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루, 여러 밤 - 2019년 경남 메시에 마라톤 후기

2019. 4. 2. 12:521. 별과 하늘의 이야기/하늘앓이 - 별지기의 이야기들

메시에 마라톤 시즌이 돌아왔습니다.


주로 춥고 배고픈 별보기를 하는 저로서는 
여러 별지기들과 함께 같은 대상을 훑어나가는 메시에 마라톤이 얼마나 고마운 행사인지 모릅니다.


특히 올해는 경남 산청에서 열리는 메시에 마라톤과 강원도 횡성에서 열리는 메시에 마라톤 일정이 다르게 수립되었죠.

그 덕에 연속 두 번 메시에 마라톤에 참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요!


지난 3월 30일, 
한국아마추어천문학회 경남지부가 주관하는 메시에 마라톤에 참가했습니다.


경남 메시에 마라톤은 국제천문연맹(IAU) 100주년 기념이벤트로 등록된 행사이기도 했죠. 
그러다보니 메시에 마라톤을 준비하시는 분들이 준비부터 많은 신경을 쓰신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늘은 사람의 뜻대로 되는게 아니었죠. 
대회 진행 여부를 알리는 문자들을 받아보면서 
준비하시는 분들이 얼마나 일기예보를 초조하게 보고 계실지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 별을 보지 않을 이유는 넘쳐납니다. 
하지만 별을 보고 싶은 간절함, 그 하나 때문에 별지기는 길을 나섭니다. 
날씨가 안 좋을 때 관측지에서 만나는 별지기는 그런 간절함을 품은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별처럼 빛이 나죠.

비록 날씨는 꾸물꾸물하고 꽃샘추위의 칼바람이 몰아치고 있었지만

별처럼 빛나는 사람들을 만날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산청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남쪽으로 갈수록 구름이 점점 얇아지더니
산청에 도착했을 때는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거리에는 아직 서울에서는 만날 수 없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죠.

경남 산청은 말 그대로 봄이 넘쳐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차창을 내리자마자 밀려들어오는 칼바람이 오늘이 결코 만만치 않을 것임을 말해주었습니다.


산청 간디중학교 운동장에 도착하자 
대회를 준비하는 한국아마추어천문학회 경남지부 회원들께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사진 1> 대회가 열리는 간디중학교 운동장에 도착했습니다. 

        IAU 100주년 기념 로고가 선명합니다.



사진 2> 플레카드를 걸고 있는 한국아마추어천문학회 경남지부 회원분들

        순간순간 강하게 부는 바람때문에 플레카드 거는 것도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사진 3> 경남메시에 마라톤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 중 하나는 

        별아띠천문대 안주인마님이신 들국화 선생님(사진)께서 마련해 주시는 정성과 계절이 가득한 밥상입니다. 


사진 4> 올해 메시에 마라톤을 함께할 망원경은 정남택(은다) 선생님께 빌린 250밀리 RC쌍안경입니다. 
        노남석 선생님께서 제작하셨고, 노 선생님과 정 선생님께서 각각 하나씩 가지고 계시는 세상에 두 개밖에 없는 망원경이죠. 
        이 귀한 망원경을 혼쾌히 빌려주신 정남택 선생님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립니다. 
        사진은 박한규 선생님께서 망원경을 스케치하시는 모습입니다. 


        
사진 5> 박한규 선생님께서 스케치하신 망원경 모습. 
        멋진 그림 감사합니다. ^^

         노남석 선생님과 정남택 선생님께 전해 드리겠습니다. 



대회 시간이 다가오면서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하지만 청명했던 낮과 달리 하늘에는 먹구름도 빠르게 모여들었습니다.


저녁을 먹고 본격적인 대회를 준비할 때부터 비가 내렸다가 그치기를 반복했습니다. 

서둘러 이것저것 동원 가능한 소품들로 망원경을 보호하고 비를 피하는 별지기들의 모습도 반복되었죠.


사진 6> 서둘러 망원경을 보호하고 있는 별지기들


사진 7> SUV 가 비를 피하는데 아주 제격이네요. 

         이런 용도가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          


빗줄기가 약해지고 구름이 빠르게 지나가는가 싶더니 드디어 별빛이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19시 20분 경 대회가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내 곧 눈발이 날렸죠. 

갑작스럽게 몰아치는 바람은 기록지와 별지도를 날려버리기 일쑤였습니다.
휘몰아치는 바람은 시상도 엉망으로 만들었죠.

별을 보기엔 여러가지로 상황이 좋지 않았지만, 
정말 인상적이었던 것은 별이 빛나는 밤하늘도 결코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고보니 그 밤은 기적이 함께한 밤이었습니다.

구름이 꾸역꾸역 서쪽 산을 넘어왔고 그 구름들이 뿌렸을 것이 분명한 눈발이 멈추지 않았지만
별들 역시 구름 속에 숨어 있으려고만 하지는 않았습니다. 



사진 8> 서쪽 하늘에서 구름이 꾸준히 밀려들었고 눈발도 날렸지만 

         산청의 밤하늘은 마냥 구름에 밀리지만은 않았습니다. 


전갈이 올라오던 새벽에는 동쪽에서 마치 거대한 해일처럼 구름이 솟아 오르기 시작했죠. 
하지만 그 거대한 구름해일도 마치 유리벽에 막혀 딱 서버린 듯 더 이상 다가오지 못했습니다.



사진 9> 동쪽하늘도 구름이 쉽게 범접하지 못하면서 대회장의 하늘은 별지기들이 움직일 틈을 넉넉히 내어 주었습니다. 


이렇게 꾸준히 열려 있는 하늘아래 꾸준한 별지기들이 분주히 갈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마치 선물마냥 새벽에는 시상마저 좋아졌죠.


알 수 없는 기운이 하늘 한켠을 지켜주고 있는 동안 
하늘 아래에서는 라면, 떡, 어묵탕, 따뜻한 커피와 차 등, 운영진들께서 날라주시는 간식들이 추운 날씨를 녹여주고 있었습니다.
대회에 초대한 제 지인분들이 농을 섞어 간식 마라톤이라고 말씀하실 정도였죠.


흔히 메시에 마라톤을 자신과의 시합이라고 합니다. 
많은 메시에 천체들이 새벽에 몰려 있고, 그래서 그 새벽까지 한 밤을 온전히 견뎌내는 사람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죠.


그렇게 자신과의 시합을 묵묵히 치뤄내고 있는 밝아오는 하늘 아래 별지기들을 사진으로 담아보았습니다.(사진 10~18)













그렇게 아침이 찾아왔습니다.


비록 강한 바람과 눈발로 결코 만만치 않은 밤을 보냈지만
멀리 논밭까지 날아가버린 기록지를 찾아 오는 별지기들의 유쾌한 모습은 
이미 간밤의 기억이 소중한 추억으로 익어가기 시작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단 하루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그 밤은 여러 밤이었어요.


그 밤엔 비가 내렸죠. 
그 밤엔 눈보라가 몰아쳤습니다. 
그 밤엔 청명하고 검은 하늘이 있었고
물듣는 별이 있었습니다.


바람이 별지도를 날려버렸지만
별지도에서 털려나간 별들은
온전히 제 가슴에 들어왔습니다.



사진 19> 벌써 그리운 2019년 메시에 마라톤 그 날의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