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 - 또 하나의 제주도를 선물받다

2013. 6. 25. 23:174. 끄저기/끄저기

옛날 로마의 카이사르가 갈리아 원정을 떠났을 때, 

그의 발길을 따라 유럽이 역사시대가 열리기 시작했다는 표현을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서 본 기억이 있다.  

 

아마 같은 표현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유홍준 선생님의 발길을 따라 대한민국 곳곳이 새롭게 열리고 있다고 말이다. 


물론 전자와 후자의 차이는 극명하다. 

전자가 유럽이라는, 당시로서는 일체의 기록이 남겨져 있지 않던 지역을 기록 속으로 끄집어 낸 것, 즉, 대상에 포커싱된 것이라면 

후자의 포커싱은 대상보다는 그 대상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까막눈에 있다. 

바로 나처럼 제주도를 여러번 다녀봤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의 까막눈을 말이다. 

 

1. 유홍준 선생님의 버전업은 진행중.

    작년 유홍준 선생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권을 읽고 1~6권까지를 총평하면서

    6권이라는 복귀작은 유홍준 3.0이 쓸 수 있는 이야기라고 언급한 바 있다.

    (참고 : http://blog.daum.net/bigcrunch/12346078)  

당연히 기대치 않은 7권을 만났으니

이 책에서만 맛 볼 수 있는 유홍준 선생님의 새로운 버전을 평가하는게 도리일듯 하다.

 

그러나 약간은 싱겁게도 7권의 유홍준 선생님은 3.0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 책에 수시로 등장하는 '관'에 대한 비판적 언급에서 그러한  느낌이 짙게 느껴진다.

물론 유홍준 선생님의 글에서는 이미 예전부터 '관'에 대한 비판이 수시로 등장한다.

그러나 5권까지의 비판과 6, 7권에서의 비판은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뭐랄까...

5권까지의 비판이 직접적이고 뚜렷한 저항성이 있었다면

7권의 비판은 뭔가 애두르는 듯한 느낌?  

심지어는 비판의 이유가 비판이 아닌 '이렇게 하면 더 좋은데..'라는 훈수?

 

이러한 분위기는 분명 유홍준 선생님의 복귀작인 6권과는 또다른 7권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뭔가 부족한 느낌이다. 

    

6권 전후의 분위기를 이토록 다르게 만들어주는 것은 당연히

문화재청장으로 재임하셨던 경험에서 비롯되는 것일 것이다. 

    

관직에서 떠난 지금 과연 유홍준 선생님의 '관'에 대한 비판이 청장 재임 이전의 분위기로 돌아갈 수 있을까?

당연히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하여 나는 이 책의 유홍준 선생님을 유홍준 3.2 버전 정도로만 평가하고 싶다. 

 

그러나 내 생각에 그 분위기라는 것이 시간이 흐를수록 사뭇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생각이  앞으로 유홍준 선생님의 글을 계속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가져오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따라서 한편으로는 분위기가 사뭇 달라지는 유홍준 선생님을 기대해 볼 수 있는 즐거움이 남게 되었다.

바로 유홍준 4.0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그 때의 또다른 멋진 모습을 말이다.

    

 

2. 수미쌍관 본향당의 아름다움    

    개인적으로 수미쌍관 형식의 글을 선호하거니와 

    이 책에서 수미쌍관을 이루는 본향당에 대한 글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제주 여인네들의 영혼의 동사무소라는 본향당! 

    하얀 종이, 소지를 가슴에 대어 자신의 고민과 바램을 마음속으로 전사해내는 모습, 

    그렇게 신목에 걸린 하얀 종이들과 자신의 정성을 바친 물색천들.

    

    개인적으로 더 흥미로웠던 것은 책의 앞쪽에 등장하는 와흘 본향당의 제단 이야기였다. 

