한민국에는 십자군 시대에 오로지 '불신의 무리'를 배격하는데 온 일생을 바친 사람들, 못지않은 광신적 종교행태가 여전히 남아있다.
   일부라고 말하지만 나는 간혹 그 광신성이 강도와 폭을 넓히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또한 대한민국에는 특정 진영에 대한 적개심과 이를 부추기는 세력, 그리고 이를 이용하여 마녀사냥과 같은 행동을

   언제고 서슴지 않고 저지를 사람들도 있고,  더더욱 위험하게도 이러한 사람들 중 상당수는 권력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또한 이름 있는 대학(절대 좋은 대학이 아니다)을 가기위해 모든 자원을 동원하고, 인생에 한 번 있을
   청소년기를 이에 매몰시키는 것을 당연하다 생각하는 사람들이 전 인구의 대부분인 것으로 보인다.
  
   과연 우리는 이 패러다임을 벗어난 사고가 가능할까?
   이 시대를 점유하고 있는 패러다임에 비교하자면 십자군을 촉발시킨 패러다임은 오히려 순진하고 순수성까지 느껴질 정도다. 
   계몽사상의 역사도 이미 300여년을 넘어서고 있고,

   이성에 대한 신뢰와 그 결과가 만들어낸 첨단 과학 시대를 살아가는 이 시대의 대부분의 사람들도

   시대를 장악하고 있는 패러다임을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시대의 패러다임을 벗어난 그 너머를 바라보거나 이룩한 사람들은 선각자라 존경받을 수도 있고, 감상적으로 몽상가라 불릴 수도 있을 것이다.
   간혹 매우 드물게는 시대의 아이콘이 되어 부와 명예를 거머쥐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이단이나 정신병자 취급을 받기가 쉽상이고,
   아직도 어떤 지역에서는 심한경우 이 때문에 목숨을 잃을 각오도 해야 한다. 
   
   하물며 12세기 유럽과 서아시아 시대의 사람들은 어떠했겠는가?

 

   십자군 시대를 전후하여 유럽과 서아시아에서 삶을 살아갔던사람들을 마치 광신적 종교에 의해 쉽게 경도되고, 쉽게 선동된 것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그 당시를 지배하고 있던 패러다임과 전혀 상관없는 다른 시대의 시각으로 그 시대를 재단하려는, 접근방법부터 잘못된 시각이라 할 수 있다.
  

2. 시대를 이끄는 열정과 이를 유지시키는 합리성.
   그동안 '십자군'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항상 부정적인 이미지였다.
   앞서도 얘기했듯 교육을 통해 접한 이야기는 피상적이기만 했고, '십자군'이 언급될 때는 그 사실 자체보다는 종교에 대한 비판, 대학살,
   개개인의 영지 확장 목적으로의 변질 등 뭔가 부정적인 얘기를 하기 위한 목적에서 언급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접한 제 1 차 십자군 전쟁은 의외로 예루살렘 수복이라는 목적에 대하여,

  - 의외성을 강조하는 표현을 사용해 보자면 -  순도가 높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교황 대리인 아데마르 주교, 로렌 공작 고드프루아, 블루아 백작 에티엔, 프랑스 왕의 동생 위그, 투루즈 백작 레몽, 풀리아 공작 보에몬드,
   예루살렘 왕 보두엥과 노르망디 공작, 플랑드르 백작,  그리고 지금도 신의가 두텁고 생기 넘치는 영원한 젊은이를 상징한다는 탄크레디.
  
   이상의 1차 십자군 주역들은 교황권이 하늘을 찌르던 시기에 십자군 출정을 시작하긴 했지만,
   그것이 단순히 강력한 권력에 의하여 떠밀려지듯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스스로 군대를 모으고, 경비를 모으고, 언제 돌아올지 모를 먼 전장으로 나설 때는 분명 자신들이 순종하고 인정하는 신념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처음의 시도여서 많은 시행착오와 문제들이 있었지만 이들은 결국 예루살렘 함락이라는 목표를 이뤄냈고, 또 이 외중에 목숨을 바치기도 했던 것이다.

 

   목적을 향한 이러한 일관성과 결국 목적한 바를 이루어냈다는 것은 충분히 경의를 보낼만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보다도 더더욱 주목받아야 할 위대한 업적은

   이러한 광풍의 시대에도 여전히 합리성과 타협을 잃지 않았던 시대의 영웅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상황 자체가 만들어내는 영웅의 이야기에 우리는 쉽게 전도되고 흥미를 느끼지만

   십자군 이야기 3권을 통털어 시종일관 나의 눈길을 잡아끌었던 것, 그리고 내 개인적으로 놓치지 말아야 할 사건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은

   극단적인 배타성을 기반으로 하는 두 개의 대표 종교와, 그 종교의 모티브가 극단적으로 강조되던 시기에

   살라딘, 발리앙 이벨린, 리처드 1세, 프리드리히 2세, 알 아딜, 알 카밀 등에 의해 끊이지 않고 전개되어온 협상과 타협의 흐름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를 과연 무엇을 근거로 11~12세기에 비해 합리적인 시대라 할 수 있을것이며

   종교적 광풍에서 인간의 합리적 이성이 얼마나 독립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하지만 암흑시대라 불리는 중세시대에도 살아 있었던 합리적 인간의 이성이 만들어낸 타협의 역사적 흔적들은

   여전히 이 시대에도 그러한 합리성이 끊이지 않고 존재할 것이라는 희망의 근거가 되어주는 얘기들이라 할 수 있다.

