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든 최선을 다하기

2022. 11. 14. 12:541. 별과 하늘의 이야기/하늘앓이 - 별지기의 이야기들

다시 별지기 생활로 돌아가면서 

그때의 템포로 돌아가는데 소소한 문제를 겪고 있다. 

 

그 문제들이 지난 11월 8일 개기월식 촬영을 나갔을 때 한꺼번에 터져나왔다. 

 

이번 목표는 풍경 사진을 제대로 한 번 찍어보는 것과 함께 

망원렌즈로 월식의 전과정을  동영상촬영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풍경사진용 풀바디 카메라 두 대, 

망원경에 이어붙일 크롭바디 카메라 한 대, 

삼각대 3개, 스카이트래커 등, 

내가 가지고 있는 장비 중 망원경을 제외한 모든 장비들을 투입했다. 

 

출동을 기다리는 촬영장비들.

이번 촬영 장소로 선택한 곳은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이었다. 

화각을 잡기 위해 사전답사까지 했었다. 

 

바람의 언덕에 뜨는 달 구도 : 생각만큼 구도가 좋지 않아 포기한 화각이다.
하늘과 땅 풍경을 함께 담는 화각은 정말 쉽지 않다. 모든 걸 담으려다가 모든 걸 놓치는 전형적인 화각이다.
생각만큼 쉽게 구성되지 않는 화각의 예 : 이 구도라면 달이 화각 밖으로 벗어나 버릴 것이다.
하늘을 위 아래로 잡아 보면 어떨까? 언뜻 좋을 것 같긴 했지만, 결과물이 그다지 좋지 않을거란 생각도 들었다.

 

 

결국 최종적으로 선택한 화각은 문안한 화각이었다. 

 

평범함에 위대함이 있다고, 그날 잡아본 모든 화각 중 가장 좋은 화각은 평범한 각도에서 나왔다.

11월 8일 오후 3시 길을 나섰다. 

 

날씨는 쾌청했고, 일기예보도 좋았다. 

준비한 짐을 꾸역꾸역 갖다 놓고 

카메라 1, 카메라 2, 망원경 순서대로 하나하나 장비를 모두 설치했다. 

시간은 17시 30분을 넘고 있었다.

구석으로 가 내복과 핫팩 등 든든하게 추위 대비를 하고 자리를 잡고 앉았다. 

 

2kg짜리 66밀리 이프랑티스 굴절망원경을 올린 스카이트래커, 스카이트래커 성능은 훌륭하기 그지 없었다.

달이 떠오르고 촬영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모든 게 잘 진행되었다.

스카이트래커는 훌륭한 추적 성능을 보여줬다. 

 

LCD 뷰파인더에 선명하게 들어오는 꽃달의 모습

하지만 20시가 얼추 지났을 때부터 문제가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우선 망원경에 연결한 크롭바디 카메라의 외장 배터리가 수시로 꺼지기를 반복했다. 

오랜만에 사용한 인버터 문제였을 것 같다.

어쨌든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중간중간, 구간구간이 너덜너덜 끊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나서 두 대의 카메라에도 문제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메모리 슬롯에는 32기가 메모리가 꽂혀 있었는데

화질이 한 장에 20메가가 넘는 Full Raw로 잡혀 있었던 것이다. 

나는 항상 Small Raw로 찍었기 때문에 왜 이게 Full로 원복되어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다행히 여분의 메모리 카드가 있어 메모리 카드를 바꿔 촬영을 계속할 수 있었지만 

타임랩스 사진도 이가 빠진 사진이 되고 말았다. 

 

비록 촬영은 이래저래 실패했지만 

월식은 그래도 일식보다는 여유가 많아서 좋았다. 

 

의자에 앉아 야생오리들의 끼룩끼룩 소리를 들으며 

그날 사격훈련이 있었던 건지 DMZ이 항상 그런건지는 모르겠지만 

산너머에서 간간이 들려오는 총 소리를 들으며 

커피 한 잔 마시며 나름 멋진 관측을 했다. 

 

집에 돌아와서 동영상을 인코딩했다. 

인코딩 결과는 형편없었다. 

촬영당일 뷰파인더에 보였던 달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노이즈가 가득해서 차마 봐 줄 수 없는 달의 영상만 남았다. 

내가 가진 장비의 스펙이 동영상 촬영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사진도 그렇고 동영상도 그렇고 망했다는 생각이 들어 잠시 우울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별지기 생활을 하며 인생을 배웠다. 

 

정렬이 약간이라도 어긋나면 그날 밤 관측을 망친다는 것을 경험하면서

아주 사소한 거라도 잘못된 것이 있다면 그때그때 바로바로 해결해야 한다는 걸 배웠다. 

관측지에서 파인더 브라켓을 챙기지 못한 걸 경험하면서

모든 것을 제 자리에 돌려놓아야만 일이 제대로 마무리된다는 것을 배웠다.

하루 한 페이지의 번역이 어엿한 책이 되어 나오는 걸 보면서

꾸준함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배웠고

산꼭대기에서 홀로 밝아오는 여명을 보면서

영혼이 한 뼘 성장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웠다. 

 

이번에도 그런 자세가 필요했다. 

결국 이런저런 실수로, 동영상도, 사진도 의도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 한계 내에서 내가 찍고 싶었던 사진과 동영상을 최대한 만들어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만들어낸 게 누구에게 자랑할만한 결과는 아니더라도

내가 내 조건과 한계 내에서 최대한 노력을 했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닐까?

 

그래서 나는 사진 편집을 시작했다.

촬영된 사진을 모두 다운로드하고 변환하고

잘못된 부분을 제거하고

결국 한 장의 사진으로 만들어내기까지 

꼬박 3일이 걸렸다. 

 

 

메모리 카드가 꽉 차면서 중간에 끊어진 궤적은 어설프게나마 포토샵으로 이어붙였다.

 

 

확대촬영된 달의 영상은 없지만, 그냥 봐줄만한 사진들을 모아 동영상을 만들었다.

이렇게 어설프나마 사진 한 장과 동영상 하나가 만들어졌다.

됐다!

이번에 최선을 다했으니

다음에는 더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다.