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소포타미아 문명전 관람.

2022. 7. 26. 15:554. 끄저기/끄저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메소포타미아 유물 전시를 한다길래 부리나케 갔다 왔다. 

 

내가 아는 한 고대 수메르는 별자리를 만들어낸 문명이다. 

 

최초로 문자를 만들어낼만큼 대상을 분절하여 바라볼 줄 알았던 지적인 사람들, 

그리고 이 세상을 구성하는 모든 특성을 신으로 인격화하고 거기에 이야기를 덧붙일 줄 알았던 낭만적인 사람들이

바로 고대 수메르인들이었다. 

 

지식과 낭만은 오늘날의 인간사회에도 부족한 자질이다. 

하지만 한반도에서 곰과 호랑이가 사람이 되겠다고 쑥과 마늘을 먹던 시절보다도 훨씬 더 오래전부터 

수메르는 지식과 낭만이 넘치는 사회였다. 

 

그들은 학교를 만들어 아이들을 교육시킬 줄 알았고, 

맥주를 만들어 인생을 즐길 줄 알았다. 

 

그러한 그들이 하늘에 총총 떠 있는 별들을 나누어 형태를 만들고 거기에 이야기를 담아낸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한 그들의 삶을 이번 전시를 통해서 조금이나마 느껴보고 싶었다. 

비록 전시품들의 양이 너무나 적어(66점) 아쉬움이 한이 없지만, 

그 조금의 전시품들을 보면서도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수메르어-아카드어 가축 용어 목록

드디어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쐐기문자 점토판을 직접 볼 수 있었다. 

첫 느낌은 놀라움이었다. 

 

이 점토판의 세로 10센티, 가로 5센티가 채 되지 않는 너무나 작은 크기였다. 

이 작은 점토판에 줄이 정갈하게 나뉘어져 있고 거기에 쐐기 문자가 빽빽하게 새겨져 있었다. 

 

쐐기문자 해독 설명서

고대 수메르 아카드 시대의 점토판이 원래 다 작은 건지, 

아니면 작은 것들만 가져와서 전시한 건지는 알 수 없다. 

(뒤쪽 아시리아 제국 전시품 중에는 커다란 점토판이 있었다.)

 

어쨌든 이 점토판을 보니 당시 쐐기문자를 기록하고 이를 읽는 일을 맡았던 필경사들이 얼마나 전문가 집단이고,

동시에 얼마나 강력한 기득권 집단이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글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작은 점토판을 가득 채우고 있는 삐침선들에서 동일한 의미를 읽어내는 필경사들이

마치 마법사들처럼 보였을 것이다. 

 

또 하나 나를 감동하게 만든 것은 바로 '인장'이었다. 

 

인장 역시 실물은 처음 보는 것이다. 

인장을 책으로만 봤을 때는 대략 한 뼘 정도 크기는 되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손가락 마디 하나 정도밖에 되지 않을만큼 작은 크기였다.

 

전시관 한켠에는 점토판에 인장을 찍어내는 모습이 상영되고 있었다.

인장은 요즘으로 치면 인감과 같은 역할을 했으니 소중히 들고 다니려면 이정도 크기여야 했을 것이다. 

그 크기는 마치 요즘의 도장 크기와 비슷하다. 

너무나 당연한 것을 책으로만 봤을 때는 전혀 알 수 없었다. 

 

그 인장에서 찍혀 나오는 아름다운 문양 하나하나도 너무나 황홀했다. 

특히 내게는 이 문양을 살펴보는 것이 너무나 중요했다. 

이 문양들에서 별자리의 단서들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사자 인장은 점토판에 돌려 찍는 인장 이전에 사용되던 좀더 초기의 인장이다. 

점토판에 눌러 찍도록 음각이 되어 있다는 점만 빼면 오늘날의 도장과 동일한 방식이다. 

 

실제 이러한 인장은 서아시아에서 기원전 5,000년 경에 사용되기 시작했고,

이 사자 인장은 기원전 3,000년 경 후기 우르크 왕조 시대의 인장이라고 한다. 

 

이렇게 인장을 찍다가 도르레처럼 돌려 찍는 인장을 만들게 되었다니, 

고대 수메르인들의 예술적 감각에 또 한 번 감탄했다. 

실제 작은 도르레를 돌려 나오는 문양들은 반복될수록 더더욱 화려하게 느껴진다.

 

황소머리 청동상 1

 

황소머리 청동상 2

고대 수메르에서 황소는 풍요와 생명의 상징이었으며

저승의 여왕 에레쉬키갈라의 남편 구갈안나(하늘의 큰 황소)는 단연코 황소자리의 원형이다. 

이 유물은 기원전 2,500년 경 현악기의 머리를 장식하고 있었던 황소머리 청동상이다. 

 

이 문양은 고대 수메르보다는 훨씬 후대에 해당하는 기원전 600년 전 후, 신 아시리아의 유물이다. 

하지만 주름으로 하나하나 표현된 강물과, 이 주름이 강물이라는 것을 명시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중간 중간 새겨진 물고기 문양은 고대 수메르의 전통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오늘날의 물고기자리는 바로 이러한 문양을 그 원형으로 한다. 

그 문양이 고대 그리스를 거치며  꼬리에 리본을 묶고 있는 두 마리 물고기로 왜곡된 것이다. 

 

기원전 1,300년 경의 유물인 낫칼의 모습이다. 

이 유물에 대해서는 '전투용이 아니라 의례용이었을 것'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이 유물을 봤을 때 내 눈을 잡아 끈 것은 중앙에 새겨져 있는 문양이었다. 

웅크리고 앉아 있는 '숫양(?)'으로 보이는 듯한 짐승의 자세가 오늘날 '양자리'의 그림을 떠올리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양이 올라 앉아 있는 선반의 모습이 독특하다. 

이게 무슨 문양인지 궁금했지만 이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이 밖에도 우르3왕조의 무덤에서 발굴된 순장된 여종들의 시신을 장식하던 

황금 및 라피스라줄리 목고리와 황금 귀걸이 등이 인상적이었고, 

정교하게 모사된 실물 크기의 구리 두상도 인상적이었다. 

 

전반적으로 너무나 좋았던 전시다.

하지만 전시품의 양이 너무나 적었던 것은 내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8월 16일부터는 설명도 진행한다고 하니 그 때 다시 한 번 가볼 생각이다. 

 

돌아오면서 도록을 사왔다. 도록도 좀 아쉽긴 하다...

왜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일까?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최초를 메소포타미아가 만들어냈을만큼 위대한 문명인데 말이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기독교(카톨릭 + 프로테스탄트) 관점에서는 우상숭배문명으로 매도당한다.

정작 기독교의 핵심 교리라 할 수 있는 토라가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영향을 듬뿍 받아 만들어진 것임에도 말이다. 

원래 세상은 못난 것들이 잘난 것들을 비난하게 마련이다. 

 

물론 이것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지근거리에 좀더 볼거리가 많은 이집트 문명이 있고, 

그 이집트 문명을 최초 문명이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아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고대 수메르를 품고 있는 지역이 여러가지로 어지러웠던 이라크이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메소포타미아의 그 생생한 이야기를 제대로 전달해 줄 이야기꾼이 없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 알려지지 않았다는 건, 

앞으로 알릴 일이 많다는 뜻이다. 

 

내 별자리 공부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나하나 쌓아 올려 마침내 풍부한 이야기를 가진 이야기 꾼이 되고 싶다. 

 

2022년 7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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