 

3. 보두앵 4세, 그 신화와 같은 이야기.

    아마도 영화 '킹덤오브 헤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십자군 역사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인물은 십자군이 함락한 예루살렘에서 일곱번째 왕위에 오른 문둥이 왕 보두앵 4세이다. 

   

    살라딘이라는 거대한 적에 맞서서,

    나병이라는 당시로서는 천형과도 같았던 질병을 몸에 지닌채로 13세에 왕위에 오른 보두앵 4세의 이야기에서 감동적이었던 것은
    젊은 보두앵이 나병에도 불구하고 전장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는 용맹함을 보였던 것에만 있지는 않다.

 

    오히려 자신의 사후 예루살렘을 지켜나가기 위한 준비에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인간의 수명이 짧은 시대였고, 이미 사춘기 시절이면 독립적인 성인대접을 받았던 시대라 하더라도,

    10대의 젊은이가 얼마남지 않은 자신의 수명을 인식하면서 사후를 준비한다는 것은 보통 비장함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은 결국 보두앵 4세 편은 아니었고, 결국 24살에 불꽃같은 삶을 마무리 지은 보두앵 사후

    십자군은 살라딘에 의해 하틴 전투에서 궤멸에 가까운 타격을 받음으로써,

    보두앵 4세라는 초인적인 삶을 살다간 한 젊은이의 모습을 더더욱 강한 인상으로 남게 하고 있다.

 

    영화 '킹덤오브 헤븐'에서는 이 때, 예루살렘을 사수하여 끝내 예루살렘의 기독교인들의 목숨을 건져낸 발리앙 이벨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십자군 이야기 1, 2, 3권을 통털어 그 시대의 최고 영웅으로 보두앵 4세를 꼽기를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4. 십자군의 몰락, 템플 기사단의 몰락, 교황권의 몰락.

     물론 십자군이라는 사건에 대해 그 시대의 패러다임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인 듯 기록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하여 이 사건이 '삽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사실 자체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아코 전투'라는 마지막 서사시가 십자군의 대미를 장식한 후 유럽에서 그 후유증이 정리되는 과정은 추악한 인간사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템플 기사단의 최후는 그 단적인 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신념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이들은 일단 그 시대의 패러다임에 누구보다 열정을 다한 집단이었지만

    그 패러다임이 무너진 이후 그 열정은 구차한 구세대의 유물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된다.

 

    템플기사단 소속 기사 대부분은 모진 고문을 받고 감옥에서 최후를 마치게 되고

    마지막 단장 자크 드 몰레는 템플 기사단이 이슬람에 예루살렘을 팔아넘겼다는 혐의를 비롯한 127가지의 조작된 협의를 뒤집어쓰고 화형을 당하게 된다.

 

    전장의 극단적인 상황, 이슬람 교도에게 체포되었을 때도 굳건히 버텼던 이 역전의 용사들이

    이렇게 무력하게 사라져간 이유를 '자신들의 존재이유를 모두 빼앗겨 버린 이들의 무력감'으로 해석한 시오노 나나미의 평가는

    참으로 적절한 평가가 아닐까 싶다.

 

    이렇게 십자군은 몰락하고, 템플 기사단도 몰락했으며,  따라서 십자군을 2세기에 걸쳐 주도한 교황권 역시 추락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베드로의 지상 대리인 '교황의 무류성'(공식적인 교황의 교권을 근거로 내리는 결정에 잘못이 없다)은 여전히 오늘날 카톨릭에서 믿을 교리에 해당하지만,

    만약 십자군의 시작과 몰락에 간섭한 당시 교황의 모든 선택에 오류가 없다면, 그것은 교회 자체보다

    교황권의 쇠퇴로 인해서 역사의 주인이 인간으로 바뀌고 그것이 인간의 합리성에 대한 신뢰의 시대인 르네상스로 연결된다는 시각에서만 타당할 것이다.

 

종교 권력은 여전히 21세기 지구에서 중요한 위치를 놓지 않고 있다.

 

실체도 불분명한 권위를 기반으로 한 종교 우두머리들의 말 몇 마디에 일말의 자책감 없이 주변 사람들을 상하게 할 의도를 가진 사람들이

의외로 쉽게 발견된다.

또한 지구상의 의외로 많은 지역에서 자라나는 새로운 세대들이 '나 외에 신은 없다'는 사상을 공교육을 통해 학습받으며 육성되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이러한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까?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면, 역시 같은 논리로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인류역시 미래를 기약할 수 없을 것이다. 

'4. 끄저기 > 끄저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판타스틱 체인지  (0) 2012.06.24
유령  (0) 2012.06.09
다윈지능  (0) 2012.04.29
단테의 신곡  (0) 2012.04.24
한밤중에 행진  (0) 2012.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