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전투화

2020. 5. 31. 14:524. 끄저기/끄저기

길이 아닌 곳으로 걸어가기로 마음을 먹은 후 

전투화를 신기 시작했다. 

 

두 번째 전투화가 고장나면서 이번에 세 번째 전투화를 마련했다. 

 

전투화를 신기 시작한건

전투하는 마음으로 살겠다...라는 투의 그런 

대단한 결심 때문이 아니라, 

그저 뱀을 굉장히 무서워하기 때문이다. 

 

전투화의 '전투'라는 단어가 맘에 안 들어 

장화를 신어볼까도 했지만, 

장화로는 아무래도 등산이 어려울 것 같아 

계속 전투화를 신기로 했다. 

 

세 번째 전투화의 끈을 묶으며 

과연 내가 길이 아닌 곳으로 얼마나 걸어왔는지 돌아보았다. 

 

가야할 곳은 보이지도 않는데 헤쳐 온 길이래봐야 얼마 되지 않는다. 

뒤죽박죽, 문제 투성이다. 

 

세 번째 전투화는 유독 나의 발에 많은 상처를 만들고 있다.

뭔가 다루기 쉽지 않은 놈을 만난 것 같다. 

 

하지만 친해만지면

아무도 모르는 비밀의 정원으로 

나를 데리고 갈 멋진 놈인 것 같다. 

 

가다 못 가면 쉬어가면 그만.

어디든 가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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