 

    와흘 본향당의 주인신인 백조 도령과 서정승 딸의 이야기인데

    백조도령은 서정승 딸이 임신 중에 돼지고기가 먹고 싶어 돼지털을 그슬어 냄새를 맡은 것에 대해 부정을 탔다고 탓을 하며  

    함께 상을 받을 수 없다고 상을 저만치 물리쳤고 이것이 현재 와흘 본향당에 따로 별거중인 신단의 원인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곳 와흘 본향당을 찾는 사람들의 정성은 정작 저만치 물러처진 아내 신단에게 몰린다는 부분을 읽고  

    여자가 더 중하게 여겨졌던 제주도의 특색을 떠나서라도 현대의 이야기로서도 재미있고 통쾌하기 그지없는 이야기라고 느꼈다.

    

    역시 유홍준 선생님의 발걸음이 없었다면 나와 같은 청맹과니로서는 전혀 알 수 없는 제주도의 아름다운 컨텐츠임에 틀림 없다.

 

    다시 제주도를 찾게 된다면, 좀더 천천히 좀더 여유있게 제주의 이곳 저곳을 거닐며 본향당의 이야기들에 한바탕 젖어들고 싶은 간절한 바램이 생겼다. 


 

3, 그리움과 아픔을 이해하는 지침서

   제주도는 참 다양한 감정을 일으키는 곳임에 틀림없다. 

   개인적인 인연으로 해서 제주도에 '이민'을 간 '육지것'들의 이야기를 인터넷을 통해 많이 접해보던 시절이 있었다.

   나 역시 제주도 '이민'을 생각했던 '육지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나에게 제주도는 단순히 관광지만은 아니었다.

   예전부터 골목 하나하나, 집 하나하나, 사람들의 표정 하나하나를 살피는 여행을 했었던 것이다.    

   

   제주도에 대한 육지것들의 이야기에는 기대와 낭만은 물론이거니와 삶에 대한 진지한 시선과 애환이 함께 교차하고 있다.

   그러한 감정이 켜켜이 쌓여있는 제주도는 이미 한국의 다른 지역들과는 또 다른 모습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안주인과 함께 찾은 제주 4.3 평화공원은 또 다른 제주의 모습을 느끼게 한 곳이기도 하다. 

   특히 전시실 가장 마지막 켠에 대통령의 사과와 함께 눈물을 흘리며 박수를 치던 제주도민의 기억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넓게 펼쳐진 제주의 푸른 하늘 아래 울룩부룩 솟은 오름들이 이 땅에 쌓인 아픔의 덧고름처럼 보이기도 했던 기억이다.  

   

   그러나 내겐 아직도 알아야 할 제주도, 배워야 할 제주도가 많이 남아 있다. 

   처음에 그저 단순히 아름다웠던 그 섬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다면, 그 곳에 켜켜이 쌓인 아픔 역시 조금이라도 공감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아마 그것이 제주를 알아가는 진정한 자세일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자세를 가다듬는 훌륭한 지침서가 될 것 같다. 

   

내가 정말 재미있는 영화라고 알고 있는 어떤 영화를 친구나 동료들이 아직 보지 못했을 때, 

"좋겠다. 볼만한 영화가 있으니~"라는 말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하곤 한다.

 

아마 내가 유홍준 선생님께 그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이 한권의 제주 이야기에 담겨 있는 제주의 모습들은 나로서는 거의 모르는 제주의 모습들이다.

과연 지금까지 내가 다녀본 제주와 유홍준 선생님이 기록하신 제주가 같은 곳인가 싶을 정도이다. 

그 생각의 격차가 바로 '선생님'과 '범인'의 범접할 수 없는 격차일 것이다. 

 

지금부터 다시 새로운 제주도를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생겼다. 

이러한 기대는 모르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행복일 것이고, 바로 그것이 선생님으로부터 배우는 이의 즐거움일 것이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유홍준 선생님으로부터 저 남쪽 바다에 또 하나의 제주도라는 커다란 선물을 받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